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곡문집 ()

하곡문집 / 학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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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정제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56년에 편집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정제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56년에 편집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원래의 규모는 더욱 방대하였으나, 중간에 편집 과정에서 일부 누락·산실된 듯하다. 저자의 학문적 성향 때문에 출간되지 못하고 집안에 미정고(未定稿) 필사본으로 비장되어 오다가, 문인 및 후손에 의해 여러 차례 편찬이 시도되었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유계지양명학(朝鮮儒界之陽明學)」이라는 논문에서는 40여 책, 정인보(鄭寅普)의 「하곡전서 해제」에서는 20여 책, 조선사편찬회의 「지방사료차입목록(地方史料借入目錄)」에는 32책 등으로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종류의 필사본이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편집 과정은 전후 5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처음 정제두가 죽은 지 5년 뒤, 정제두의 아들 정후일(鄭厚一)과 문인 심육(沈錥)·윤순(尹淳)·이진병(李震炳) 등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그 뒤 증손 정술인(鄭述仁)이 신대우(申大羽)에게 위촉해 다시 추진되었으나 신대우의 죽음으로 역시 중단되었다. 다시 40∼50년 뒤인 1856년(철종 7) 현손 정문승(鄭文昇)에 의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필사본은 22책본·11책본·10책본·8책본 등 여러 이본이 있다. 이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22책본이 바로 이때의 것을 초(抄)한 정서본으로 보인다. 현전 11책본은 7대손 정계섭(鄭啓燮)이 1822년(순조 22) 신대우의 아들 신작(申綽)이 편집한 것을 저본으로 1930∼1935년 사이에 편집한 것이다. 이들 이본들은 체재가 서로 다르고 내용도 서로 중첩되거나 일관성이 없다.

이 가운데 22책본이 가장 내용이 풍부하다. 일제 때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광복 후 문화재 반환 때 되찾아 온 것으로, 정문승의 발문이 실려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는 11책본에는 신작과 정계섭의 발문이 있고, 10책본과 8책본에는 발문이 없다. 22책본에 빠져 있는 연주(筵奏)와 헌의(獻議) 및 집록(集錄)이 11책본과 10책본에 들어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1973년 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 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국역하였다.

서지적 사항

22권 22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내용

현전 필사본 중에서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22책본은 정집(正集)·부집(附集)·내집(內集)·외집(外集)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집은 저자의 시문집이고, 부집은 부록이며, 내집은 사서삼경 등 주로 경학에 관한 저술을 모았고, 외집은 역학이나 천문·지리와 같은 경세적 성격의 저술을 모았다.

정집에는 서(書)·소(疏)·제문·애사·묘표·묘갈·묘지명·행장·유사(遺事)·시·서(序)·기(記)·설(說)·발(跋)·잡저·학변(學辯)·존언(存言), 부집에는 연보·행장·묘표·유사·뇌문(誄文)·제문·문인어록(門人語錄)·주(奏)·계(啓)·서첩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집은 부록으로, 하곡 연보는 신작이, 하곡 행장은 심육이, 묘표는 신대우가 각각 찬하였다.

내집에는 중용해(中庸解)·대학해(大學解)·논어해(論語解)·맹자해(孟子解)·시차록(詩箚錄)·정성서해(定性書解)·통서해(通書解)·시송(詩誦)·심체송(心體誦)·경학집록(經學集錄)·심경집의(心經集義)·경의(經儀)·당우기년(唐虞紀年)·주무성강연표(周武成康年表)·부자기년(夫子紀年)·사맹기세(思孟紀世)가 수록되어 있다. 외집에는 하락역상(河洛易象)·선원경학통고(璇元經學通考)·기삼백설(朞三百說)·천지방위이도설(天地方位里度說)·칠요우행설(七曜右行說)·조석설(潮汐說)·차록(箚錄)·서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정집에 수록된 방대한 양의 서(書)는 사우(師友)간에 학술 문제를 논변한 내용이다. 양명학적 도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최석정(崔錫鼎)·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민이승(閔爾承) 등과의 왕복 편지에 그의 양명학의 이론 체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밖에 예설(禮說) 및 경세에 관한 내용도 다수 있다.

