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봉화 출신. 1907년 초 경북 울진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경북의 북부 산간지역과 영동 지역에서 활동했다.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과 통감부의 설치로 인해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자 우리 민족의 반일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운동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전쟁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금기철은 1907년 울진에서 기의(起義)해 4월 20일 한상설(韓相說), 김현국(金顯國) 등과 함께 구성(構城)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했다.
1908∼1910년 5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삼척(三陟)·갈전(葛田)·강릉(江陵)의 각군을 중심으로 대일항전을 계속했다. 1912년 김상수(金相守)와 함께 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같은 해 6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언도받고 이에 불복하여 상고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1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됨에 따라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