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

타이의 국기
타이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아시아 동남부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에 있는 입헌군주국.
이칭
이칭
타이, 태국(泰國), 타일랜드,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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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아시아 동남부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에 있는 입헌군주국.
개관

정식 명칭은 타이(The Kingdom of Thailand)이며, 한자어로 태국(泰國)이라고도 한다.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는 3219㎞이다.

면적은 51만 3,120㎢, 인구는 6797만 6405명(2015년 현재), 수도는 방콕(Bangkok)이다.

종족구성은 타이족 75%, 중국인 14%, 말레이족 2.9% 등이다. 언어는 타이어와 영어를 사용하며, 국민의 95%가 불교도이고, 4%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기후는 고온다습의 열대성이며, 주요 자원으로는 천연고무·타피오카·쌀·주석·텅스텐·안티모니·천연가스 등이 있다. 1961년 이래 4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여 연평균 7∼8%의 건실한 경제성장을 계속했으나, 최근에는 세계경제 불황으로 인한 수출 부진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3,751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5,547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150석)과 하원(480석)으로 구성된다. 주요 정당은 민주당, 푸에아 타이, 푸에아 판딘 등이다.

약사

타이는 13세기에 발달한 수코타이 왕조 때 영토를 넓히고,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일시 미얀마군에게 지배당하였으나 곧 물리치고 독립하였다.

19세기 당시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독립국으로 계속 존속되었던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은 타이가 당시 유능한 통치자를 만났고,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그들의 경쟁의식과 자존심을 적절히 이용한 결과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초기에는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1917년 연합국의 편으로 참전하여 승전국이 되어 국위를 높였다. 1932년 무혈 군사혁명이 일어나 지금의 입헌국주제가 되었으며, 타이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군사혁명으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타이의 정치적 특징은 군부와 민간정치세력 간의 균형 위에서 정치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이며, 군부의 이익 보호와 지지를 배경으로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정치를 집행한다는 점이다. 국왕은 국민적 단결과 화합의 구심점으로, 국가적 위기 때에는 조정자 구실을 수행한다. 국민들은 오랫동안 독립국가를 유지한 데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왕에 대해 높은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불교의 영향력이 매우 커 2만 7000여 개의 사찰이 있으며, 건축·회화·조각품·고전문학 등에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현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 즉위한 이래 국가를 대표하면서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그 아래 실권자 아피시트 웨차치와 총리가 2008년 12월 18일 취임하여 내각을 이끌고 있다. 2007년 8월 신헙법을 제정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자유를 표방하며, 1946년 유엔에, 1993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타이는 1949년 10월 21일 대한민국을 정식 승인하였고, 1950년 11월 1일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우리나라는 1959년 1월 수교하고, 2008년 현재 상주공관이 개설되어 있다.

양국은 1961년 9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63년 5월 무역전시품면세통관 협정, 1967년 7월 항공 협정, 1967년 10월 관용여권사증 및 수수료 면제 협정, 1977년 10월 이중과세회피 및 탈세방지 협정, 1981년 1월 운수소득면세 협정, 1981년 11월 일반여권사증면제 협정, 1982년 2월 체신우편 협정, 1985년 8월 과학기술협력 협정, 1989년 9월 투자보장 협정, 1998년 5월 범죄인인도 협정, 1998년 7월 공동위설치 협정, 2002년 5월 해운 협정, 2003년 8월 정보통신협력양해각서, 2004년 8월 문화교육협력 협정, 2006년 6월 이중과세방지 협정(개정) 등을 체결하였다.

양국간 관련 단체로는 재타이한인회, 한·타이협회, 한국전참전용사회, 한․타이상공회의소, 재타이한인학교 등이 있다. 또한, 타이는 농촌개발을 위하여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부 지도층인사 등 새마을시찰단이 방한한 바 있으며, 대규모 건설사업에 우리나라 업체를 참여시키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타이에서의 해외건설 중 1966년 1월 7일 착공하여 1968년 3월 준공한 파타니-나라티와트 고속도로공사는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해외에 진출한 최초의 공사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는 국제규격의 고속도로를 처음으로 건설해본 공사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건설사상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 건설공사는 타이 남단 말레이시아와의 국경 부근에 위치한 두 도시 파타니(Pattani)와 나라티와트(Narathiwat)을 잇는, 길이 98㎞의 2차선 고속도로공사로서, 우리나라의 현대건설주식회사가 수주하였다.

당시 고속도로 시공이 처음이었던 현대건설은 미국 기술용역회사의 감리·감독을 받으면서 미국식 시방서(示方書)에 따라 공사를 수행하였으나, 국제규격의 시방서대로 시공해 본 경험이 적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하였다.

이러한 기술·경험의 부족으로 인하여 현대건설은 이 공사에서 계약액의 절반이 넘는 300만 달러 정도의 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이 공사를 통하여 국제규격의 시방서 적용, 고속도로 시공기법, 장비운영방법, 외국의 기후·풍토·생활습관 등에 대한 대응방법, 인력관리방법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귀중한 경험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끝까지 성실하게 시공하여 공사를 완공시킴으로써, 현대건설은 물론 우리나라 건설업체 전체의 국제적 신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공사를 계기로 타이에서는 고속도로공사 수주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에 따른 경험축적은 뒷날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크게 활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대 타이 수출액은 2015년 현재 64억 달러로 주종목은 철강, 화공업, 전자전기 등이고, 수입액은 49억 달러로 주종목은 천연고무, 반도체, 기호식품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32명의 타이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외환은행, 삼성, 대우, 현대 등 375여 개 업체가 진출해 있고, 약 9만 3400명의 한국교민이 있다.

한편, 북한과는 1975년 5월 8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6년 현재 주 필리핀 대사가 그 임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측은 1978년 9월 무역 협정, 1982년 2월 체신우편 협정, 1992년 8월 항공 협정, 2001년 4월 쌀부채 해결 위한 양해각서, 2002년 3월 투자증진 및 보호 협정, 문화협력 협정, 뉴스교환 협정, 2004년 1월 GSM통신관련 협정 등을 체결한 바 있다.

북한의 대 타이 수출액은 2007년 현재 3619만 9000 달러로 주종목은 플라스틱·유기화학·기계류 등이고, 수입액은 9246만 달러로 주종목은 곡물·섬유·기계류 등이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타이 개황』(외무부, 1992)
『해외건설현황』(해외건설협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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