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 출신. 일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을 계기로 광무황제를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해 군대를 해산시키는 일을 자행했다. 이 때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부대를 찾아가거나 새롭게 부대를 조직해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켰다.
1908년 8월 10일(음력) 김춘쇠(金春釗) 의병에 들어가 포군(砲軍)으로 활동했다. 1909년 10월까지 60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경기도(京畿道) 양주(楊州), 가평(加平)과 강원도(江原道) 홍천(洪川)에서 의병 군수품의 수합과 일본 수비대와 총격전을 벌렸다.
1909년 10월 30일(음력) 김한경(金漢京)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소재 잡화점에서 용품을 빼앗아 군수품으로 조달했다. 1910년 3월 23일 체포되어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