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여(重汝). 최몽열(崔夢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최순(崔淳)이고, 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최상익(崔商翼)이며, 어머니는 이원필(李元弼)의 딸이다. 동래부사를 지낸 최명상(崔命相)은 그의 아들이다.
1686년(숙종 12) 성균관의 학생들에게 보인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 직부전시되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정자가 되고, 이듬해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그 뒤 1674년 지평이 되고, 이듬해 정언·지평을 거쳐, 1698년 장령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헌납·사간 등을 역임한 뒤 1702년 필선(弼善)·집의(執義)·사간·승지, 1704년 3월 19일 숙종이 명나라의 의종(毅宗)을 제사 지낼 때 집례(執禮)하였으며, 승지,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07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승지로 발탁되고, 1711년에도 승지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