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최후징(崔後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석태(崔錫泰)이고, 아버지는 최창걸(崔昌傑)이며, 어머니는 윤동형(尹東衡)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낭청(郎廳)·지평(持平)이 되었는데, 1788년 지평으로 있을 때 오익환(吳翼煥)의 상소사건에 연루되어 삭직되었으나, 1793년에 복직되었다.
1794년에는 언로를 개방하라는 진언을 국왕에게 올렸다가 제주도로 귀양당하기도 하였으나, 이듬해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加資: 정3품 당상관 이상으로 품계를 올려 주는 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