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대로 풀이하면, 치마를 입고 움직여서 생기는 서슬, 또는 옷을 정식으로 갖춰 입지 않고 치마저고리 정도만 걸치고 나서는 여인의 차림새를 뜻한다.
이는 여인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설친다는 평범한 어원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근자에 일종의 유행어가 됨으로써 주목의 대상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바람직하지 못한 여성들의 극성맞은 행위로 지목받은 치맛바람의 유형을 크게 분류해보면 대개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제도의 맥락에서 자모회를 중심으로 일으키는 어머니들의 치맛바람, 둘째, 계(契)모임을 비롯하여 각종 투기행위와 같은 경제분야에서 회오리치는 치맛바람, 셋째, 춤바람·도박바람처럼 향락행위와 관련된 치맛바람이 그것이다.
이상의 행위는 특히 6·25전쟁과 휴전 후의 혼란한 사회환경 속에서 서양문물의 직수입에 자극받아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1970년대에 이르는 고도경제성장기와 함께 진행된 현상으로 흔히 지적된다.
먼저 교육현장에서 치열해지기 시작한 입시경쟁에 뒤지지 않도록 자녀들을 뒷받침해주려는 동기에서 출발한 자모들의 학교출입·교사초대 등의 행위가 마침내는 교권을 짓밟고 교육자를 부패시키며 교육을 저질화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치맛바람이 극치에 이르러서 과열경쟁·과열과외의 바람을 일으켰고, 1980년 7월의 교육개혁조처의 시행으로 과외공부를 물리적으로 몰아냄으로써 다소 수그러들어 음성화된 형태라 하겠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교육활동은 자녀들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치맛바람이 드센 어머니의 자녀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며, 과대망상이 되거나 반대로 나약하고, 의존적이며 열등감에 시달리는 청소년이 되기 쉽다.
둘째, 경제분야의 치맛바람은, 계모임과 같이 친목과 금융혜택의 순수한 목적에서 부인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나다니는 습성에서 비롯한다. 이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 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면서 치맛바람이라는 호칭이 붙게 된 것이다.
계주(契主)가 돈을 횡령하고 도피한다든가 거액의 부도를 내는 등의 사고가 나기 시작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여성중심으로 운영하는 대규모의 계활동에는 이 유행어가 따랐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는 대규모의 사채놀이·어음놀이 등 은행이나 금융기관을 상대로 금융부정을 저지르는 대형사건들이 노출되었는데, 이런 사건에도 거의 대부분 여성의 ‘큰손’이 작용했음이 드러났다.
셋째 유형은 여성들의 여가활동과 관계 있는 것으로, 특히 부유층·고위층의 유한부인(有閑婦人)들이 주목의 대상이 됨으로써 더욱 사회에 물의를 자아낸 것이다. 그 연원은 1950년대 정비석(鄭飛石)의 소설 <자유부인 自由夫人>에서 찾을 수 있는 자유분방한 유부녀의 애정행각·향락추구, 또는 분에 넘친 여가활동의 유형이다. 춤바람·도박바람으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파탄에 몰아넣는 사례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구체적인 유형은 이와 같이 분류될 수 있겠으나, 세 가지 모두에 공통되는 점은 돈이 개입되고 있다는 것과 여성 중에서도 가정주부, 어머니들의 극성스러운 행위가 문제의 불씨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 두 요인과 관련이 있는 사회경제적 변동과 밀접하다.
