천도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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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전서(권14) / 천도책
율곡전서(권14) / 천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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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명종 13) 이이(李珥)가 별시해(別試解)에 장원하였을 때의 답안(答案).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천도책」은 1558년(명종 13) 이이가 별시해에 장원하였을 때의 답안이다. 별시해의 시제가 ‘천도책’이었고 이에 대한 답안이 이이의 「천도책」이다. 이이는 답안에서 이기론에 입각한 우주관과 천인합일설을 논하였다. 이이는 불교와 노장철학을 위시한 여러 종파 및 학파의 사상을 끌어들이면서도 유학의 본령을 들어 기본정신에 투철했으며 철학적인 측면의 전개와 아울러 통치자의 태도 등 현실의 문제에까지 연결시켰다. 짧은 시간에 완성한 2,500여 자에 달하는 이이의 「천도책」은 당시의 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후일에는 명나라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목차
정의
1558년(명종 13) 이이(李珥)가 별시해(別試解)에 장원하였을 때의 답안(答案).
개설

이 때 과거의 시제(試題)가 ‘천도책(天道策)’이었다. 『율곡전서』 권14의 잡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먼저 “상천(上天)의 일은 무성무취(無聲無臭)하여 그 이(理)는 지극히 은미하고 그 상(象)은 지극히 현저하니, 이 설(說)을 아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천도(天道)를 논할 수 있다. 이제 집사(執事) 선생께서 지극히 은미하고 현저한 도(道)로써 발책(發策)하여 격물(格物) · 궁리(窮理)의 설을 듣고자 하니, 이는 진실로 천인(天人)의 도를 궁구한 자가 아니면, 어찌 이것을 같이 논할 수 있겠는가? 나는 평일에 선각자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밝은 물음에 만분의 일이나마 답하려고 한다.”며 운을 띠고 있다.

이어서 “기(氣)가 동(動)하면 양(陽)이 되고, 정(靜)하면 음(陰)이 되나,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하는 것은 기요, 동하게 하고 정하게 하는 것은 이이다. 천지의 사이에 형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오행의 정기가 모여서 된 것도 있고, 천지의 괴기(乖氣)를 받은 것도 있고, 음양이 서로 격동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고, 음양 이기(二氣)가 발산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다. 그러므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 비 · 눈 · 서리 · 이슬이 땅에 내리는 것, 바람 · 구름이 일어나는 것, 우뢰 · 번개가 일어나는 것은 기가 아님이 없으며, 하늘에 걸려 있는 까닭, 땅에 내리는 까닭, 풍운(風雲)이 일어나는 까닭, 우뢰와 번개가 일어나는 까닭은 모두 이가 아님이 없다.”고 말하면서 천지우주의 원리를 이기에서 제시한다.

다음으로 “이기(二氣)가 진실로 조화되면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 그 도(度)를 잃지 않고, 땅에 내리는 것이 반드시 시(時)에 맞으며, 풍운뇌전(風雲雷電)이 모두 화기(和氣) 속에 있으니, 이는 이(理)의 상(常)이다.

이기(二氣)가 조화되지 않으면 운행이 도를 잃고, 그 발산함이 시(時)를 잃어 풍운뇌전이 모두 괴기에서 나오니, 이는 이(理)의 변(變)이다.”고 말해 이기의 조화에 대해 설명한다.

끝으로 “그런데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順)하면 천지의 기도 순하다. 그렇다면 이의 상(常)과 이의 변(變)을 어찌 한결같이 천도에 맡길 수 있겠는가? …… 성왕(成王)이 한번 잘못 생각하매 대풍(大風)이 벼를 쓰러뜨렸고, 주공(周公)이 수년을 교화하매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았으니, 그 기가 그렇도록 시킨 것도 또한 사람의 일(人事)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 아아, 일기(一氣)의 운행 변화가 흩어져 만수(萬殊)가 되나, 나누어서 이를 말하면 천지만상이 각각 일기(一氣)이지만, 합하여 이를 말하면 천지만상이 같은 일기(一氣)이다. …… 이로써 본다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육성되는 것이 어찌 임금 한 사람의 수덕(修德)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라 하여 통치자의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

언급된 내용은 이기론(理氣論)에 입각한 우주관이며 또 천인합일설이다. 물론 이이의 「천도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교와 노장철학을 위시한 제자학(諸子學) 등 여러 종파 및 학파의 사상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이는 유학의 본령(本領)을 들어 그 기본 정신에 투철했으며, 철학적으로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 문제에까지 연결시켰던 것이다.

당시 시험관이었던 정사룡(鄭士龍) · 양응정(梁應鼎) 등은 이이의 2,500여 자에 달하는 책문을 보고 “우리들은 여러 날 애써서 생각하던 끝에 비로소 이 ‘문제’를 구상해냈는데, 이모(李某)는 짧은 시간에 쓴 대책(對策)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천재이다.”고 말하였다.

이이의 「천도책」은 당시의 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후일 명나라에까지 알려졌다. 1582년(선조 15) 겨울, 중국의 조사(詔使)로 온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 황홍헌(黃洪憲)이 원접사로 나온 이이를 보고 역관(譯官)에게 “저 사람이 「천도책」을 지은 분인가?”라고 물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이의 명성은 이미 그 당시 중국의 학계에까지 널리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유교』(유승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율곡철학의 근본정신」(유승국, 『동양철학연구』, 근역서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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