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 ()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서산, 당진, 태안, 홍성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서산, 당진, 태안, 홍성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남도 서부의 태안반도에 위치한 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남도 서부의 태안반도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서산시, 서 · 남 · 북쪽은 가로림만 · 적돌만 · 천수만 등과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5°32'∼126°26', 북위 36°23'∼36°58'이다. 면적은 516.13㎢이고, 인구는 6만 348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6개 면, 186개 행정리(6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남문리에 있다.

자연환경

태안반도의 서쪽에 자리 잡은 이 군에는 동쪽 서산시 일대의 가야산지(伽倻山地)에서 서쪽으로 전개되는 구릉성 산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 백화산(白華山, 284m)이 있다. 이곳에서부터 산지가 사방으로 뻗치면서 침식되어 많은 만입(灣入)과 반도, 대소의 섬들을 형성하고 있는데, 남쪽으로 남면반도와 안면도, 서쪽으로 소원반도와 근흥반도, 북쪽으로 이원반도 등으로 갈라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100∼300m 높이의 저산성 산지들이 곳곳에 분포해 완사면 및 구릉지들이 점철하고 있을 뿐, 하천과 퇴적평야의 발달은 미약하다. 해안지형은 해안선이 길고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며, 연안의 수심이 얕고 조차가 커서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였다.

기반암은 대부분 선캄브리아기의 서산군층에 속하는 편암, 경기편마암콤플렉스에 속하는 화강암질편마암의 변성암류와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군의 지형은 대체로 이들 암석의 분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 군 일대의 지형은 화강암류로 구성된 지역 중 해안 일대의 일부 지역, 화강암질편마암으로 구성된 소원 일대의 지역이 산지 내지 구릉성 산지를 나타낼 뿐 나머지 전 지역은 높이가 낮고 평탄한 지형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은 120m 이하의 기복량을 나타내고, 5° 이하의 완경사 지형이기 때문에 규모가 큰 하천이 발달하지 못했다.

또한 산악지와 산사면 등 지형적으로 취락이 발달하기에 부적당한 곳을 제외한 저기복 구릉지의 토양은 강한 산성 내지는 약한 산성을 띠는 적황색토가 대부분이다.

연평균 기온 12.4℃, 1월 평균기온 0.2℃, 8월 평균기온 25.3℃이며, 연 강수량은 1,471.10㎜이다.

역사

우리나라 남한 각지에서 산재해 발견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태안읍 장산리 등지에서 7기가 발견된 바 있다. 태안 일원에서는 많은 토기가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백제시대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삼한의 마한 50여 개 국 중 신소도국(臣蘇塗國)에 해당되며, 현 태안읍 동문리, 즉 백화산 산기슭의 남향 저지대(일명 샘골)의 전답지대가 그 중심지대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에 천군(天君)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역이었던 소도(蘇塗)의 칭호가 전해온 것으로 보아, 이 고장은 당시 제천의식의 중심이 된 부족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마한권을 정복해 명실공히 백제가 고대국가로 크게 발전하게 된 근초고왕 때 태안은 백제권에 들어갔고 성대혜현(省大兮縣)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 757년(경덕왕 16) 기군(基郡)이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질 무렵 성대혜현은 소태현(蘇泰縣, 또는 蘇州)이 되었다. 이 무렵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태안의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거암의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1018년(현종 9) 지금의 태안인 소태현은 부성군의 속현에서 운주(運州: 지금의 홍성)에 속하게 되었다. 충렬왕 때에 이르러 소태현 출신인 환관(宦官) 이대순(李大順)이 원나라의 은총을 입어 지금의 이름인 태안으로 고쳐져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처음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가 수령을 겸임하다 뒤에 부사(副使)가 방어사(防禦使)를 겸임하고 병마(兵馬)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신라 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재했던 향 · 소 · 부곡이 고려 때에도 지방행정구역의 하나로 군현의 하부조직에 속해 있었는데, 이 군에도 복평향(福平鄕) · 오산소(吳山所) · 양골소(梁骨所) · 안면소(安眠所) 등이 있었다.

또한 고려시대 삼남(三南)의 조곡(租穀)을 모두 서해를 통해 개경의 서강(예성강 하류)에 집중시켰던 바, 태안반도의 일각인 안흥정(安興亭) 부근의 심한 암초와 풍랑으로 멀리 우회하는 수로를 택하게 되자, 인종과 의종 때 태안의 동쪽 지협인 굴포에 운하를 개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난공사로 10여 리밖에 굴착하지 못하고 그 뒤 조선시대까지 여러 번 완공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고려 말 왜구의 침탈이 혹심해질 때 이 군은 서산 지방과 같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따라서 한동안 행정이 마비되어 당시 수령이 겨우 두 명의 아전을 데리고 서산군에 속했다가 다시 예산군으로 옮겼다고 한다.

