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주군 ()

대동여지도 중 함경남도 함주, 흥남, 함흥 부분
대동여지도 중 함경남도 함주, 흥남, 함흥 부분
인문지리
지명
광복 당시 함경남도 중부에 있었던 군.
정의
광복 당시 함경남도 중부에 있었던 군.
개관

동쪽은 홍원군, 서쪽은 정평군, 북쪽은 장진군·신흥군, 서북쪽은 극소부가 평안남도 영원군과 접하고 있으며, 남동쪽은 동해에 면한다.

동경 127°09′∼127°48′, 북위 39′46°∼40′16°에 위치하며, 면적 1,338.75㎢, 인구 16만3951명(1940년 현재)이다. 16개 면 309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함흥시 유락동이다.

자연환경

내륙 지방은 서쪽의 낭림산맥과 북쪽의 부전령산맥(赴戰嶺山脈)의 여맥이 뻗어 내려 산악 지대를 이루나, 성천강(城川江) 연안과 해안 지대는 비교적 평탄하다.

동쪽에 봉화산(烽火山, 814m)·추덕산(楸德山, 401m)·초막산(草幕山, 579m), 서쪽에 황봉(黃峰, 1,736m)·백운산(白雲山, 1,078m)·천의산(天依山, 1,285m)·중창령(中倉嶺, 465m), 북쪽에 황초령(黃草嶺, 1,200m)·마대산(馬岱山, 1,745m) 등의 험한 산이 솟아 있다.

신흥군의 금패령(禁牌嶺)에서 발원한 성천강은 군의 중앙을 남류하다가 흑림강(黑林江)·호련천(瑚璉川) 등의 지류와 합류하여 동해로 유입한다.

백운산에서 발원한 여위천(汝渭川)은 군의 중서부를 동류하다가 본래 성천강과 병행하여 남류하면서 광포로 유입하였으나, 1929년 성천강 제방 공사 때 인공적으로 하조양면과 천원면계에서 성천강으로 합류시켰다.

하천 연안에는 대규모의 비옥한 함흥평야(咸興平野)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며 주요 거주 지역이 되고 있다. 남부는 해안 지대를 이루며 해안선은 약 26㎞이다. 특히 퇴조만은 수심 10∼30m 정도로 좁고 긴 형태를 이루어 큰배의 정박은 적당하지 않지만 연안 항로의 안전한 기항지이다.

기후는 추운 지역에 속하지만 낭림산맥·부전령산맥이 겨울의 북서계절풍을 막아 주며, 때에 따라서는 푄(F○hn)현상을 일으켜 비교적 온난하여 같은 위도 상의 서해안 지방보다 겨울 평균 기온이 4℃ 정도 높다.

연평균기온 9.8℃, 1월 평균 기온 -5.6℃, 8월 평균 기온 23.7℃, 연 강수량 890㎜이다. 대개 첫서리는 10월 중순경에, 마지막 서리는 4월 하순경까지 내린다.

역사

고대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대성리(大成里)·운동리(雲洞里)·지장동(至長洞)·이화동(梨花洞)·호상동·송매리(松梅里) 등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유적이 발견되므로 적어도 이 시기부터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역사 시대에 들어와 남옥저(南沃沮)에 속하여 있다가 56년(태조왕 4) 태조왕의 정복으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그 뒤 6세기 후반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함경남도 지방까지 북상함으로써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이때 함주의 황초령과 이원의 마운령(磨雲嶺)에 순수비(巡狩碑)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뒤에 발해가 건국되자 그 영역에 들어갔으며, 이곳에는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가 설치되었다.

