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강원도 춘천시 서면 안보2리에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다.
김우명은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한 김육(金堉)의 둘째 아들로서 본관이 청풍(淸風)이며, 1619년(광해군 11)에 태어나, 1642년에 진사가 되고 현종의 국구(國舅:임금의 장인)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다. 1675년(숙종 1)에 죽자, 현재 상여가 보관되는 곳에 묘소를 정하여 안장하였다.
이 상여는 청풍부원군의 묘역에 있는 재실에 보존했다가 최근에 내놓아 일반 사람들도 이용하도록 따로 상여막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상여의 전체구조는 기본틀인 장강채(현지에서는 ‘쟁강’이라고 부르고 있음.) 위에 소방상(小方牀:이곳에서는 ‘연초’라고 부르고 있음.)을 올려 꾸미게 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쟁강은 두 종류로서, 28명이 메는 것과 36명이 메는 것이 있다. 그리고 소방상이 꾸며지면 지름 1㎝ 정도의 색실로 꼬아서 만든 끈으로 장강채에 묶어 움직이지 않게 한다.
소방상은 길이 201.7㎝, 너비 80㎝, 높이 88㎝ 크기로서, 장부구멍이 팬 승적목(承籍木:이곳에서는 ‘연초대’라고 함.) 위에 설치한다. 연초대의 네 귀퉁이에 현주(懸柱:‘설대’라고 부른다.) 네 개를 세우고, 양옆의 중앙에 우목(又木:중간에 끼우는 보조기둥) 하나씩을 세운다.
그 다음 앞뒤 현주에 횡목(橫木:‘가루목’이라고 부른다.)을 건너지른다. 현주의 끝이 촉으로 깎여 있어서, 가루대의 파낸 구멍에 따라 내려 끼운다. 이 가루대를 받을장으로 삼고 양옆으로 배방목을 엎을장으로 삼아 끼운다.
이른바 상투거리의 이음기법으로 조립한다. 소방상의 얼개가 대충 이루어지면 배방목 위에 다시 용두판(龍頭板)을 끼운다.
용두판은 앞뒤의 두 개로, 반원형에 가까우나 높이가 낮은 포물선형으로 되어 있으며, 용머리를 조각하였다. 이 조각에 당채를 황룡과 청룡으로 구분하였으며, 봄과 여름에는 청룡판을, 가을과 겨울에는 황룡판을 앞으로 설치한다고 한다.
이 용두판의 크기는 아래가 70㎝, 촉까지의 길이가 80㎝, 반원형의 높이는 36.7㎝로서, 홈이 각각 세 개씩 패어 앞뒤판을 고정시키는 건널목을 엎어 질러 끼우게 되어 있다.
용두판의 설치가 끝나면, 소방상 네 귀의 설대에 솟아오른 촉에 봉수(鳳首)와 황수(凰首)를 꽂는다. 바닥에 장부구멍을 둥글게 파서 설대의 촉에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봉수의 높이는 55㎝, 아래에서 부리까지의 높이는 36㎝이며, 부리 끝에서 목덜미갈기까지의 너비는 32㎝이다.
그리고 입에 달린 고리에는 방울종이 달려 있는 다회(多瞺)장식이 내려진다. 봉황수식의 설치가 끝나면 끈에 꿰어진 검은 색의 휘장을 두른다.
끈으로는 봉수의 목 밑으로 감아돌려서 휘장이 바탕에까지 흘러내리도록 되었다. 이 휘장은 겹으로, 겉은 검은 색, 안은 흰색으로 하여 손으로 기워 만들었다. 휘장을 치고 나서 끈에 달려 있는 수식들 즉, 진용(振容)과 매듭장식을 늘인다.
그리고 용두판을 건너지른 건널목 위에 깁을 덮어 별갑(鼈甲)을 만든다. 별갑이 되면 매방목 주위에 판첨(板詹:‘운각판’이라고 부른다.)을 두른다.
운각판은 수직으로 설치되는 판과 위로 향해 밖으로 벌어지도록 된 판을 정첩으로 이어 붙인 것으로, 원래는 쇠고리로 연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개구리’라고 부르는 비녀처럼 생긴 못으로 배방목의 장부구멍에 끼워 고정시킨다. 판첨이 설비되면 검은 색의 휘장이 늘어진 부분에 악(幄:‘色中帶’라고 부른다.)을 두르고, 별갑 위에 ‘동방삭’이라고 부르는 정자(頂子)를 앞뒤의 용두판 위에 함께 걸쳐 씌운다.
길이 157.4㎝에 이르는 것으로, 양끝에는 용두를 새겼으며, 몸채는 쌍룡이 구름과 어울리는 조각에 색칠을 하고, 가운데에는 사자를 탄 사람을 새겼다. 이것을 동방삭이라고도 하고, 또는 죽은 사람의 갈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신선이라고도 하고 있다.
끝으로 난간을 설치한다. 난간 네 귀퉁이에 25㎝의 우목(隅木:法樹라고도 부른다.)을 세우고 중간에 난간대와 궁판 · 받침돌판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구조나 생김새로 보아 이 상여는 장강을 기본으로 하고, 난간 · 소방상 · 별갑 · 판철 · 악의 여섯 부분이 조립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바로 『세종실록』 오례지에 나와 있는 대여(大輿)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