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오위도총부도총관, 좌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55년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에 제수되었다. 그리고 세조가 즉위하자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통훈대부(通訓大夫)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절충장군행호분시위사대호군지사간원사(折衝將軍行虎賁侍衛司大護軍知司諫院事)로 옮겨진 뒤 그 해 6월 동부승지로, 7월에 우부승지로, 10월에 좌부승지로 승진하였다.
1457년 우승지로 재직중 세자의 질병을 열심히 간호해 왕의 칭찬을 받았다. 1458년 9월 가선대부(嘉善大夫)로서 호조참판이 되고, 서원군(西原君)에 봉해졌다. 1461년 하삼도(下三道)의 부호(富戶)를 추쇄(推刷: 부역 또는 병역 기피자를 찾아냄.)해 평안도·황해도·강원도 등에 이주시켰다.
또한 안집도순찰사(安集都巡察使)가 되어 제방을 쌓고 진전(陳田)을 개간하는 등 북방 개척에 큰 공적을 세웠다. 1463년 자헌대부(資憲大夫)로서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 때 세조는 군액 부족을 우려해 3도의 군적(軍籍)을 정비하도록 하였다.
호구(戶口)의 증감을 정확하게 조사해 왕의 뜻에 부합하였다. 1465년 정헌대부(正憲大夫)로서 겸사복장(兼司僕將)이 되었다가 오위도총부도총관으로 옮겼다. 1467년 숭정대부(崇政大夫)로서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그 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평안도의 정병(精兵)을 이끌고 가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또한 숭록대부 우찬성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좌찬성으로 옮기고 이조판서를 겸하였다.
1470년 보국숭록대부에 승품되고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1471년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이어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문양(文襄)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식우집(拭疣集)』
- 『삼탄집(三灘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