고려

고려 건국 직후인 920년(태조 3) 동북면 방면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유금필(庾黔弼)을 골암성(鶻巖城)에 파견하여 일찍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던 여진족을 회유, 혹은 토벌함으로써 영흥(永興) 이남은 다시 고려 영토로 편입되었으나, 함주 이북은 여전히 동여진의 세력권에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에서는 이 지역의 여진족을 회유하여 귀순 마을을 구분하고 주명(州名)을 하사하여 기미주(羈縻州)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숙종 때 여진족의 신흥 세력인 완안부(完顔部)가 정주(定州)까지 남하해 옴에 따라 고려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고, 1107년(예종 2) 윤관(尹瓘)이 별무반(別武班)을 조직하여 함흥평야를 점령하고 다음해에 이곳에 함주대도독부(咸州大都督府)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주(英州)·웅주(雄州)·길주(吉州)·복주(福州)·공험진(公嶮鎭)·통태진(通泰鎭)·숭녕진(崇寧鎭)·진양진(眞陽鎭)에 이른바 9성(城)을 수축하고 남쪽 지방의 민호를 옮겨 살게 하였다.

그러나 2년 뒤에 여진족의 간절한 환속 요청과 고려 국내의 사정으로 9성을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되어 다시 여진족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 뒤 금나라가 쇠망하면서 다시 고려의 영토로 회복되었으나, 몽고와의 전쟁 중이던 1258년(고종 45)에 조휘(趙暉)·탁청(卓靑) 등이 동북면병마사 신집평(愼執平)을 죽이고 화주 이북의 땅을 들어 몽고에 항복하자 몽고는 화주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여 이 지역을 지배하고 함주를 합란부(哈蘭府)라 칭하였다.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실시하면서 쌍성총관부를 공략하여 영토를 회복하고 함주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가 곧 만호부로 고쳤으며, 1369년에 다시 목(牧)으로 승격시켰다.

조선

1416년(태종 16) 함흥부(咸興府)로 승격시키고 관찰사의 본영으로 삼았으며, 토관(土官)을 설치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432년(세종 14) 당시 호수는 3,538호, 인구는 8,913명, 간전(墾田)이 2만7774결(수전은 850결)이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 함흥부 사람들이 관찰사 신면(申㴐)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하여 1470년(성종 1)에 군으로 강등하고 관찰사영은 영흥부(永興府)로 이전하였다.

그 뒤 1509년(중종 4)에 다시 함흥부로 복구되고 관찰사영도 영흥에서 이전되어 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함경도로 침공하여 왔을 때 함흥의병장 유응수(柳應秀)의 활약은 청사에 빛날 만하며, 또 동래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부사 송상현(宋象賢)의 소실 김섬(金蟾)은 함흥 출신의 기생이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청군의 일부인 몽고병이 함경도를 거쳐 철수하였기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았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1759년(영조 35) 당시 방리는 주남사(州南社) 등 27사에 호수 1만1708호, 인구 5만9159명(남자 3만3956명, 여자 2만5203명)이고, 전결은 한전(旱田)이 5,913결 50부 8속, 수전이 1,295결 95부 2속이었다. 부치(府治)는 주남사에 있었다.

1862년(철종 13)에는 함흥민란이 일어났는데, 이는 앞서 일어난 진주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주모자 이면용(李冕用)은 사형당하였다.

근대

1895년(고종 32) 5월 지방관제가 개정되어 전국에 23부 337군을 설치하고 부에는 관찰사, 군에는 군수를 두었을 때 함흥부에도 관찰사를 두었고, 그 아래 11개 군이 예속되어 있었다.

이듬해 8월 다시 전국을 13도 18부 1목 331군으로 개편할 때 함흥부는 함경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으며, 1910년에는 함흥군으로 고쳐졌다.

1914년 4월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함흥·홍원·장진군의 일부를 떼어 신흥군을 신설하였고, 홍원군의 서퇴조면을 함흥군에 편입시킴으로써 모두 20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최순탁(崔淳鐸) 등이 주동이 되어 3월 2일에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박은식(朴殷植)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 의하면 집회 수 11회, 집회인 수 1만200명, 피상인 수 52명, 피수인 수 5,385명이었다.

