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왕국의 마지막 왕 대인선(大諲譔)의 세자를 자칭하고 발해가 멸망한 8년 후인 934년(태조 17) 장군 신덕(申德) 등과 더불어 그 무리 수 만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하여 왔다.
태조는 그에게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으며 대광현에게 국성(國姓)을 붙여 왕계(王繼)라는 성명을 내려 종적에 편입하게 하고 원보(元甫)의 관직을 수여한 뒤 배천(白川)을 지키게 하여, 그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또 그 요속에게도 관작을, 군사에게는 전택을 주어 각각 안거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귀화한 시기에 대하여는 기록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즉, 『고려사(高麗史)』 태조 세가에는 934년 7월로, 『고려사』 연표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925년,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926년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 태씨(太氏)는 대부분 그를 시조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