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때, 당나라에 귀화한 고구려의 왕족.
내용
이처럼 고구려출신의 귀화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예우를 받았다. 양경(揚憼)이 엮어낸 「고진묘지(高震墓誌)」에는 그를 부여의 귀종(貴種)이며, 진한의 영족(令族)이라 하고 그의 선조가 당나라에 귀화한 뒤 대를 이어 왕사(王嗣)로 칭하고, 당나라의 국빈으로 식읍(食邑)이 1,000실(千室)이었다고 하였다.
묘지에는 발해인(渤海人)이라 되어 있지만 실제는 고구려의 왕족인 고씨출신이다. 고진은 당나라 왕실에 충성을 다하였는데 안사(安史)의 난 후 자주 당나라를 침입하며 괴롭히던 북방민족을 막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움으로써 개부의동삼사 공부상서 금오위대장군 안동도호 (담)국공(開府儀同三司工部尙書金吾衛大將軍安東都護郯國公)의 직함과 영작(榮爵)을 받았다.
도호(都護)로서의 봉지(封地)는 만리장성 부근의 노룡(盧龍)과 요서(遼西)지방의 유성(柳城)일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대종(代宗) 대력(大曆) 8년 5월말 뤄양(洛陽)의 사제(私第)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石刻史料新編』(羅振玉)
- 『역주한국고대금석문(譯註韓國古代金石文)』 2(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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