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은율 출신. 1920년 8월 중국 간도(間島)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 및 일본 고위관리의 암살을 목적으로 파견된 이명서(李明瑞) 일행을 홍원택(洪元澤)과 함께 안내했다.
이 때 이집효(李執孝)는 군수를 살해했고 고사환(高士煥), 원사현(元士鉉)은 고학윤(高學倫)을 저격했으나 실패했다. 나머지 대원은 주재소를 습격해 산정(山井)순사를 저격해 명중시키고 도주했다. 친일적인 은율군수 최병혁(崔丙赫)을 사살사건이 일어나자 중국 상해(上海)로 탈출했다.
이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설립한 무관학교에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은 뒤 대한독립단에 입단해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던 중 1921년 다시 국내로 밀파되어 군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 등에 진력했다. 황해도 은율 근처에서 일본 경찰과 대치하였다.
이창실(李昌實)과 함께 체포되어 9월 14일 해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21년 12월 22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을 언도받고 공소했으나 1922년 2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