1413년(태종 13) 대폭 개편된 군현제도로 충청도는 4목(牧) 14군(郡) 34현(縣)이 되었는데, 이 군은 고려 말과 같이 태안군으로 소근포(所斤浦)와 더불어 충청도 서쪽의 변두리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해미(海美)가 서산군에서 승격, 분리해 군이 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 군과 함께 다시 서산군에 통합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안면읍 승언리 출신인 이종헌(李鍾憲)이 독립투사로서 일제에 항거해 큰 공을 세웠다.

1950년 6·25전쟁 때 북의 많은 피난민들이 이곳에 내려와 간척사업을 벌이고 인삼 재배 등을 하며 정착하게 되었다. 1972년 9월 1일 안면면에 고남(古南)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에는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이북면 청산리 · 마산리가 원북면에, 안면면 간월도리가 부석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안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보령군 오천면 삽시도리 일부가 안면읍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0일안면읍의 고남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었다. 1987년 1월 1일 이북면을 이원면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89년 1월 1일에는 태안읍 · 안면읍 등 2개 읍, 6개 면이 서산군에서 분군(分郡)되어 태안군이 설치되었다.

유물 · 유적

태안읍 장산리, 고남면 고남리 일대에는 남방식 고인돌이 남아 있고, 안면읍 신야리와 근흥면 신진도리에는 조개무지[貝塚]가 각각 발견되고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1514년(중종 9)에 축성된 소원면 소근리의 태안 소근진성(충청남도 기념물, 1993년 지정), 1655년(효종 6)에 쌓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명나라 사신을 맞기 위한 호화주택을 건립하기도 한 근흥면 정죽리의 안흥성(사적, 2020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근흥면의 수룡리 산성(水龍里山城) · 두야리 산성(斗也里山城),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태안읍 동문리의 백화산성과 남문리의 태안읍성(泰安邑城), 그리고 장산리의 한의산성(漢衣山城) · 서방현성(西方峴城) 등이 있다.

봉수로는 태안읍 동문리에 백화산봉수(白華山烽燧)가 있어 동쪽으로는 서산의 북산(北山), 남쪽으로는 도비산(都飛山)에 호응하였다. 안흥성 내의 태국사(泰國寺) 옆에는 망해루(望海樓)라는 누각이 있어 해상의 절경을 조망하고 해구(海寇)의 출몰까지도 감시했다고 한다.

불교 유산으로는 태안읍 동문리의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2004년 지정)과 태안 동문리 석탑,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태안 남문리 오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1990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상옥리의 흥주사 만세루 · 흥주사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남면의 몽산리 석가여래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해남사지(海南寺址) · 안파사지(安波寺址)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태안읍 동문리에 태안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와 남면 양잠리에 숭의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가 있다.

그 밖에 남문리의 태안 목애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 근흥면 안기리의 안양사, 원북면 반계리의 이종일선생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와 태안읍의 태안 상옥리 최씨댁이 있다.

그리고 중국 사신들이 안흥항으로 들어올 때 쉬어가기도 한 태안읍 동문리의 경이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이 있다.

황도리에는 1991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된 황도붕기풍어제, 소원면 소근리에는 1998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태안 설위설경이 전승되고 있다.

한편, 안면읍 승언리에는 안면도의 모감주나무 군락(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 태안 내파수도(천연기념물, 2014년 지정) · 안면읍의 태안 승언리 상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가 있다. 근흥면의 난도 일원에는 태안 난도 괭이갈매기 번식지(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원북면 신두리에는 신두리사구(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이 군에는 고려 말엽부터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을 알 수 있다. 『태안군신학기(泰安郡新學記)』에 따르면 1350년(충정왕 2) 왜구의 침입으로 학당(學堂)이 소실되었다고 하여, 그 이전에 이미 교육기관이 설치되어 있었음을 단적으로 입증해 준다. 그 뒤 1390년(공양왕 2)에 다시 학당을 설치했으나 본래의 모습대로 복구되지는 못했다.

이어 1407년(태종 7)에 문묘 · 양무(兩廡) · 강당 등을 짓고 학생을 교육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의 태안향교(泰安鄕校)로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질 때까지 많은 유생을 배출하였다.

20세기 초엽 기울어가는 나라의 명운을 바로잡기 위해 뜻있는 인사들의 구국운동이 열화같이 일어날 때 이 군에서도 새로운 근대 교육기관이 설치되었다. 1906년 안면읍의 유지들이 모여 구국운동에 앞장설 것을 결의하고, 그 실천방법으로 우선 학교를 세워 남녀 청소년들에게 신교육을 하기로 다짐했다. 이 결의에 따라 김병년(金炳秊 )을 중심으로 안면읍에 광영학교(廣英學校)를 세워 이것이 태안군 내 근대학교 설립의 효시가 되었다.

