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찬자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풍산 홍씨로, 혜경궁 홍씨의 조카뻘이다. 자는 경부(敬敷), 호는 도애(陶厓)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홍희준의 아들이며, 본인은 남원부사, 장악원 첨정을 지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조선 팔도를 다니며 많은 여행을 했는데, 이것이 세시기에 다양한 지방 사례를 포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원본은 연세대본과 광문회본이 있으며, 연세대본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자유(李子有)가 쓴 서문(1849)에는 중국의 『열양세시기』를 뛰어넘는 조선의 세시기를 만드는 데에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자유는 홍석모보다 5살 위임에도, 그와 30여 년간 교유 관계를 맺은 인물이다. 수십 편의 풍속시를 쓴 연유로 서문을 의뢰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홍석모가 말단 관리를 하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무료하게 지내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에 대해 그의 재주와 뛰어난 글솜씨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동국세시기』는 음력 정월부터 12월, 그리고 윤달까지 포함한 일년의 세시풍속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세시기이다. 이 책은 다양한 문헌을 참조하고, 서울과 지방의 실제 풍습을 널리 소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각 달의 세시풍속 항목을 보면, 대항목은 정월부터 12월 및 윤달을 합쳐 13항목으로, 중항목은 각 달에 2~7개씩 설정해 전부 33항목이며, 이를 다시 세분화한 소항목이 전체 250여 개에 이른다.
세시의 내용은 일반세시, 명절세시, 농경세시, 신앙세시, 음식세시, 놀이세시, 언어세시, 복식세시 등에 걸쳐 매우 다양하다. 신앙세시에는 민간신앙을 중심으로 기원, 금기가 포함되어 있고, 언어세시에는 속신과 속담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항목으로 보아 신앙세시와 음식세시의 비중이 가장 높으며, 시기로는 정초와 정월대보름 중심의 정월 세시가 가장 분량이 많다.
『동국세시기』에는 수많은 국내외 문헌과 지역의 사례가 나타난다. 중국 문헌이 40여 편에 이를 정도로 많다. 빈도로 보면 송나라 여원명(11~12세기)의 『세시잡기(歲時雜記)』, 양나라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6세기), 유가의 경전인 『예기(禮記)』의 월령(月令), 송나라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1147), 명나라 유동 · 우혁정의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 등의 순이다. 국내 문헌은 10편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적은데,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1614), 노사신 등이 편찬한 『여지승람(輿地勝覺)』(15세기, 동국여지승람), 『고려사』 등이 2회 이상 인용되었다. 가장 많이 인용한 유득공의 『경도잡지』(1796)는 굳이 인용 표기를 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중국 문헌의 인용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세시의 연원을 밝히거나 조선과 중국의 세시를 비교하기 위한 의도로 파악된다. 그리고 중국 자료에 비해 국내의 세시 자료가 적은 것도 국내 인용 자료가 적은 이유라고 판단된다.
그에 비해 국내의 각 지방, 각 관청의 사례는 매우 풍부하다. 특히 서울, 제주, 경주에 대한 풍속이 많으며, 지역별로 충청도, 함경도, 평안도에 대한 풍속이 자주 나오지만, 상대적으로 전라도에 대한 풍속은 적은 편이다. 구체적인 인용 지명으로 안동, 강릉, 춘천, 풍기, 상주, 진주, 보은, 고성, 통영, 해주, 보은, 광주(廣州) 등이 나타난다. 특히 ‘우리나라 풍속(東俗)’, ‘사대부[士大夫家, 卿士家]의 풍속’이란 표기가 여러 번 나오며, 시대별로 ‘고려풍속’, ‘조선풍속’이란 표기도 나온다. 관청의 경우에는 ‘내의원’, ‘관상감’의 풍속이 서너 번 나오며, ‘각 관청’, ‘대궐안’이란 표기도 나온다. 특히 민간의 ‘떡집’, ‘술집’, ‘항간(巷間)’의 풍속도 수차례 나온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객관적으로 서술하였으며, 본인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은 굳이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다. 한편 편찬자인 홍석모의 주관적 생각을 담은 “생각컨대(按)”의 표기도 몇 차례 나타난다.
이 책은 최초의 세시기인 유득공의 『경도잡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전반적인 체재를 받아들이고,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일부 보완 · 첨가했다. 시기별로 2030년 간격으로 출간된 유득공의 『경도잡지』와 문체반정의 핵심 인물인 김려의 「상원이곡」(18171819), 그리고 홍석모의 『동국세시기』(1849)의 상원 부분을 비교하면 상호 영향 관계가 나타난다. 이 3편은 일반세시, 농경세시, 음식세시 등은 1~2종목을 제외하고 별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놀이 부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경도잡지』 상원의 놀이는 석전, 연날리기의 2종목인데, 「상원이곡」에는 널뛰기, 윷놀이, 교현을 첨가해 5종목으로 늘었으며, 『동국세시기』에는 널뛰기와 윷놀이가 제석부터 정초 세시로 옮기고, 대신 팔랑개비, 고고매, 동전치기, 횃불싸움, 줄다리기, 차전놀이, 놋다리밟기, 원놀이 등의 8종목이 추가되어 전부 10종목으로 늘었다. 이런 점을 살펴보면, 『동국세시기』는 조선 후기 세시기 중에 가장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이런 점에서 조선 후기의 민간과 상층의 시대적 생활상이 총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