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혜보(惠甫)·혜풍(惠風), 호는 영재(泠齋)·영암(泠庵)·고운당(古芸堂). 아버지는 사인(士人) 유춘(柳瑃)이다.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고, 시문에 뛰어난 재질이 인정되어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로 들어가 활약이 컸다. 그 뒤 제천·포천·양근 등의 군수를 거쳐 말년에는 풍천부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경도잡지(京都雜志)』·『영재집(泠齋集)』·『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앙엽기(盎葉記)』·『사군지(四郡志)』·『발해고(渤海考)』·『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등이 있다.
특히 『경도잡지』는 조선시대 시민 생활과 풍속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서적이며, 『발해고』는 유득공의 학문의 깊이와 사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저서이다. 규장각검서로 있으면서 궁중에 비장된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일본의 사료까지도 읽을 기회가 많아, 이러한 바탕에서 나온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오늘날의 학문 수준으로 보아 높이 평가할 수는 없으나, 서문에서 “고려시대의 역사가들이 통일신라를 남조로, 발해를 북조로 하는 국사 체계를 세우지 않았던 것이 영원히 옛 땅을 되찾는 명분을 잃게 하였다.”고 주장해 민족주체의식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민족주체의식의 확립에 노력한 모습은 『이십일도회고시』에서도 잘 보여준다. 단군조선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4,000년에 걸쳐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의 21개 도읍지의 전도(奠都) 및 번영을 읊은 43편의 회고시에는, 거듭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민족의 주체 의식을 되새겨보려는 역사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시는 청나라의 이조원(李調元)·반정균(潘庭均)으로부터 재기종횡(才氣縱橫: 재주와 기백이 활발함), 재정부유(才情富有: 재주가 많음)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