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출신. 호는 무산(武山), 본명은 송재길(宋在吉).
평양(平壤)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05인사건에 관련해 체포의 위험이 있자 1912년 간도(間島)로 망명했다. 하얼빈에서 청년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용정(龍井)에서 간민회(懇民會)의 일본조사부원(日本調査部員), 대동혁신회원(大同革新會員), 동제회(同濟會) 평의원(評議員)으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통신부원(通信部員) 겸 중부경호부장(中部警護部長)으로 1920년 11월까지 활동했다.
1919년 11월 간도청년회(間島靑年會)를 발기하였다. 1920년 2월 간도 15만원사건에 연루되어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1920년 11월 12일 연길현(延吉縣) 태평(太平構) 용포동(龍浦洞)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