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함열현읍지(咸悅縣邑誌)’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이 밖에 함열현(咸悅縣)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열읍]에 대한 기록은 1905년에 편찬된 주1와 주2에 수록된 「함열읍지」가 있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현명(縣名), 관직(官職), 방리(坊里), 도로, 성지(城池),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학교, 단묘(壇廟), 공해(公廨), 봉수(烽燧), 제언(堤堰), 장시(場市), 교량(橋梁), 역원(驛院), 사찰, 물산(物産), 진공(進貢), 상납(上納), 호구, 전총(田摠),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요역(徭役), 창고(倉庫), 조적(糶糴), 군기(軍器), 군액(軍額), 노비(奴婢), 선생안(先生案), 인물 등으로 구성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12개의 소재 면을 적었으며, 도로 항목에서는 군 사방의 경계를 정리하였다. 성씨 항목에는 5개의 성씨가 있으나, 1905년의 『함열군읍지』에는 13개로 늘어나 있다. 호구 항목에는 임자식 호구를 반영하여 원호 4,182호에 1만 6251명의 인구를 기록한 반면, 『호남읍지』는 원호 3,571호에 인구수 9,451명, 『함열군읍지』는 인구가 줄어 원호 2,655호에 6,432명의 수치를 보인다. 선생안 항목에는 1792년(정조16)까지의 지방관 임퇴(任退) 시기를 기록하여 놓았다. 인물 항목은 충신, 효자, 학행, 열녀 순으로 기술하였는데, 『여지도서』와 비교해 일부가 첨삭되었을 뿐 내용은 같다. 『함열군읍지』의 경우, 인물 관련 내용은 없고 행정과 군사, 조세, 인구, 경제 등 군의 전반적인 상황을 항목별로 구체적 수치로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