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곡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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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있는 조선후기에 창건된 충곡서원의 서원터.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전용우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충곡서원지 미디어 정보

충곡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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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있는 조선후기에 창건된 충곡서원의 서원터.

내용

1692년(숙종 18)충곡리수락산(首落山) 아래 창건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계백(階伯)·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하위지(河緯地)·유응부(兪應孚)·김익겸(金益兼) 등 8인을 제향(祭享)하였다.

초창기에는 육신서원(六臣書院)이라 하였고 8인을 제향한 후에는 팔현서원(八賢書院)으로 호칭되기도 하였다. 충곡서원은 후대로 내려오며 제향인이 크게 증가하여 지금은 모두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추배된 10인은 김정망(金廷望)·김홍익(金弘翼)·박종(朴種)·이민진(李敏進)·조병시(趙秉始)·김만중(金萬重)·김자빈(金自鑌)·이현동(李賢童)·이학순(李學純)·박증(朴增)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명현의 제자이거나 후손인 향인(鄕人)들로서 충절·효행의 행적이 있다. 김익겸의 후예인 김만중을 비롯, 김정망·조병시·박종 등은 효행이 세상에 널리 드러나 알려져 있다.

김자빈은 김장생의 문하생으로 김홍익·이민진과 더불어 병자호란 때 순절하였고, 이현동·박증은 단종에 대한 충절로, 이학순은 일제에 저항한 절의로 제향되었다.

18인의 모신 차례를 보면 주향(主享)에는 계백을 중심으로 한 사육신이 나란히 봉안되었고 좌우 배향위(配享位)에는 김익겸 등 11인이 배치되어 있다.

충곡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5년에 사우(祠宇)만 중수하였는데 얼마 안되어 다시 피폐해지자 1976년 서원지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하고 1977년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복원시 사우를 손질하고 주초석(柱礎石)을 따라 동재와 서재, 외삼문과 내삼문, 담장 등을 복원하였다. 서원 규모는 목조 기와로 된 사우가 12평, 동재·서재는 각 8평, 내삼문·외삼문은 각 4평으로 되어 있으며 경내에는 성삼문 유허비(遺墟碑)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계백의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 - 『충곡서원지(忠谷書院誌)』

  • - 『향토연구회지』 5(논산군 향토연구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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