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Portugal)

포르투갈의 국기
포르투갈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유럽 서남부 이베리아반도 서단에 있는 공화국.
이칭
이칭
포르투갈공화국, The Portuguese Republic
정의
유럽 서남부 이베리아반도 서단에 있는 공화국.
개관

정식 명칭은 포르투갈공화국(The Portuguese Republic)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1,793㎞이다.

면적은 9만 2090㎢(본토 8만 9,000㎢, 부속도서 아조레스섬 2,335㎢, 마데이라섬 796㎢), 인구는 1082만 5309명(2015년 현재), 수도는 리스본(Lisbon)이다.

종족구성은 이베리아족, 켈트족, 로마족, 게르만족, 무어족 등이다. 언어는 포르투갈어가 사용되며, 종교는 인구의 94% 이상이 가톨릭교를 믿는다.

산업은 유럽 국가 중 비교적 낙후된 상태로서 농업이 주이고, 공업화가 진행 중인 상태이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밀·포도·올리브 등이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295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2080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를 가미한 의원내각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230석)이다. 주요 정당은 사회당(PS), 사회민주당(PSD), 단일민주연합, 민중당, 좌파블럭 등이다.

약사

기원전 750년경 켈트족이 반도에 정착하여 그리스인·페니키아인 및 카르타고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2세기경 케사르(Caesar, J.) 및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원정으로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으며, 5세기 초에 서고트족이 이주하여 711년 무어족의 침공을 받을 때까지 제국을 건설하고 반도를 통치해왔다.

1137년 엥리케(Henrique,A.) 왕이 단일국가로 분립시켜 무어족을 축출하고 1139년 독립을 이루었으며, 1385년 스페인의 카스틸랴왕국에 승리함으로써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웠다.

15, 16세기에는 브라질·인도 및 아프리카 연안 등 해외탐험을 통하여 제해국(制海國)으로 등장하여 스페인과 경합하였으나, 1580년 왕가의 분규로 스페인에 합병(1580∼1640)되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후원으로 독립을 회복하였고, 1910년 혁명으로 마누엘 2세(Manuel Ⅱ)가 폐위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32년 이래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해온 살라자르(Salazar, A. O.)가 죽고 카에타노(Caetano, M.)의 독재가 계속되었으나, 1974년 4월 25일 청년 장교단의 무혈쿠데타가 성공하여 독재정치는 끝났다.

1976년 4월 25일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 결과에 따라 소아레스 사회당 소수 단독내각이 제1차 합헌정부로 출범하였으며, 그 이후 1985년 11월 제10차 합헌 정부까지 매년 정권이 교체되는 등 민주정치의 외양은 유지되었으나 불안정한 국면이 계속되었다.

1986년 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아레스 총리가 1926년 이래 최초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87년 7월 및 1991년 10월에 제11차 및 제12차 합헌정부가 사회민주당 단독 정부로 각각 수립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좌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포르투갈은 특히 유럽 국가와의 관계심화 및 앙골라·모잠비크 등 전 식민지국가와의 관계개선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의 역할 증대, 미국 등 서방제국과의 관계강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1년 4월 15일 정식수교한 후 1975년 6월 11일 주 포르투갈 대사관을 개설하였으며, 2015년 현재도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입국한 최초의 포르투갈인은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항해 도중 폭풍으로 난파된 무역선장으로, 1577년 조선에 입국한 바 있으나 그 뒤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학계의 통설로는 1593년 입국한 신부 세스페데스(Sespedes)가 최초의 서양인으로 되어 있다.

포르투갈은 종래 아시아지역에 대하여는 마카오와 관련하여 중국, 경제대국인 일본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고는 극동정세에 무관심한 입장이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널리 알려져 많은 관심과 협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1977년 12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9년 9월 사증면제 협정, 1984년 6월 경제산업 및 기술협력 협정, 1985년 1월 경제기술 협정, 1991년 7월 문화 협정, 1996년 8월 투자보장협정, 1997년 12월 이중과세방지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는 1979년 9월 민속예술단을, 1980년 9월에는 국악연주단을 파견하여 공연하였으며, 1983년 1∼2월에는 리스본에서 미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포르투갈 수출액은 2015년 현재 5억 2500만 달러로 주종목은 합성수지, 선박, 승용차, 무선전화기 등이고, 수입액은 2억 300만 달러로 주종목은 타이어, 편직제의류, 기타신발, 직물제의류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99명의 포르투갈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삼성전자, 한라공조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195명의 한국교민이 있다.

한편, 북한은 1975년 4월 15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78년 6월 17일 주 포르투갈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였지만, 1995년 3월 폐쇄하였다. 북한의 대 포르투갈 수출액은 2007년 현재 15만 달러로 주종목은 전기기기·광학제품 등이고, 수입액은 없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중세유럽의 형성』(임명방, 형설출판사, 1983)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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