사학 광영학교와 태안에 화양의숙(華陽義塾) 등이 설립되었다. 광영학교는 10여 년간 많은 인재를 육성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안면국민학교로 개편되었다. 1907년에 설립된 화양의숙은 당시 서산군수였던 이기상(李基祥)이 자기 고향인 태안읍 남문리에 세우고 영어 · 일본어 · 산수 등의 신학문을 가르쳤다. 그러나 1920년에 폐교되어 태안군에 설립된 사학교육기관은 공립학교로 흡수 · 개편되거나 폐교되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최초의 공립학교는 1911년의 태안초등학교이며 광복 이전까지 13개교가 설립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초등학교가 36개교 증설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9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일반 공연장과 실내체육관이 있다.

1979년에 설립된 태안향토문화연구소는 각종 문화유산을 조사 · 발굴 · 연구함으로써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으며, 군민의날 행사에는 태안문화제를 열어 군민 화합을 다지기도 한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볏가리놀이, 꼬대각시놀이, 안면읍 황도리의 붕기풍어놀이 등이 있다. 볏가리놀이는 이 고장의 여러 마을에서 현행되고 있는 놀이이다. 붕기풍어놀이는 동제의 한 과정에서 이뤄지는 놀이 또는 의식이다.

꼬대각시놀이는 주로 정월에 많이 행해지는 여인들의 방안놀이이다. 놀이방법은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술래로 정해놓고 그 여인을 향해 나머지 사람들이 「꼬대각시노래」를 부른다.「꼬대각시노래」의 가사에는 축원의 의미가 깃들여 있기 때문에, 이 노래를 술래에게 집중적으로 들려줌으로써 술래는 신이 붙게 된다.

신이 붙은 술래는 춤을 추고 펄펄 뛰기도 한다. 그러면 여인들은 신이 붙은 술래에게 신수를 묻거나 점을 친다. 다만, 이 놀이에서 술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신이 붙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선정된다.

이 고장에서 비교적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큰 동제로는 안면읍 황도리의 당제가 있다. 신격으로는 원래 진대서낭(구렁이)을 모시나, 당 내부에는 성주 · 사해군왕장군 · 오방장군 · 삼불제석 · 용궁장군 등의 화상이 걸려 있고, 그 옆 산제당에는 산신할아버지와 산신할머니의 화상이 걸려 있다.

이 당제는 1월 2·3일 이틀 동안 지내는데, 지금도 황소 한 마리를 잡아 제물로 쓰고 있다. 특히 당제가 있는 날 각 배의 선주와 선원들이 자기 배의 기를 각기 앞세우고 「붕기타령」을 부르면서 당으로 향하는 당맞이가 장관이다. 이 붕기놀이는 1977년 10월 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고남면 고남리 옷점[衣店]마을에서는 섣달 그믐날 자정에 당산에서 당제를 지낸다. 그보다 이른 시각에는 당주 일행을 제외한 마을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조개나 김을 부르는 ‘홍합제’를 지낸다. 홍합제는 바닷물이 나간 썰물 때 장벌에서 지낸다.

밥 세 그릇, 삼색실과 술 등을 차려놓고 “ㅇㅇ포 조개요, 조개 오너라.”라고 제관이 다른 지방의 홍합을 부른다. 그러면 참석한 마을주민들은 “우∼우∼”하며 홍합이 몰려드는 소리를 낸다. 똑같은 방법으로 제관이 김을 부르면 마을 사람들은 제관의 소리를 받아 다시 “우∼우∼”하며 김이 몰려드는 소리를 낸다.

이때를 맞추어 풍물패들은 풍물을 친다. 이렇게 홍합제를 지내면 새해에 조개와 김이 풍성해진다고 한다. 이 밖에 근흥면 신진도리의 당제, 가의도리의 산당제, 소원면 파도리의 산제 등이 있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의 설화 가운데는 효자 · 효녀전설, 역사적 영웅전설 등도 있지만 지명에 얽힌 전설이 단연 많다. 소원면 파도리 · 가의도리의 지명유래담, 고남면 옷점의 지명유래담, 남면거아도의 지명유래담, 이원면 포지리의 지명유래담 등이 그것이다.

