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엄 3월 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을 위한 투자재원의 조달을 위하여 일제침략기의 「조선증권취인소령(朝鮮證券取引所令)」에 의하여 금융단·보험단·증권단이 공동출자한 영단제(營團制) 조직으로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됨으로써 유가증권시장을 개설, 관리하게 되었다.
개소 당시의 상장회사 수는 12개 사였으나 주식분산이 되어 있지 않아 건국국채(建國國債)의 매매를 중심으로 하는 국공채시장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와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함께 막대한 개발자금을 내자로 조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증권시장의 육성이 절실히 요청되어 1962년 1월 처음으로 자주적인 「증권거래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 의하여 같은 해 4월에 종전의 영단제에서 주식회사제로 조직을 개편하는 등 「증권거래법」이 1973년 6월부터 1998년 4월까지 증권시장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8차례나 보강하여 민간의 투자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한 제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종래의 국공채 위주의 시장으로부터 주식시장으로 전환되었으나 그 동안의 거래관행과 주식회사조직 자체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 거액수도불능(巨額受渡不能)의 증권파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증권거래소의 공신력을 높이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1963년 5월 정부가 출자한 공영제 조직의 한국증권거래소로 개편하였다.
당시 자본금은 30억 원으로 그 중 정부가 68%, 증권회사가 32%를 출자하였다. 거래소는 유가증권의 개설·매매거래 및 상장이나, 상장법인의 공시·회원의 감리 및 유가증권의 경매 등에 관한 업무를 주된 사업으로 하였다.
1971년 투기거래의 온상이던 청산거래를 폐지하고 실물거래인 보통거래제를 채택하여 투자시장으로 변모하였으며, 1975년부터는 손짓과 격탁(擊柝)에 의존하던 전근대적인 매매체결방법을 철폐하고 포스트매매로 완전히 바꾸었다.
그 뒤 수도결제(受渡決濟)업무의 현대화를 기하기 위하여 한국증권대체결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업무의 전산화를 위하여 한국증권전산주식회사를 자회사로 설립하였다.
1979년 7월에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사옥을 신축, 이전하였다. 신사옥의 매매입회장은 2,119㎡의 공간에 10대의 포스트 및 삼면에 대형의 전자시세게시판 등 최신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한편, 종래 전화기에 의존하던 매매주문의 전달이 1983년부터는 전산화되어 단말기를 통하여 시장으로 전달되며, 매매계약의 체결도 자동화되었다.
거래소는 자본시장의 중추기관으로서 1970년대 고도성장기의 기업자금 조달시장으로 기여해 왔으며, 자본시장의 국제화 추세에 따라 외국 주권이나 채권도 상장되는 등 국제자본시장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수행해왔다.
1997년 당시 국제증권거래소연맹의 17번째 회원으로서 세계 각국의 거래소와 정보 및 의견을 교환하는 등 증권시장의 국제적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2005년 1월 27일에 한국증권거래소와 한국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주), 코스닥위원회가 합병되어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이후 2009년 2월 4일에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한국거래소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본사는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 134(범일동)에 있다. 기존의 한국증권거래소는 한국거래소 서울지사가 되어 증권거래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