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족제도사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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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문헌
최재석이 한국의 가족제도에 관해 저술하여 1983년에 간행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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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최재석이 한국의 가족제도에 관해 저술하여 1983년에 간행한 학술서.
내용

1983년 일지사(一志社)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은 1960년대 후반부터 저자가 발표하기 시작한 23편의 논문을 4편 9장으로 정리한 학술서이다.

제1편 ‘고대의 가족과 친족’에서는 신라의 가족과 혼인, 신라의 친족에 대한 연구결과가 수록되어 있다. 신라시대는 왕위계승에 있어서 자(子)와 서(婿), 내손(內孫)과 외손(外孫)간에 차이가 없었고, 여서(女婿)와 외손도 처가에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지적되었다.

‘신라의 친족’에서는 고대사회의 모계·부계 문제, 신라왕실의 왕위계승, 신라왕실의 친족구조가 다루어졌다. 한국의 고대가족은 부계적 원리가 우월하면서도 비단계(非單系)의 원리도 작용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2편 ‘고려시대의 가족과 친족’에서는 가족과 혼인, 친족조직이 서술되어 있다. 혼인제도로는 고려 후기까지 서유부가(婿留婦家)의 전통이 강하였고, 12세기까지 동성(同姓)의 5, 6촌간의 혼인이 행하여졌다. 다처(多妻)간의 지위가 동등한 일부다처제였고, 축첩도 가능하였으며, 재혼도 자유로웠다고 설명되어 있다.

제3편 ‘조선시대의 가족제도’는 17세기 초의 동성혼, 신분계급과 동성혼, 상속제도로 분류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동성혼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동성이본(同姓異本)간의 혼인은 있었다고 지적되어 있다. ‘신분계급과 가족형태’에서는 17세기 초의 가족형태, 조선 후기의 반촌가족, 조선 후기의 상민가족, 조선 후기의 도시가족을 고찰하고 있다. 당시에도 직계가족보다 부부가족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신분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상속제도’에 있어서는 1600년대 초까지 적자녀(嫡子女)간에 재산균분상속제였으나, 1600년대 중엽부터 1700년대 중엽까지 균분상속과 장남우대·남녀차별이 동시에 이루어졌고, 이후 새로운 상속제도가 정착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1700년대 초부터 장자봉사(長子奉祀)가 정착되었다. 그 이전에는 장자봉사와 자녀윤회봉사(子女輪回奉祀)의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제4편 ‘조선시대의 친족조직’에서는 오복친과 친족 및 문중조직에 대한 설명이 있다. 조선 전기와 후기를 비교하면 오복친의 범위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친족용어에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양자를 들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으며, 문중의 범위가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어 있다.

이 책은 가족사회학자가 역사적 자료를 분석하여 한국의 가족제도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저서로, 기록이 남아 있는 모든 시대의 촌계·혼인·가족형태·상속제도·친족구조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가족의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저서이다.

참고문헌

「한국가족제도사연구 서평」(한남제, 『신동아』 1985년 1월호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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