가의도 지명은 이 섬에 귀양 온 중국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옛날 중국의 가의(賈誼)라는 충신이 “세상이 어지러워 곧 난리가 날 것이니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가 거짓말을 발설한 죄로 이 곳 무인도에 귀양 오게 되었다. 그러나 몇 년 후 난리가 나서 그의 말이 들어맞자 그는 귀양살이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가 중국으로 돌아간 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 그가 머물렀던 섬을 가의도라 불렀다 한다.

남면 앞바다에 있는 거아도는 귀양 온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들은 상투를 틀지 않고 머리를 길게 땋아 내렸다. 그리하여 그 앞을 지나다니는 배에서 보면 항상 아이들만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그 섬의 이름을 아이들만 사는 섬, 즉 거아도(居兒島)라 불렀다고 한다.

거아도 사람들은 섬 크기에 비해 빈한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이 섬이 곡창지대인 남쪽에 등을 돌린 형국을 하고 있으며, 걸인이 바랑을 지고 북쪽으로 가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면읍 일대에는 안면도가 섬이 된 내력의 설화가 전한다. 예전에 안면도는 남면과 붙어 있는 육지였다고 한다. 지형상으로 이곳은 큰 인물이 날 지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중국의 이여송(李如松)이 와서 보고 큰 인물이 나지 않도록 지맥을 끊으려고 판목을 자르자 자른 곳에서 많은 피가 흘렀고 그때부터 이곳은 섬이 되었다고 한다.

원북면 방갈리 2구에는 학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학암포해수욕장의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학바위 밑에는 용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굴이 있다. 예전에는 용이 그 속에서 살았으며 굴 안에는 용이 베고 잔 용베갯돌이 있다. 그 굴은 대방이섬까지 뚫려 있으며, 가끔 용이 굴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임경업(林慶業)장군이 학바위 근처에 진을 치고 용과 싸운 뒤로는 용이 승천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 고장은 바닷가에 접해 있으면서도 뭍에서는 논농사를 지으며, 여러 마을에서 모시 베를 짜왔다. 그런 관계로 「모찌는노래」 · 「모심기노래」 · 「논매기노래」 · 「베틀노래」등 기능요가 다수 전한다.

“출렁 출렁 모 한때 쪘네/ 그 말끔 땅에 떨어지기 전에/ 또 한짐 쪘네……”로 이어지는 「모찌는 노래」나 “매구 감세 얼카뎅이/ 얼카덩어리 얼카뎅이/ 여기도 찍구 얼카뎅이/ 저기두 찍구 얼카뎅이/ 잘도 매네 얼카뎅이……”로 이어지는 「호미뎅이」(논매기노래)는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고 일의 능률을 올려주며, 또한 흥을 불어넣는 기능을 한다.

한편, 겨울철에 부녀자들이 즐겨 부르던 「꼬대각시요」가 있다. 꼬대각시는 ‘고자의 각시’를 뜻한다. 이 각시가 고자와 혼인해 평생을 고적하게 산 애달픈 사연을 노래한 것이 「꼬대각시요」이다.

“한살 먹어서 어머니 죽고/ 두살 먹어서 아버지 죽고/ 세살 먹어서 말을 배우고/ 네살 먹어서 걸음 배워/ 다섯살 먹어서 삼촌의 집에 가니/ 삼촌의 댁은 남의 살붙이라고/ 십리만큼 내어치고/ 아이고 설움 공밥이야/ 아이고 설움 답답해요/ 그럭저럭 이십살을 먹고나니/ 중신애비 들락날락/ 삼촌의 댁이 허는 말이/ 저놈의 지지배 때문에/ 우리 대문특(턱)이 다 닳는구나……”로 이어지는 「꼬대각시요」는 한 여인의 애처로운 삶을 서사적으로 표현했으며, 이 지방에 널리 전한다.

이처럼 비운의 삶을 담은 노래와는 달리 한량이나 총각들이 즐겨 부르던 연가도 전한다. “덤벙덤벙 세 모래 강변에 마전하는 저 큰아기/ 누구의 간장을 녹이려고 저다지 곱게두 태어났나/ 반달같은 고운얼굴 구름같은 검은머리/ 동백기름 슬쩍발러 황초댕기/ 사방둘러 끝만올려 슬쩍매고/ 젖 옷고름 찍어달아 겨드랑 밑에 슬쩍매고/ 한손에는 방망이들고 또한손에는 마전들고/ 또드락 똑닥 방맹이소리 보는 이의 간장을 다 녹인다……”

이 서정요는 그 가사가 매우 세련되고 묘사 또한 뛰어난 연정가이다. 젊은 처녀가 마전하고 있는 노동의 현장이 관찰자에 의해 환상처럼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이 밖에도 이 고장에는 「뱃노래」 · 「방아노래」 · 「물레노래」 · 「그네노래」 · 「숫자풀이노래」 · 「상엿소리」등이 전한다.

