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0년(충렬왕 16)에 급제하였는데, 당시 지공거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정가신(鄭可臣), 동지공거는 판비서사(判秘書事) 김변(金賆)이었다.
『동문선』에 실려 있는 고중지(高中址)의 오언고시(五言古詩, 送崔咸一直郎出按慶尙)와 설문우(薛文遇)의 오언배율(五言排律, 送崔侍御咸一貶猬島)로 미루어볼 때, 직랑(直郎)으로 경상도를 안찰하러 나갔으며, 시어(侍御)로 있던 중 위도(猬島)로 귀양갔던 것 같다.
『동문선』과 『동국여지승람』에 진주 남강을 노래한 칠언절구(七言絶句, 泛舟遊晉州南江)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