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3월 1일 창간된 『국민일보』가 전신이다. 1954년 3월 1일 이도영(李道榮)이 폐간된 『국민일보』를 『충북신보(忠北新報)』로 제호를 바꿔 사장에 취임하였다.
이도영은 사시(社是)를 ‘불편부당, 향토문화의 계발, 도정편달, 농촌경제의 부흥’으로 변경하였으며, 3월 15일자로 신문발행을 계속하였다. 1960년 8월 15일 다시 제호를 『충청일보』로 바꾸었다. 『충청일보』는 지방실정에 따라 적정선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경영을 합리화하였다.
이 신문은 1967년 ‘충북폐도설(忠北廢道說)’이 나돌 때는 지상운동을 통하여 이를 불식시켰다. 1973년 6월에는 사시를 ‘지역사회의 증인’으로 바꾸고 각종 시설과 장비를 새롭게 구입함으로써 혁신을 꾀하였다.
1974년 6월 1일에는 주간 『소년충청』을 발간하였으나 그 해 11월에 폐간되었다. 1977년 8월 24일에는 청주시 사창동(司倉洞) 304번지에 ‘충청매스컴’이라는 사옥을 준공 · 이전하였다. 같은 해 8월 24일, 이 신문은 지령 1만 호를 기념하여 주 36면으로 증면하였고, 1978년 3월 1일부터는 주 48면으로 다시 증면 발행을 단행하였다.
1982년 10월 1일에는 출판국을 신설하여 충청북도 출판계에 큰 변혁을 가져오다가 1985년 7월 폐쇄되고 별도 출판사로 운영되었다. 1986년 1월 1일부터는 격일제 12면으로 증면하는 등 계속 증면을 단행하여 1998년 당시 주 98면(1일 16면)을 발행하였다. 1997년 9월 1일에는 신문 발행을 조간으로 전환하였고 1998년 인터넷 전자신문 마이넷을 개통하였다. 그러나 1996년부터 시작된 노사관계의 악화로 장기 파업으로 이어지는 파행이 계속되었고 2004년 11월 들어 이러한 분쟁 속에서 결국 충청일보는 발행이 중단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무려 2년 이상 지속됐고 충청지역의 뜻있는 많은 인사들로부터 외면받는 사태를 불러왔다. 2007년 현 사주인 이규택 회장이 전(前) 사주와의 장기간에 걸친 협상 끝에 충청일보의 인수를 매듭짓고 2007년 3월 1일부터 속간되었고, 이와 함께 사무실을 운천동으로 옮기고 약 5억원대 중형컴퓨터 서버와 솔트웍스(주)의 ‘news plus’ 신문편집시스템, 화상편집용 컴퓨터, 노트북 등의 도입을 이뤄내었다.
2009년 3월 현재, 이 신문은 주 100면을 발행하고 있다. 현재 이 신문이 주관하는 주요 행사는 충청대상(2009년 제정), 충풍 산하 시ㆍ군대항 역전마라톤 대회, 충청페스티벌(2007년 제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