산업 · 교통

이 군의 임야는 237.99㎢, 밭은 64.4㎢, 논은 115.24㎢로 논농사가 많다. 농가비율은 70% 정도에 이르며, 충청남도 전체의 농가비율 60%에 비하면 그 비율이 상당히 높다. 특히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논 면적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군내의 해안지대에서는 간척지와는 별도로 넓은 지역에 발달한 해안사구를 개간해 마늘 · 생강 등의 특용작물과 보리 재배 등에 힘쓰고 있다. 특산물로는 질이 좋기로 이름난 안면도 김과 토종꿀이 있다.

이 군은 해안선의 길이가 도내에서 가장 길어서 수산업은 주민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잘 잡히는 생선으로는 조기 · 갈치 · 삼치 · 멸치 · 복어 · 꽃게 · 새우 등이 있다. 연안어업으로는 굴 · 조개 · 김 · 낙지 등이 많이 채취, 어획된다. 군내의 해안에는 곳곳에 오랜 역사를 가진 염전이 발달해 있는데, 안면읍에서 생산이 활발하다.

이 군에서는 최근에 많은 지역개발사업들이 활발히 추진되었는데, 서산A · B지구 간척사업이 그것이다. 이 간척사업은 이 군의 태안읍 및 남면, 서산시의 인지면 · 부석면 · 해미면 및 고북면, 홍성군의 갈산면 · 서부면 등 4개 시 · 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간척 면적은 106㎢이다.

한편 태안읍 삭선리에는 태안농공단지가 조성되어 현재 17개 업체가 참여하여 군의 농수산물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무역에도 활기를 조성하고 있다.

태안읍은 이 군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수산물의 집산지로서 구실을 하고 있다. 규모가 크고 경치가 빼어난 안면도의 해안사구에는 유리의 원료로 쓰이는 질 좋은 규사가 있다. 그러나 해안사구의 대부분이 사유지인 관계로 공원지구에 포함되지 않은데다가 규사의 채취 후 해안사구가 복원되지 않아 해안사구가 급속히 파괴되고, 해안사구 배후면의 농경지는 모래로 황폐화되고 있다.

상업 활동은 동문리의 신시장에서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인 5일장이 열린다. 신시장은 원래 태안읍 남문리의 읍사무소 일대에 있던 시장을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이곳은 5일장이 3·8일에 개설되어 주기적으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태안읍 내에는 상설시장과 정기시장 외에도 곳곳에 슈퍼마켓이 개설되어 있다.

태안읍 이외의 안면읍 · 남면 · 근흥면 · 소원면 · 원북면 지역에는 소수의 영세상점들로 구성된 소규모 상설시장들이 개설되어 있다. 안면읍과 원북면에는 5일장도 개설되어 상설시장의 영세성을 보완해준다. 안면읍과 원북면의 장날은 안면읍이 5·10일, 원북면이 1·6일이다.

이 군은 수도권이나 충청남도 내의 중심지인 대전 · 천안 등지와는 서산시보다 원격지 관계였으므로, 외부지역과 왕래할 때 주로 해로를 이용해 수도권 지역에 접근하였다. 그러다 1970년대 초반에 서산시를 지나 대전 · 천안 등지로 통하는 도로가 확대포장되면서 외부지역과의 연계가 대전 · 천안지역으로 옮겨가 1970년대 중반에는 수도권지역과의 연계가 점차 단절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삽교천 및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어 다시 수도권 지역과 왕래가 잦아졌고 상대적으로 대전 · 천안 지역과의 연계가 감소하고 있다. 2001년 서해안고속국도의 완공으로 수도권 지역과의 연계가 더욱 증대되었다.

도로는 군의 서단부에 위치한 소원면 모항리에서 태안읍을 거쳐 서산시 팔봉면으로 향하는 32번 국도가 동서 방향으로 개설되어 있다. 그리고 군의 북단부에 위치한 이원면에서 태안읍을 거쳐 남단부의 고남면 영목으로 향하는 603번 지방도가 남북 방향으로 개설되어 있다.

