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규장각도서에 있다. 이 밖에 『평창군신지지(平昌郡新地誌)』가 규장각도서에 있다.
내용구성은 방리(坊里)·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형승(形勝)·성지(城池)·관직(官職)·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능침(陵寢)·단묘(壇廟)·공해(公廨)·제언(堤堰)·창고(倉庫)·물산(物産)·교량(橋梁)·봉름(俸廩)·균세(均稅)·대동(大同)·전세(田稅)·조적(糶糴)·진공(進貢)·수전(水田)·한전(旱田)·인물(人物)·진보(鎭堡)·고적(古蹟)·사찰(寺刹)·누정(樓亭)·봉수(烽燧)·관애(關阨)·목장(牧場)·역원(驛院)·군병(軍兵) 등으로 되어 있다.
읍지의 체재는 『여지도서』내의 평창군지와 같으나 교량조 이하 항목의 배열 순서가 상이하다. 매우 소략한 읍지이지만 조선시대에 편찬되어 현전하는 유일한 평창군의 개별읍지로서 의의가 있다.
단묘조에는 매년 정월 초하루와 단옷날에 군사(郡司)에서 호장(戶長)이 주관이 되어 이 지방 출신으로 목조(穆祖)의 비가 된 효공왕후(孝恭王后)의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
평창은 강원도의 궁벽한 소읍이지만 효비의 출신지라는 이유로 조선 초기에 군으로 승격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