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의 통계학의 연구발달사를 국제적인 것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현대통계학, 즉 학문으로서의 통계학의 역사가 일천한 만큼 현대통계학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연구업적을 고전적인 그것과 분명히 구분짓기 위하여서는 현대통계학이 학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인식의 틀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기술한 다음 우리 나라에서의 발달사를 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본다.
자료 내지는 자료의 취급이라는 의미에서 통계의 시작은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의 수량적 기록이 시작되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때로는 방대한 자료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자료를 해독 가능한 형태로 효율적으로 처리하거나 집약이 요구되고, 이러한 자료처리 작업은 천체학·지구물리학·유전학 등 여러 분야에서 적절한 처리방법 등이 개발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방법은 통계자료의 효과적 기술이라는 수준에 머물렀으며, 이들 기법(技法)들을 개발한 학자들도 그들이 연구한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입장을 떠난 일이 없고 자료처리의 체계적인 인식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이는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통계학의 도입에 기여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경제학·사회학 등에 통계기법을 이용하던 학자들로서 이들을 우리 나라 최초의 통계학자들로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고전적 통계학이 자료의 효율적 집약에 그쳤다면 현대통계학은 나아가서 자료의 배경이 되는 생성메커니즘의 규명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배경이 되는 통계적 모형을 설정하고 자료를 근거로 하여 이의 타당성을 검토하려 한다.
통계적 모형이 자연과학 내지 기존 사회과학의 모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통계적 모형에서의 자료에 나타난 변이를 구조적 변이와 임의적 변이로 나누어 임의적 변이의 설명이나 구조적 변이로부터의 분리에 주안점을 두는 데 반하여 다른 과학에서의 모형은 자료로부터 직접 현상구조에 대한 결정적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이러한 임의적 메커니즘의 규명은 결정적 메커니즘의 그것과 달리 그 방법론 또한 특이할 수밖에 없으며, 독특한 방법론의 개발이 비로소 현대통계학을 학문으로 인정받게 하는 요소이다.
이 때 자료를 근거로 하여 설정된 통계적 모형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을 통계적 추론이라 하는데, 이는 크게 추정(推定)과 가설검정(假說檢定)의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통계적 추론으로 불릴 수 있는 현대통계학의 초기의 발전은 1900년대 초반부터 주로 영국학자들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다.
특히, 이들 중 추론의 기초 도구로 쓰이는 분포이론을 제공한 피어슨(Pearson,K.), 실험계획법과 추정론을 정립한 피셔(Fisher,R.A.), 그리고 가설검정이론의 피어슨(Pearson,E.)과 네이만(Neyman,J.) 등이 중추적 구실을 담당하였다.
이 밖에도 분포이론의 배경학문으로서의 확률론을 정립한 콜모고로프(Kolmogorov,A.), 그리고 새로운 게임이론을 도입하여 의사결정적 측면에서 통계적 추론을 고찰한 왈드(Wald,A.) 등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현대통계학의 초기발전은 사회과학의 실증주의 경향에 힘입어 새로운 방법론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광범위하게 응용됨에 따라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사회과학 방법론에 눈을 뜬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한 유태인 박해와 더불어 대륙의 통계학자들의 유치에 힘써 1940년대 이후부터는 현대통계학 발전의 중심이 영국으로부터 미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즉, 응용통계학에서의 몇몇 예를 제외하고는 이후 미국의 이론통계학은 네이만·왈드와 같은 대륙에서 넘어왔거나 교육받은 학자들에 의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들이 처음 학문의 불모지에서 교육과 연구에서 겪은 갈등이나 진통은 우리 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 나라에 현대적 통계학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50년대 일이다. 194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새로운 통계학이라 하여 추측통계학, 또는 추계학(推計學)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서적들이 나왔고, 이러한 일본서적들은 주로 사회과학 분야 학자들에 의하여 소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김준보(金俊輔)의 ≪현대통계학≫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통계적 방법들이 지닌 고유의 변증법적 인식론을 고전적인 기술이나 현대적인 추론 전반에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종래와 같은 통계적 기법의 단편적 이해나 단순한 수리형식의 처리를 벗어난 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통계학의 첫 소개서로서 신·구 통계학의 가교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실제 우리 나라에 현대통계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60대 서울의 몇몇 사립대학에 통계학과가 설치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초기 통계학과를 세운 학자들은 대부분 계량적인 분석 등의 응용통계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당시 통계교육은 계량경제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응용통계 분야였다.
이후 미국 등을 중심으로 외국에서 통계학의 이론적인 내용을 공부한 학자들이 귀국함으로써 추론, 의사결정론 등 이론통계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1971년 들어 고려대학교의 김준보(金俊輔)와 백운붕(白雲鵬), 성균관대학교의 강오전, 연세대학교의 윤기중(尹起重), 서울대학교의 박홍래(朴弘來) 등이 중심이 되어 통계관련 전문가들의 모임인 한국통계학회를 창립하였다.
1998년 현재 한국통계학회는 정회원이 800명 이상이 되며 매년 봄, 가을 두 번에 결쳐 학술발표회를 갖는다. 또한 이 학회에서는 세 가지 학술지를 발간하는 데 하나는 ≪The Journal of Korean Statistical Society≫로서 국제화를 지향하기 위해 모든 논문은 영어를 사용하게 되어있다.
다른 두 학술지는 ≪응용통계연구≫와 ≪한국통계학회논문집≫이다. 통계학의 응용은 모든 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에 응용 분야를 몇 가지로 한정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겠으나, 현재 한국통계학회 산하에 통계계산·통계교육상담·조사통계·생물통계·공업통계·공식통계 등의 5개 분야의 연구회가 있다.
1998년 현재 국내의 통계학 관련 학과는 80개에 이르고 있으며 이들 학과들은 대학의 특성에 따라 자연계열에 소속되어있어 이론 통계학을 중심으로 교육하는 곳도 있고, 컴퓨터 분야와 어우러져 전산통계 분야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곳도 있다.
또한 경제 또는 경영학 분야와 같이 어우러져 계량 분야를 중심으로 응용통계를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곳도 있고, 의과대학 안에서 생물통계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곳도 있다. 또, 몇 개 대학에서는 보험 관련을 중심으로 응용 분야를 개척하려는 시도도 있다.
국가의 산업이 발달하고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 모든 의사결정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과학적인 추론을 걸쳐 이루어지게 된다. 21세기에 우리 나라가 선진국이 되면 통계학이 각 분야에서 활발히 응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