또한 근흥면 서단의 안흥항으로 향하는 62번 지방도와 서산시 부석면으로 향하는 649번 지방도가 각각 32번 국도와 603번 지방도와 연결되어 시내 및 시외도로의 교통은 편리하다. 특히 남면 원청리에서 603번 지방도와 연결되는 649번 지방도는 서산B지구 간척지의 부남호간척둑, 간월도 및 서산A지구 간척지의 천수만간척둑을 통해 화성군 서부면 궁리로 통하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본래 태안군에서 외부로 통하는 도로는 기존의 태안읍에서 서산시로 통하는 32번 국도뿐이었으나, 남면에서 홍성군으로 통하는 649번 지방도가 추가되어 해안과 내륙의 중심도시들에 대한 접근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또한 태안군은 천수만과 외해에 연해 있어서 해상교통도 발달하였다. 안흥항과 몽산포에서 가의도 · 거아도 등지로 항로가 개설되어 있고, 고남면의 영목을 중심으로 원산도 · 유도 · 육도 · 효자도 · 고대도 · 장고도 · 삽시도 · 대천항 등지와 연결되는 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관광

이 군은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해안 경관이 수려하고, 여러 해수욕장들과 많은 역사적 유물 · 유적들이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다. 관광코스로는 태안읍 코스, 남면 · 안면읍 코스, 소원면 코스, 근흥면 코스, 원북면 코스 등이 있다.

태안읍 코스는 동문리의 백화산(백화산성 · 봉수대 · 마애삼존불입상 · 홍주사 원통전 · 삼층석탑 · 태을암)―동문리의 경이정―동문리의 태안향교―인평리의 안흥량굴포운하개착지―남문리의 탑골오층석탑 등으로 연결된다.

남면 · 안면읍 코스는 남면 동산리의 몽산포해수욕장―안면읍 창기리연륙교 일대의 자연경관―승언리 일대의 솔밭―승언리 일대 방포해안의 모감주나무 군락 등으로 연결된다. 안면읍 일대에는 곳곳의 삼림에 기러기 · 황새 도래지가 있고, 해안의 암초도 볼 만하다. 또한 안면읍의 삼림에서는 소사나무 · 굴참나무 · 갈참나무 · 노린재나무 · 왕머루 · 새머루 · 인동덩굴 · 칡 등이 많이 자라고 있다.

소원면 코스는 소근리의 소근포진성―의항리의 운하개착지―모항 · 의항리의 만리포 · 천리포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근흥면 코스는 도황리의 연포해수욕장―정죽리의 안흥항 · 태국사 · 망해루터 등으로 연결된다. 원북면 코스에는 방갈리의 학암포해수욕장 등이 있다.

읍 · 면
  1. 안면읍(安眠邑)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91.44㎢, 인구 9,34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승언리이다. 본래 서산군 지역으로 곶을 이뤘으므로 안면곶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태안군에 편입되어 안상 · 안하 2개 면이 되었다가 강상면은 정기 · 창기 등 8개 리를 관할하고, 안하면은 누동 · 고장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산군 · 태안군 · 해미현의 3개 지역이 통합되어, 서산군이 될 때 다시 2개 면이 병합되어 안면면이 되었다. 1973년에 안면면의 간월도리가 부석면에 편입되었고, 198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 서산군에서 태안군이 분리되면서 그에 속했다.

이 읍에는 안면도 외에도 59개의 섬이 있으며, 53개는 무인도이고 6개가 유인도이다. 안면도는 섬 전체가 낮은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해안선은 리아스식해안으로 이뤄져 있다. 승언리와 창기리 일대의 해안에는 해안사빈과 해안사구가 잘 발달해 있다. 해안사빈은 대부분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있으며, 해안사구는 규사의 채취원이 되고 있다. 안면도는 소나무로 유명하지만, 수령이 오랜 소나무는 일부 지역에만 남아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계속 진행된 간척사업으로 경지면적이 크게 넓어져 태안군내에서는 가장 넓은 논과 밭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쌀 · 보리 등의 산출량도 군내 제1위이다. 승언리 일대의 여러 개의 저수지는 관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1968년에 안면교가 놓이기 이전까지는 고립된 섬으로 생활권이 북쪽은 태안읍에 속하고, 남쪽은 홍성군 광천읍에 속했다. 그러나 이 다리가 건설된 뒤로는 태안읍과 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황도는 남해 먼바다로 출어하는 근해안강망어업의 작은 기지이다. 1989년에 태안읍과 안면읍 간 2차선도로 포장공사가 이뤄져 교통은 더욱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신야리에 조개무지, 승언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다. 승언리(承彦里) · 신야리(新野里) · 정당리(正堂里) · 죽도리(竹島里) · 중장리(中場里) · 창기리(倉基里) · 황도리(黃島里) 등 7개 리가 있다.

  1. 태안읍(泰安邑)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87.64㎢, 인구 2만 871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남문리이다. 본래 태안읍 내가 되므로 군내면이라 하여 동문 · 옥하 · 천원 등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일면 · 동이면, 근서면과 남면의 일부를 병합해 서산군에 통합되면서 태안면이 되었다.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서산군에서 태안군이 분리되면서 그에 속했다.

