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과 천인은 그 약칭인 양·천으로 표기되는 예가 적지 않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권의 확립을 토대로 성립된 양천제에서 천인이란 중범죄자로서 양인과는 달리 신민(臣民)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된 자를 가리킨다. 주로 노비를 가리키지만 노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양천제의 전개과정에 따라 그 용례나 범위가 다소 변동하였다.
노비는 고조선 때부터 존재했지만 비노비자(婢奴婢子)와 노비를 양인과 천인 또는 양·천이라는 법제적 규범을 매개로 하여 파악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었다.
양인은 6세기의 자료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천인은 ≪삼국사기≫ 문무왕 13년(673)조에 반역자의 처자를 “천에 집어넣었다”는 7세기의 자료에서 그 첫 용례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천’이란 노비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 양인·천인을 이분법적 신분규범으로 사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엄격한 골품제사회(骨品制社會)에서 귀족과 평민이 함께 양인으로 포괄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평민(平民) 아래에도 예속민(隸屬民)·노비(奴婢) 등 상이한 계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고려 초기에 이르러 관직을 독점하던 세습귀족이 소멸되고 국왕이 귀족의 대표자의 지위에서 보편적 신민을 통솔하는 초월적인 지위로 부상하면서 양천제는 그 시행의 단서가 열렸다. 고려시대에는 양·천이라는 법제적 규범을 자주 사용하고, 양인과 천인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규까지 제정했다.
그러나 천인이 아닌 자 사이에도 권리나 의무에서 신분 차등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또한 당시의 양인·천인의 구체적인 범위나 양·천이 모든 인민을 포괄하는 이분법적 규범으로 쓰였는지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종래에는 노비와 향(鄕)·소(所)·부곡(部曲)·진(津)·역(驛) 등의 소속민, 즉 잡척(雜尺)을 모두 천인(또는 천민)이라 간주했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점차 양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비와 잡척은 신분상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있었고, 고려시대의 자료에 보이는 ‘천인’, 또는 ‘천’에 잡척까지 포함되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잡척과 일반 군현에 거주하는 평민 사이에도 신분 구분이 설정되어 있었고, 잡척이 양인으로 지칭되었다는 확증도 없어 현재로서는 이들이 양인에 속하는지 천인에 속하는지, 아니면 양·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제3의 신분인지 잘라 말하기 어렵다.
이는 고려시대에는 아직 양·천이라는 이분법적 신분체제가 확고히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고려 후기에는 평민 위에 군림하던 향리층의 지위는 하락하였다.
반면, 평민보다 차별받던 향·소·부곡민의 지위는 상승해 비노비자의 동질화가 눈에 띌 만큼 진행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축적되어 조선 초기에는 강화된 중앙집권적 군주권을 바탕으로 양천제가 확립되었다.
비노비자 가운데 신분 제한을 받고 있던 특수한 부류들을 일반 양인화하고 모든 비노비자를 일률적으로 양인으로 지칭하면서 양인 일반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의무 체계를 정비했다.
그리하여 양인은 비노비자, 천인은 노비라는 등식이 명확히 설정되었다. 양천제는 16세기 이후 반상(班常)의 차별이 심해지고 신역체계의 변동에 따라 양·천 사이의 신분적 구분도 흐려지는 등, 점차 그 의미가 퇴색해 갔다.
그러나 조선 후기까지도 그 법제적 틀만은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면 노비제의 와해현상과 더불어 거의 그 의미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
노비는 중범죄자라는 이유에서 신민 자격이 인정되지 않는 천인으로 취급되었고 그 신분 차별도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실제에는 모든 노비가 범죄자는 아니었다.
특히, 사노비의 상당수는 부채나 경제적 궁핍 또는 권세가의 침탈로 말미암아 노비로 전락한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단순히 노비라는 이유에서 범죄로 인해 노비가 된 자와 마찬가지로 천인으로 취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양·천의 이분법적 체계가 정비되고 일반 양인의 법제적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양인과 천인의 신분 차이가 선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동일한 범죄에 대해 천인은 양인보다 한 등급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양인에게 주어진 벼슬할 수 있는 권리 및 과거 응시의 기회나 공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은 천인에게는 부여되지 않았다.
의무에서도 양인은 공민(公民)의 의무로서 남자만이 입역 대상이 되는 데 반해, 천인은 범죄에 대한 징벌로서 남녀 구분 없이 모두에게 역을 부과하게 되어 있었다.
또한, 양인의 신역은 일차적으로 군역을 의미하는 데 반해, 천인은 원칙적으로 군역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권리상으로나 의무상으로 뚜렷이 다른 양인과 천인은 혈통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혈통에 따라 그 법제적 지위가 세습되었다.
천인은 통상 노비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공노비·사노비를 각각 공천(公賤)·사천(私賤)이라 불렀다. 천인 외에도 노비 및 노비를 가리키는 천구(賤口)·천례(賤隷) 등이 곧잘 사용되었다.
간혹 성별을 가려 천인·천녀로 표기했지만, 천인은 본래 남녀를 불문한 법제적 규범이었으므로 천인은 여자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천인과 천민은 말뜻으로는 유사하지만 법제적 규범으로는 천인만이 쓰였다. 천민이 천인의 동의어로 사용된 경우는 발견하기 어려우며 천민이라는 말 자체도 거의 쓰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