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농민회 (Cat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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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단체
1966년에 창립된 가톨릭 농민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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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6년에 창립된 가톨릭 농민운동단체.
내용

농민 스스로의 단결과 협력으로 농민의 권익을 옹호하고, 인간적 발전을 도모하며, 사회정의 실현을 통한 농촌사회의 복음화와 인류공동체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1964년 10월에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내의 농촌청년부로 출발, 1966년 10월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로 독립하였다.

이어 1970년 ‘가톨릭농민국제연맹’에 회원국으로 가입함과 동시에 1972년 4월 ‘한국가톨릭농민회’로 개칭하여 회원이 청년에서 농민 전체로 확대된 범 농민 운동단체로 새 출발하였다.

이 단체는 설립목적에 따라 삶의 현장인 마을에서 주민들의 일상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마을을 생활공동체로 변화시키려는 현장 활동·문화 활동·봉사활동·권익활동·마을민주화활동을 추진하고, 농지제도 개선, 농산물가격 보장, 농민조합의 민주화, 부당한 농지세제 시정 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74년에는 민간단체로는 최초로 농지임차관계(소작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농지문제를 제기하였다. 또한 1975년부터 쌀 생산비 조사를 통한 농산물가격 보장운동을 전개하였고, 현장 또는 전국적인 단위로 외국양곡수입반대운동·강제농정시정·부당농지세시정·농협민주화운동 등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농협의 고구마 수매와 관련하여 ‘함평고구마사건(1976∼1978)’, 감자의 계약수매에 관련된 ‘안동농민회사건(세칭 吳元春事件, 1979)’ 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 밖의 활동사례로는 1977년 이후로 전개해 온 농협협동조합의 민주화운동을 들 수 있으며, 1981년 대전 농민회관 건립사업, 1982년충청북도 음성에서 개최한 부당농지세시정을 위한 농민대회가 있다. 1982년과 1983년에 걸쳐서는 농지임대차 양성화저지운동과 농협조합장직선제 실시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중반의 민주화운동 안에서 새로운 운동 방향을 설정하면서 외국 농산물 수입개방 저지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나갔고, 1989년 3월에는 전국농민운동연합 결성에도 참여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운동 방향을 생명운동으로 재정립하고 ‘생명공동체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면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과 세계무역기구(W. T. O) 체제 아래서 농업위기 극복방안을 모색하였고, 우리 밀 살리기 운동, 도시교회와 농촌생산자를 공동체적으로 연결하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전개하였다.

21세기에 농촌과 농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WTO 후속협상과 환경과 종(種) 파괴의 심각성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회는 2000년에 생명학교를 설립하고, 유전자조작 식품반대운동을 전개했으며, 2003년과 2004년에는 한-칠레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 우리 쌀 지키기 식량주권수호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2011년에는 한미 FTA의 국회비준을 저지하고, 이의 폐기를 위해 투쟁했다. 이처럼 가톨릭농민회는 농촌과 농업을 위협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생명의 농업’에 충실한 생명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농민회보고서』(1966∼1983)
『농민회활동사례집』(한국가톨릭농민회, 1978)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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