구릉성 산지가 대부분이다. 벼농사가 활발하며, 생강 · 양파 · 마늘 · 고추 등의 농산물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잎담배 생산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배후중심지로서 여름철에는 피서관광지의 구실을 다하고 있다. 1982년에 태안읍과 안면읍 사이의 지방도가 포장된 뒤로는 주변 농촌지역의 농산물 집산지로서의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문화유적은 장산리에 고인돌과 한의산성, 동문리에 백화산성과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 태안향교 · 경이정, 상옥리에 흥주사 삼층석탑, 남문리에 목애당 · 태안읍성 · 오층석탑이 있다.

남문리(南門里) · 남산리(南山里) · 도내리(島內里) · 동문리(東門里) · 반곡리(盤谷里) · 삭선리(朔善里) · 산후리(山後里) · 상옥리(上玉里) · 송암리(松巖里) · 어은리(漁隱里) · 인평리(仁坪里) · 장산리(長山里) · 평천리(平川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고남면(古南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27.81㎢, 인구 2,62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남리이다. 본래 서산군 지역으로 곶을 이루었으므로 안면곶이라 하고 1895년 태안군에 편입되어 안상면과 안하면 2개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산군 안면면지역이 되었다가 1980년 안면읍 지역이 고남출장소가 되었다. 1986년 면으로 분리되어 고남면이 되었다. 1989년에 서산군에서 태안군이 분리되면서 그에 속했다.

안면도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높이 60m 미만의 야산이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산간 구릉지를 목야지로 조성해 축산업에 힘쓰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어종이 비교적 많아 도시인들의 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민들의 주업은 농업 및 어업이며, 겸업을 하는 농가도 상당수 있어 전형적인 농어촌지역이다. 특산물로는 김 · 낙지 · 바지락 등이 주종을 이룬다. 교통은 지방도가 안면읍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고남리에 고인돌이 있다. 고남리(古南里) · 누동리(樓洞里) · 장곡리(長谷里) 등 3개 리가 있다.

  1. 근흥면(近興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2.99㎢, 인구 5,66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신리이다. 본래 태안군 서쪽 가까이 있으므로 근서면이라 하여 수창 · 용오 · 우항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흥면을 병합해 9개 리로 개편되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 서산군에 속하다가, 1989년에 서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면내에는 지령산(智靈山, 218m)을 비롯한 100m 내외의 산지들이 산재해 파상(波狀)의 구릉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해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으며, 최근에는 간척사업으로 많은 농경지가 확보되고 있다. 간석지의 일부는 천일염전으로 이용되고 있다. 긴 해안과 23개의 섬에서는 우럭 등의 해산물이 많이 난다.

도로는 태안읍∼안흥 간 지방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통하고 있다. 해상교통은 안흥항에서 목포 · 군산 · 인천 등지로 여객선이 연결되어 편리하다. 본래 안흥항은 난행량 또는 안흥량이라고 했으며, 한때는 인천 · 군산과 더불어 서해안 3대 어항의 하나였다. 또한 삼남조운(三南漕運)의 중요 경유지로서, 이와 관련된 이른바 ‘안흥량의 대책’은 고려 중엽부터 조선 말기까지 국가의 주요 관심사의 하나였다.

최근에는 안흥항의 방파제 구실을 해오던 신진도에 신항이 구축되고 있으며, 안흥항과 신진도를 연결하는 신진대교가 건설되어 지역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신진도에는 무역항과 어업전진기지를 겸한 대규모 신항이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안흥항에는 많은 횟집들을 중심으로 한 관광어촌이 형성되어 있다. 도황리의 연포해수욕장은 개발이 잘 되어 찾는 사람이 많다.

문화유적은 수룡리와 두야리에 성지, 신진도리에 조개무지, 정죽리에 안흥성과 태국사가 있다. 또한 난도 일원은 괭이갈매기번식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용신리(龍新里) · 두야리(斗也里) · 수룡리(水龍里) · 마금리(磨金里) · 안기리(安基里) · 도황리(都璜里) · 정죽리(程竹里) · 신진도리(新津島里) · 가의도리(賈誼島里) 등 9개 리가 있다.

  1. 남면(南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0.65㎢, 인구 4,6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달산리이다. 본래 태안군 지역으로 태안읍 내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여 장내 · 몽대 · 신월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군내면 일부를 병합해 9개 리로 개편되어 지금의 이름이 되어 서산군에 속하다가 1989년에 서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면내에는 높은 산이 거의 없고, 70m 내외의 평지가 대부분이다. 특히 진산리 · 몽산리 · 신장리 · 원청리 · 달산리 등지는 군내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이외에도 마늘 · 생강 등이 생산된다. 해안에서는 천일제염도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태안읍과 안면읍으로 통하는 도로가 중앙부를 남북으로 지나 편리하다. 특히 안면읍과는 연륙교인 안면교로 연결되고 있다.

