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김 위에 밥을 펴놓고 시금치, 계란, 단무지, 오이, 우엉, 햄, 소고기, 참치, 멸치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소를 넣어 돌돌 말아 싼 음식이다. 오늘날의 김밥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김초밥이 우리나라 방식으로 토착화된 음식으로, 김에 밥을 싸서 먹는 형태, 김부스러기를 밥에 섞어 성형한 주먹밥 형태, 식초물로 간을 한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말아서 둥글게 만든 형태 등이 있었다. 1950~60년대를 거치며 김밥이 대중화되었고, 쇠고기와 표고조림, 달걀부침, 시금치나물, 단무지, 당근볶음 등이 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육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햄이 추가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김밥 전문점이 생겨나며 야채김밥, 당근김밥, 김치김밥, 소고기김밥, 땡초김밥, 돈가스김밥, 치즈김밥, 키토김밥 등 다양한 김밥이 소비되고 있다.
김은 해의(海衣), 해태(海苔), 해채(海菜), 자채(紫菜) 등으로 불리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경상도와 전라도 주요 해안지역, 강원도와 충청도 일부 지역의 토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등의 기록으로 조선의 김은 무역품으로 거래될 만큼 그 품질이 우수했음을 알 수 있다.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 『세시풍요(歲時風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 상원(上元) 절식(節食)으로 채소잎이나 김을 이용해 쌈을 싸서 먹는 복쌈[福裏]을 즐겼다.
복쌈이란 ‘복(福)을 싸서 먹는다.’라는 뜻으로 대보름날의 복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36)에는 ‘김쌈[海苔包]’은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과 설탕을 뿌려 석쇠에 구워서 먹는데, 요사이는 날로 구워 진장을 찍어먹기도 한다고 하였다.
김 위에 밥을 펴놓고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 말아서 싼 오늘날의 김밥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김초밥[のり巻(き) · 海苔巻(き)]’이 우리나라 방식으로 토착화된 음식이다. 1925년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물건 살 때의 주의사항으로 일본김밥을 만들려면 굵은 쌀을 구입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원족(遠足)에 먹을 점심은 주먹밥을 싸거나 김을 부스러트려 넣은 김밥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당시의 기록으로 보아 김밥은 첫째 김에 밥을 싸서 먹는 형태, 둘째 김부스러기를 밥에 섞어 성형한 주먹밥 형태, 셋째 촛물로 간을 한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말아서 둥글게 만든 형태 등이 있었다. 1930년 동아일보 기사 중 ‘김쌈밥’ 만드는 법에는 ‘아사구사노리[あさくさのり, 浅草海苔] ’라는 두꺼운 일본김을 사용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당시 조선김은 얇아 김밥을 말기엔 적당치 않아 반드시 일본김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할 경우 조선김을 두장 겹쳐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1939년 이후의 자료에서 김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하였다.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学)』의 저자 홍선표(洪善杓)가 쓴 1939년 조선일보 기사에는 제철에 잘 보관해둔 조선김에 밥, 장조림, 김치 등을 넣어 말아 싼 김밥이 도시락으로 제격임을 소개하였다.
또 경성여자사범대학의 가사과에서 집필한 『조선가정요리(朝鮮家庭料理)』(1946)에는 ‘遠足登山用點心’의 ‘마는 밥’에 ‘김밥’이 기록되어 있다. 백미로 지은 밥에 계란부침, 생선소보로, 표고조림을 넣어 만드는 법을 설명하면서
“일본서 하는 ‘스시’ 속 가미는 미림(味淋)이나 술을 많이 사용(使用)하는 것이었으나, 그리할 수도 없고 또한 그리할 필요도 없어 쓰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여 일본식의 조리법이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김 대신 달걀을 정방형으로 부쳐 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싸는 방법도 소개하였다. 단무지가 들어간 김밥은 1958년 동아일보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단무지는 이미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무에 소금, 미강(米糠), 울금, 미림(味淋), 박(粕), 감초말(甘草末) 등을 섞어 저장하였다. 단무지용 무는 ‘연마(練馬)무’라는 일본무로 길이가 2척(尺)가량이나 되어서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푹석푹석한 모래땅에 심어야 했다. 1954년 동아일보 기사에 식품저장법 중 겨에 절이는 법으로 다꾸앙[たくあん, 沢庵]과 나라즈께[ならづけ, 奈良漬(け)] 를 기록하였다.
1955년에는 우리말 순화운동을 위해 ‘다꾸앙’을 ‘단무지’로 명칭을 변경할 것을 권장하지만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단무지는 계절에 구애 없이 대중들에게 널리 이용되어 일본에서보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나라 분식집의 필수 반찬이 되었다. 김밥의 재료 중 하나인 햄의 사용은 1958년 조선일보 기사에서 처음 확인된다. ‘꽃놀이에 간편한 도시락과 초밥’에 김초밥 조리법에 런천미트나 햄을 사용하였다. 조선햄은 1920년대부터 만들어졌는데 이출을 통한 조선햄의 판로가 높아지자 농민들의 돼지 사육이 증가하였다.
1950~1960년대는 김밥을 판매하는 식당들이 늘어나면서 당시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 「언젠가 그날」, 「제2의 청춘」등에 ‘김밥’이 자주 등장하여 대중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58년 조선일보에는 세계대학봉사회 학생반에서 수재민에게 분유 60개와 김밥 120명분을 기탁하였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김밥은 단체급식용 식사로도 이용되었다.
『요리백과(料理百科)』(1966)에서 ‘김밥’조리법으로 밥 위에 준비한 여러 가지 재료를 올리는데 박오가리조림이나 표고조림은 물기를 꼭 짜서 넣어야 함을 강조하고, 김밥을 만드는 과정을 9단계의 사진을 실어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때 김은 향기있고 매끄럽고 새까맣게 윤기 흐르는 것을 써야 하며 구멍이 있거나 두께가 고르지 못하면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계절과 식탁(季節과 食卓)』(1976)에서는 밥을 지어 단촛물로 간을 한 밥에 쇠고기와 표고조림, 달걀부침, 시금치나물, 단무지, 당근볶음을 넣어 쌀 김초밥을 설명하면서 김밥을 깔끔하게 썰기 위해 촛물을 적신 식칼로 썰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 식품회사의 육가공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일제당에서 고급화된 런천미트 제품이 출시되었고, 1996년에는 돈육의 함량이 많아지고 부드러운 육질을 가진 국산햄 제품이 생산되면서 롯데햄에서 ‘김밥속햄’인 김밥용 전용제품까지 출시되었다. 과거 흰살생선을 쪄서 식홍으로 물을 들여 만들었던 생선소보로는 김밥 전용 햄에게 그 자리를 완전히 내어준 것이다. 또한 간장조림한 박고지는 우엉조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990년대 김밥 전문점과 프랜차이즈가 생겨나며 김밥은 더욱 다양화되었다. 전문점의 김밥은 주재료에 따라 야채김밥, 당근김밥, 김치김밥, 소고기김밥, 땡초김밥, 돈가스김밥, 치즈김밥, 키토김밥 등이 있고, 만드는 법에 따라 충무김밥, 꼬마김밥, 누드김밥 등이 있다.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김밥은 간편식이지만, 고른 영양소를 함유한 패스트푸드이며, 식사 후 잔반량이 적은 친환경 음식이다. 최근 편의점의 줄김밥과 삼각김밥은 매출을 보장하는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도 김밥은 대표적인 한식(韓食)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냉동제품으로도 출시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