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학자·연구원·관련 실업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보과학과 정보산업의 여명기였던 1973년 2월 14일 창립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해 3월 3일 350명이 모인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창립총회에서 한국과학기술원 소장인 한상준(韓相準)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그 해 5월 5일 ≪정보과학회 소식≫(1권 1호)을 창간, 배포하였다.
최초의 학술대회는 그 해 12월 14일에 열렸는데, 200여 명의 회원이 모여 2개 분과에서 14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학회는 회원들의 전체의견을 수렴하는 총회를 비롯하여 학회운영을 대표위임 받은 회장단회의, 이사회 및 평의원회, 그리고 특정업무를 수행하는 논문지·학회지편집위원회, 학술분과위원회, 포상위원회, 재무위원회, 국제협력위원회, 자문위원회, 기금관리위원회, 회원관리위원회, 산학협동위원회와 각종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상설기구인 사무국으로 조직되어 있다.
정기 학술발표회는 1975년까지 가을철의 정기총회 때에 연 1회 개최하였다. 1976년부터 봄철 임시총회와 병행하여 연 2회 개최하고 있다. 발표논문 수는 1976년까지 20편 미만이었으나 1987년에 285편, 1990년에는 318편으로 늘어났다. 이상의 정기 학술발표회 외에 비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강연회·세미나·워크숍·리뷰 등이 있으며, 1990년에는 50여 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1974년 8월에는 13편의 논문을 게재하여 ≪한국정보과학회지≫를 창간, 배포하였다. 그리고 1983년부터는 교육과 연구자료가 되는 논단·기술연구·참관기·학회소식 등의 기사를 싣는 ≪정보과학회지≫로 개칭하여 발간해 오고 있다. 초창기 논문지의 논문은 특정분야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전분야로 확산되었다.
특히 1990년에는 67편의 논문이 게재되어 연구발표 창구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정보과학과 공학은 그 자체가 종합학문이므로, 회원 각자의 전문연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1990년 현재 12개의 전문분과연구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각 연구회 자체의 정기간행물을 발간하여 전문성 제고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지역간의 특성을 살리고 유기적인 정보교류를 위하여 호남지부와 영남지부 및 충청지부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국제학술활동으로, 많은 논문들이 국제저명학술지와 학술대회에서 발표되고 있고, 1977년에 국제정보회의연합회에 가입한 뒤 총회에 대표를 파견하고 국제학술연합회에도 학회단위로 참여하여 한국정보과학회의 위상을 알리고 있다. 1989년 미국전기전자학회(IEEE)컴퓨터분회에 지부로 가입함으로써 활동영역을 더욱 확대, 심화시키게 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1992년에는 세계적인 국제학술회의인 “’92년 고급응용을 위한 데이터베이스시스템 국제학술심포지엄(DASFAA ’92)”과 “’92년 환태평양 인공지능 학술회의(PRICAI ’92)”를 우리 나라에서 개최할 예정이고, 1993년에는 정보과학회 창립20주년기념으로 국제정보학회를 유치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기타 컴퓨터마인드 조성사업으로,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의 출제와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원하고 있으며, 1992년부터 세계정보경진대회에도 학회 주관으로 우리 나라 고교생대표를 선발, 교육하여 참가할 계획이다.
그리고 전산관련학과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의 우수논문을 심사, 시상함으로써 미래 정보과학자들의 꿈을 고취하는 학생논문경진대회를 한국IBM과 한국후지츠(富士通)의 후원으로 매년 개최하며, 1989년부터는 전국장애청소년 퍼스널컴퓨터 경진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장애인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그리고 산학협동사업으로 1982년부터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정보산업리뷰심포지엄’이 있다.
이 모임은 정보산업에 관련된 정부기관·학계·연구기관 및 산업체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내 정보산업 발전을 위한 제문제를 분석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1984년 이후 산학연계의 연구용역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어 1990년에는 13건이 성료되었다.
특히 정보학 관련 용어사전의 필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133명에 달하는 집필위원을 선정하여 1984년에 국내 최초로 ≪컴퓨터용어사전≫을 출간하였고, 1989년에 증보판을 간행하여 우리 나라 정보과학의 올바른 이해 및 용어통일에 이정표가 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