「학변(學辯)」은 독립적인 저술로서, 정주학(程朱學)의 이원론적 학문 방법과 지리하고 번잡한 학문 태도를 비판했으며, 양명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일원론적인 심성론을 요약하고 있다. 「존언(存言)」 3편은 왕수인(王守仁)의 『전습록(傳習錄)』 3편에 필적하는 그의 주저(主著)이다. 「학변」에서 제시한 방향을 자세히 체계화한 것으로, 「학변」과 함께 조선시대 유일의 양명학 이론서라 할 수 있다.

내집에는 주로 사서삼경에 대한 독립적 저술들이 수록되어 있다. 「중용해」와 「대학해」는 각각 9편 1도(圖)로 이루어져 있다. 「논어해」에는 77조, 「맹자해」에는 20편의 해설을 특히 심성론과 관계된 내용을 중심으로 중점 수록하였다. 「심경집의」에서는 『심경』 전체를 도심(道心)의 경(經)과 위인(爲人)의 학(學)으로 파악하고, 신독설(愼獨說)에 바탕한 유일(唯一)·정일(精一)·간약(簡約)의 학으로 집약하였다.

「정성서해」는 『정성서(定性書)』를 10조로 나눈 후, 자신의 의견이나 해석을 주기(註記)한 것이다. 「통서해」에서는 『통서』의 조목을 성상(誠上)·성하(誠下)·성기덕(誠幾德)·성(聖) 등 4조로 나누어 풀이하고 있다. 「시송」에서는 사서삼경과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 등의 설을 끌어와 『시경』의 여러 편을 부연하였다. 「심체송」은 심체(心體)에 관한 6절에 걸친 해설이다.

「시차록」에서는 『시경』 13편의 쟁점에 관해 논했고, 「서차록」은 『서경』의 여러 논점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춘추차록」에서도 9개 항에 걸쳐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였다. 「경학집록」은 성현과 유학자들의 경전 요지와 경훈(經訓)의 요점을 상·중·하로 나누어 집록한 것이다. 「경의」는 젊어서부터 저자가 경구(警句)로 삼았던 성현들의 격언을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다.

「당우기년」은 『서경』「요전(堯典)」·「순전(舜典)」·「대우모(大禹謨)」를 근거로 요(堯)·순(舜)·우(禹)의 정치적 공적을 사적으로 전개하고, 그 생졸 연수를 추산한 글이다. 「우서기년」은 요·순·우의 섭정과 선위(禪位) 및 생졸 관계를 역사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부자기년」은 춘추삼전(春秋三傳)과 『사기(史記)』 등을 참조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73년에 걸친 공자(孔子)의 활동상과 시대 배경을 서술한 것이다. 모두 그의 경서에 대한 폭넓고 세심한 관심과 몰두가 잘 나타나 있다.

외집의 「하락역상」은 복희팔괘차서도(伏羲八卦次序圖)를 비롯해 하도(河圖)·낙서(洛書)의 상수론(象數論)을 도시하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선원경학통고」는 천문과 역상에 관한 모순점을 지적하여 설명한 것이며, 22책본에만 수록되어 있는 「차록」은 그의 경세론을 총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한국 양명학 연구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조선유교연원(朝鮮儒敎淵源)』(장지연, 아세아문화사, 1973)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정인보, 삼성문화재단, 1972)
『한국(韓國)의 고전백선(古典百選)』(신동아편집실, 동아일보사, 1969)
『정제두(鄭齊斗)-양명학(陽明學)의 태두(泰斗)-』(유승국, 신구문화사, 1966)
「하곡학(霞谷學)의 문헌적연구(文獻的硏究)」(윤남한, 『조선시대의 양명학연구』, 집문당, 1982)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윤남한, 『이을호박사정년기념실학논총』, 1975)
「하곡집 해제」(이상은, 『국역 하곡집』, 민족문화추진회, 1973)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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