우선 돈의 가치에 대한 우리 문화의 통념은 근대화되기 전까지의 시기에 있어서는 매우 소극적이고 심지어는 부정적인 요소까지 담고 있었다. 청빈낙도(淸貧樂道)의 선비정신, 도교적(道敎的)인 지향(指向)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서구자본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특히 지난 20여 년의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부터 황금만능주의·물질지상주의와 같은 가치지향이 떠오르게 되어 인간의 가치마저 화폐가치로 가늠하는 풍토가 만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육도 돈으로 좌우할 수 있다는 치맛바람에 의한 교육가치와 교권의 침범이 생겼으며, 부녀자들이 경제활동, 그것도 주로 비공식 부문의 지하경제활동에 깊이 개입하는 치맛바람으로 나타나 국가경제의 암적 존재가 되는가 하면, 또 향락 위주의 여가활동에서도 과잉소비의 물량주의 형태가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 요인은 여성의 지위와 구실에 대한 관념과 제도상의 변화가 사회경제적 변동에 미처 따르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남성 위주의 규범과 제도의 틀에 얽매여 억눌림을 받아온 여성이 개화(開化) 이래 시대적 조류를 타고 근대화과정에서 나타난 사회경제적 변동에 힘입어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통한 자아실현의 기회를 찾으려 함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남성중심의 가치와 제도로 가득차 있고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규범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여성의 실질적인 지위향상이나 사회참여의 기회는 여전히 제한된 테두리에 머물고 있다.
그 동안 경제적인 소득수준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생활양식도 바뀌고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환경 속에서 꾸준히 증대되어온 교육기회의 혜택으로 잠재능력이 계발(啓發)되고 학력과 의식이 높아진 여성의 에너지는 정규적이고 합법적인 통로를 따라 건전하게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산될 여지가 너무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여성의 사회참여의 의욕은 ‘치맛바람’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여성들이 곧 어머니들이라는 사실을 돌이키면, 그들의 한(恨)과 욕구좌절이 자아낸 치맛바람의 서슬이, 다음 세대들에게 주게 될 영향은 결코 소홀히 다루어질 일이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따라서 이는 여성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 우리 나라 장래의 문제이며, 그 치유는 사회구조와 가치의식의 근본적인 개혁을 통한 진정한 여성의 인간해방에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2000년을 맞은 지금 한국 사회의 치맛바람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 어머니들의 교육 열기에 따른 치맛바람은 여전히 수그러 들 줄 모른다. 최근의 사례를 든다면 대학 입시에서 차지하는 내신의 비중이 커지면서 외국어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등의 특수학교 학부모, 어머니들의 교육 행정당국에 대한 거센 항의성 바람은 바로 치맛바람에서 비롯한다.
뿐만 아니라 아주 최근의 미술, 음악 등 예체능계 대학에 남학생 입학 할당제 논의에 대해서도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적지 않은 사회적 영향력으로 행사되었다.
이 같은 여성의 자녀 교육 열의에 대한 치맛바람은 전통사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자녀 교육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여성, 즉 어머니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에서 변함없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적 모순도 엿보게 한다. 또한 부동산 투기와 주식 투자 등 1990년대의 일시적이나마 경제적 호황기에 여성들의 이른바 “재테크”열의도 일종의 치맛바람이었다.
이는 여성의 경제적 실권으로 사회적 지위 상승의 효과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다른 치맛바람에 못지 않았다. 즉, 그것은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IMF)를 초래하는 데 일정한 구실을 한 것이다. 동시에 그 같은 재테크에 실패한 여성은 가족의 해체에 직면해야 했고, 성공한 여성은 다른 여성들을 주눅들게 하는 등 상대적 위축감,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이상의 치맛바람은 종래 한국 여성의 근면과 검소질박함을 통한 알뜰한 가정주부상을 비웃는 듯 너도나도 한탕주의로 치닫게 하는 지름길로 이끌기도 하고 더 나가서는 뇌물을 통한 비뚤어진 거래 현상을 낳게 하는 길도 닦아 주었다. 1999년, 일부 내로라하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부인들에 의해 빚어진 이른바 ‘옷로비사건’도 그저 우연히 일어난 단순한 일이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를 내다보는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그래도 건전한 치맛바람도 불기 시작하여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예컨대 ‘신아줌마운동’ 바람이다.
작게는 지하철, 버스 등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 질서를 지키자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지역의회, 국회 등에서 의정 감시단의 구실, 또는 각종 모니터 활동을 통한 소비자 운동과 환경운동 등 아줌마에 의한 사회 바로세우기 운동 등이 정말 아름다운 치맛바람, 상큼한 봄바람으로 계속 불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