1931년 4월 함흥면에 북주동면(北州東面)의 일부가 합쳐져 함흥부로 승격됨에 따라 함흥군의 나머지 지역이 함주군으로 분리되어 18개면을 관할하였으며, 군청은 함흥부 신창리에 두어졌다.

1937년 4월 함흥부의 구역 확장으로 함주군 운남면의 용호리·사포리와 동천면의 용흥리 및 주북면의 용흥리, 주서면의 서상리가 함흥부에 편입되었으며, 운남면의 나머지 지역과 서호면 일부는 흥남읍에 편입되었다.

1944년 정평군 선덕면이 함주군에 편입되어 16개 면으로 되었으며, 흥남읍이 부로 승격되었다. 1943년 현재 호수 5만6912호, 인구 32만1439명(남자 16만8481명, 여자 15만2958명)으로 급증하였다.

유물ㆍ유적

선사 시대 유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지석리의 고인돌을 비롯하여 1952년과 1967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하여 《고고학자료집》 4집에 발표한 바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과 1975년에 함주군 조양리에서 발굴하여 1983년 《고고학자료집》 6호에 발표한 청동기 시대 유적 등이 있다.

고구려 때의 산성인 백운산성(白雲山城)은 백운산에 있는데, 토축으로 주위가 4,414m나 되며 북한 측이 지정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국보 제146호로 지정되었던 신라 진흥왕 황초령순수비가 하기천면 진흥리 범박동에서 발견되어 현재 함흥시 본동의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윤관이 여진을 정벌하고 쌓은 9성 가운데 함주성(주위 38.35m, 높이 6.4m)을 비롯하여 복주성·오로촌성·공험진성·웅주성 등 7개가 함주군 내에 있으며, 이 밖에 상조양면 탑동리의 한당고성(閑堂古城, 주위 1,972.8m)과 덕산면 상대리의 초원고성(草原古城, 주위 1,350m), 퇴조면 성내(城內)의 퇴조고성(退潮古城, 주위 1,241m), 덕산면 대덕리의 덕산고성(德山古城, 일명 마고성, 주위 148.5m), 천서면 운흥리의 동봉산 중턱에 있는 중봉고성(中峰古城), 함흥시 서쪽 11㎞에 위치한 우봉석성(牛峰石城, 주위 314.8m), 함흥시 남쪽 18㎞에 위치한 선덕진성(宣德鎭城) 등이 있다.

또한 조선 시대의 군영인 중령보(中嶺堡)가 하기천면 진흥리에 있으며, 연포(連浦)에는 제성단(祭星壇)이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운극산 신흥사·정암사와 우두산 망해사, 오봉산 정수암 등이 있었으나 모두 폐사되었으며, 백운산에 용흥사(龍興寺), 함관령(咸關嶺) 아래에 운주암, 운봉산에 극락암, 주북면 부민리 신동에 용운사, 천서면 신흥리에 광흥사(廣興寺), 동천면 청송리에 흥복암 등이 남아 있다.

사원(祠院)으로는 선덕면 화도리에 화도사(花島祠)와 천서면 운흥리에 기자묘(箕子廟), 하기천면 중흥리에 함성대군사우(咸城大君祠宇) 등이 있다.

이 밖에 퇴조면 풍서리·용흥리·송흥리·상송리·서중리, 덕산면 황사리·문봉리·구상리·모봉리, 천서면 신상리, 하기천면 은봉리 등지에는 봉수지(烽燧址)가 있다.

교육ㆍ문화

전통적인 교육 정신의 뿌리는 함흥·흥남시에 의존하여 왔으며, 독자적인 교육기관은 빈약하다. 조선 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현 함흥시 소화동에 함흥향교가 설치되어 많은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지방 여러 곳에는 서당이 설립되어 한문을 전수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향교의 교육 기능이 약화되면서 많은 서원과 사우가 설립되었는데, 선덕면 화도리에 화도사, 천서면 운흥리에 기자묘, 하기천면 중흥리에 함성대군사우 등이 세워졌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7년 함흥향교 내에 사립학교가 처음 설립되었으며, 1905년 사립풍흥학교(私立豐興學校)라 하다가 1909년 사립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와 병합하여 함흥고등학교라 하였다.