해안지역은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몽산리의 몽산포해수욕장은 13㎢에 이르는 해안사빈이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고, 배후의 해안사구에 송림이 우거져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문화유적은 양장리에 산성지, 몽산리에 석가여래좌상 등이 있다.

달산리(達山里) · 몽산리(夢山里) · 신장리(新場里) · 진산리(榛山里) · 양잠리(兩潛里) · 원청리(元靑里) · 당암리(堂巖里) · 신온리(申溫里) · 거아도리(居兒島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소원면(所遠面)

군의 서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41㎢, 인구 5,6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덕리이다. 본래 태안군 지역으로 조선시대 때 소근포진을 두어 좌도수군첨절제사가 있어서 당진포 · 파지도 · 안흥량을 관할했는데 그 뒤 소근면의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일면(遠一面) · 원이면 · 근서면 · 소근면(所斤面) 일부를 병합해 소근과 원일의 이름을 따서 소원면이 되어 서산군에 속하다가 1989년 서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면내의 북동부에 철마산(鐵馬山, 208m), 중앙부에 명월산(明月山) 등이 있어 대부분 산간 구릉지를 이룬다. 서쪽의 해안지대에는 간척지 평야와 염전이 분포하고 있다. 교통은 국도가 태안읍과, 군도가 북쪽으로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모항리 일대의 만리포해수욕장과 천리포해수욕장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일부로서 각종 피서 · 관광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신덕리(新德里) · 시목리(枾木里) · 법산리(法山里) · 영전리(令田里) · 소근리(所斤里) · 의항리(蟻項里) · 모항리(茅項里) · 파도리(波濤里) · 송현리(松峴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원북면(遠北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6.54㎢, 인구 4,5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반계리이다. 본래 태안군 지역으로 태안읍 내 북쪽이 되므로 북이면(北二面)이라 하여 관갈 · 방축 · 황곡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이면과 북일면(北一面) 일부를 병합해 원이와 북이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973년 이북면 청산리와 마산리가 편입되었다. 1989년서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파랑상(波浪狀)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산골짜기를 흐르는 소하천들의 연변에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신두리 일대는 3개의 저수지로부터 관개용수를 공급받아 벼농사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마늘과 생강의 재배도 활발하다. 북동부의 염전에서는 소금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태안∼서산∼천안을 경유해 서울을 내왕하는 직행버스와 태안을 경유해 서산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있어 편리한 편이다. 해안지역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일부로 사빈해안과 암석해안을 이뤄 경관이 매우 뛰어나며, 학암포해수욕장은 그 핵심을 이룬다. 학암포는 인천으로 연결되는 정기여객선의 기착지이기도 하다.

문화유적은 반계리에 이종일선생생가지가 있다. 반계리(磻溪里) · 이곡리(梨谷里) · 황촌리(黃村里) · 방갈리(防葛里) · 신두리(新斗里) · 동해리(東海里) · 대기리(大基里) · 장대리(將坮里) · 양산리(陽山里) · 청산리(靑山里) · 마산리(馬山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이원면(梨園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65㎢, 인구 2,36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포지리이다. 본래 태안군 지역으로 태안읍 내 북쪽이 되므로 북일면이라 하여 외청산 · 내청산 · 이화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원면(梨園面)을 병합해 7개 리로 개편하면서 이북면이 되어 서산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청산리와 마산리가 원북면으로 편입되고 1987년이원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 서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면 전역이 대체로 100m 미만의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이외에 생강 · 마늘 · 잎담배가 재배되고 누에치기도 행해진다. 해안지대와 15개의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소규모의 연안어업과 양식업도 겸하고 있어 농어 · 송어 · 우럭 등의 어류와 굴 · 대합 · 바지락 등의 조개류가 산출된다. 김 양식도 이뤄지고 있다.

내리 · 관리 · 당산리 및 포지리의 해안에 조성된 면적 67.14㏊의 천일염전에서 연간 3,600여 톤의 천일염이 생산된다. 교통은 태안읍과 국도가 연결되어 있을 뿐, 해안지역인데도 선박이 적어 불편한 편이다. 포지리(蒲地里) · 내리(內里) · 관리(官里) · 당산리(棠山里) · 사창리(社倉里) 등 5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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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충남: 환경과 역사』(충청남도 교육위원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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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서산』(서산군,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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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지』(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 1979)
「차령산맥 북서부지방 민가의 굴뚝」(이문종, 『공주사범대학논문집』23, 1985)
태안군(www.taean.go.kr)
태안교육청(www.cnta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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