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키르기즈공화국(Kyrgyz Republic)으로,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로, 중국 서부 접경지대에 위치한다.
면적은 19만 9951㎢, 인구는 566만 4939명(2015년 현재), 수도는 비쉬켁(Bishkek)이다.
종족구성은 키르기즈인 64.9%, 우즈베크인 13.8%, 러시아인 12.5%, 우크라이나인 1%, 위구르인 1% 등이다. 언어는 키르기즈어와 러시아어가 사용되고 있고, 종교는 이슬람교 75%, 러시아정교 20% 정도이다.
지형의 3분의 2 이상이 표고 3000m를 넘는 고지이기 때문에, 기후가 산악지대의 고도에 비례하여 한랭하나 계곡의 기온은 높고 강우량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주요 산업은 목축업이며 산록의 초원지에서 양의 방목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면서 최고품질의 양모가 생산되고 있고, 남키르기즈의 페르가나분지에서는 면화·과수·쌀이 생산된다.
주요 지하자원은 수은·안티몬 등이며 풍부한 전력을 이용하여 공작기계·전자기기·전기설비 등을 생산하고 있고 일부는 수출하고 있다. 키르기즈인은 원래 예니세이강 상류에 살고 있던 종족으로 몽골의 유목민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626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038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90석)이다. 주요 정당은 악졸당, 사회민주당, 아타메켄당, 공산당, 투란당, 알 나미스당 등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후 훈족의 지배를 받고 7세기에는 돌궐족의 지배를, 그 뒤 당나라의 속령이 되었으나 위구르제국 성립 후에는 위구르의 통치를 받았다. 13세기에는 칭기즈칸에게 정복되고, 18세기 중엽에는 청나라와 코칸드칸국의 속령이 되었으며, 1864년 이후부터 러시아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 후 키르기스스탄은 투르케스탄의 일부가 되었으며 1924년 중앙아시아 행정구역 개편시 자치주로, 1926년 자치공화국으로, 1936년 연방공화국으로 승격되면서 구소연방의 일원이 되었다.구소연방의 붕괴과정에서 1990년 12월 주권선언을 하고, 1991년 8월 3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구소연방이 해체되자 1992년 3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였으며, 1993년 5월 4일 헌법을 제정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우경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92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우리나라는 1992년 1월 31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8년 현재 상주공관이 개설되어 있다.
1997년 6월에는 아카예프 대통령이 방한한 바 있으며, 1998년 12월에 EDCF차관 협정 및 시행 약정, 2002년 2월에 SOFA 교환각서, 2006년 7월에 관광 협정과 항공 협정, 2007년 11월에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키르기즈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억 5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편직물, 합성수지, 자동차 등이고, 수입액은 846만 달러로 주종목은 견과류, 한약재, 스크랩 등이다. 2015년 현재 토지공사, 삼성, 효성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약 1만 8403명의 고려인동포와 1,092명의 한국교민이 있다. 이들 교민은 1937년 스탈린 체제하에서 연해주 및 극동지역으로부터 강제 이주된 한인 1세 및 2, 3세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이들 한인사회에 한국과 미국의 한인교회가 목회자를 파견하여 선교활동을 하면서 한글교육과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92년 1월 21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5년 현재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측은 1991년 4월 통상·경제협력 협정, 1992년 1월 무역·경제공동위창설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