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현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황해도지단을 결성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4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2년(고종 29)
  • 출생지황해도 해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변승웅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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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황해도지단을 결성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황해도 해주 출신. 1919년 2월 해주군 해주읍 남본정(南本町)예배당 목사 오현경(吳玄卿)이,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박희도(朴熙道)가 김명신(金明信)을 통하여 보낸 독립선언문 300매를 인수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할 때 참여하였다.

같은 해 3월 1일 남본정예배당에서 선언문이 낭독되고 200여명의 군중에 의한 만세시위가 있을 때 이를 주도하였으며, 이어 출동한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8월형을 선고받고 9개월간 복역하였다.

1920년 4월 김기한(金起漢)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 황해도지단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그해 8월 이명서(李明瑞)를 대장으로 한 대한독립단파견대 9명이 독립군자금 모집과 친일분자의 처치를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은율군수(殷栗郡守) 최병혁(崔丙赫)을 사살하고 일본경찰을 공격하여 황해도일대의 친일분자와 일본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을 때, 이들을 도와 활동하였다.

이때 활동한 독립단파견대는 구월산(九月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기에 구월산대라고도 한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신천군(信川郡) 모추리골에서 일본경찰의 공격을 받아 구월산대원들이 전사하면서 민양기(閔良基)·고두환(高斗煥)·변춘식(邊春植)·박중서(朴重緖) 등 28명과 함께 붙잡혀 1921년 8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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