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대한제국기 의병장이며,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가계 및 인적 사항
생애와 활동
1908년 3월 19일 홍천군 서석면 청양리에서 일본군과 첫 교전 이래 3월 22일, 24일, 25일에 연이어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민긍호의 사후에 강원도 일대의 의병전이 위축되어 갔지만, 한창호의 의병 부대는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고, 일본군은 그러한 그의 부대를 주목하였다. 일본군은 심리전을 동원하여 1908년 4월 초 홍천군 월운리 서북후동에 있는 그의 집을 급습하고 처자를 납치하여 귀순을 중용하였다. 하지만 그는 의병장 김현국(金顯國) · 금기철(琴基哲)과 4월 20일에는 횡성 수비대를 기습 공격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계속되면서 한상렬의 부대는 20명 정도의 규모까지 축소되었다. 국내에서 의병 항쟁이 어려워지자 의병 부대를 해산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만주로 건너가 이범윤 · 유인석 등이 조직한 성명회에서 활동하였고, 1915년에는 창의소(倡義所)를 조직하고 중대장이 되었다. 1920년 대한의용부의 참모로 활동하였고, 1926년에는 홍범도(洪範圖)가 조직한 대한독립단에서 보급품을 확보하고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군정부에서는 방화대(放火隊) 제2부장을 역임하면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김좌진(金佐鎭)이 설립한 성동무관학교 내의 조직인 동우회에서 선전계, 군자금모금계장으로 있었고, 중동선(中東線) 대표로 북만주 의용군에 참여하였다. 1926년 9월 19일 민족 진영의 분열을 책동하던 주중청년총연맹(駐中靑年總聯盟)에 의하여 피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김후경·신재홍,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3(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1)
논문
- 심철기, 「1907년 원주의병의 쇠퇴와 새로운 항일투쟁의 전개」(『역사와 교육』 22, 역사와교육학회, 2016)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훈록(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MeritList.do?goTocode=20002)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외 항일운동 자료 일본 외무성기록(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haf)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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