1918년 함흥고등보통학교로 되었으며, 그뒤 함남중학교로 개칭되었다. 1903년 장로교 계통의 영생여학교(永生女學校)가 설립되어, 1923년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로 되었고, 1907년 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가 설립되었다.

또한 1910년 함흥농업학교, 1920년 함흥상업학교, 1922년 함남고등여학교 등이 계속 설립되었다. 그러나 1931년 함흥부제 실시와 함주군 구역 개편으로 인하여 함흥이 분리되고, 1944년 흥남도 시로 승격되어 이 군에는 초등학교만이 남아 있게 되었으며, 중등 이상의 학교는 함흥·흥남시로 통학하며 교육을 받았다. 194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8개교, 사립소학교 2개교, 간이학교 4개교가 있다.

종교 상황은 함흥을 중심으로 천도교·기독교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천도교는 1902년 포교된 이후 천도교 갑진년사건이 발생하여 교세가 더욱 확산되어 1921년 천도교청년당 함흥지부가 조직되었다.

또한, 천주교는 1895년 당시 함흥 운흥리에 성당이 건립되어 교세가 확장되었으며, 개신교는 캐나다계 장로교파에 의하여 전파된 이후 영생중학교·영생여자고등학교·영생소학교 및 자혜병원 등을 설립하여 교육과 의료 사업을 통하여 사회봉사 활동을 하였다. 1945년 현재 불교 사찰 7개, 개신교 교회 15개가 있다.

이 고장의 설화로는 〈정화릉 묘자리 설화〉·〈본궁터를 장기 내기로 잡던 설화〉·〈광포매몰 전설〉·〈결구정 마분 설화〉·〈서호지형 설화〉 등이 있다. 그중 〈광포매몰 전설〉은 다음과 같다.

광포에는 불량 청소년들이 많았다. 어떤 노파가 조그마한 주막을 차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갈건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노인이 이 주막에 찾아와서 배가 고프니 요기를 하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노파는 측은히 여겨 주린 노인을 정성껏 대접하였다. 노인은 잘 먹고 난 뒤 가지고 있는 돈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으냐고 걱정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본래부터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무슨 밥값이냐고 노인을 위로하였다.

노인은 한참 서서 무엇을 생각하다가 “지금부터 3일간의 양식을 준비하여 두었다가 저 산 위의 묘 앞에 서 있는 동자석상(童子石像)의 눈에서 피가 흐르거든 즉시 준비한 양식을 가지고 높은 산 위로 피난을 하시오.” 하고는 어디론지 가버렸다. 노파는 그 말대로 양식을 준비하여 두고 동자 석상에서 피가 나는가를 살피었다.

한편, 불량 청소년들은 오히려 노파를 곯리려고 밤에 몰래 산에 올라가서 그 석상의 눈에 붉은 칠을 하여 마치 혈루처럼 하고 노파에게 알렸다. 노파는 황급히 식량을 준비하여 큰 산 위로 피난하였다.

불량 청소년들은 그들의 계략이 맞았음을 통쾌히 여기면서 노파의 술통을 열어 놓고 실컷 마시다가 취하였다. 그 동안에 마침 해일이 일어나서 순식간에 광포는 바다로 변하였으며, 큰 도시였던 광포는 모두 다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이 군은 들이 넓고 물이 많은 고장이라, 낙조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장관을 이루는 함주벌은 목가와 낭만이 함께 깃들여 있어 민요로 유명한 편이다.

〈애원성〉이나 〈창세요〉·〈성주풀이〉·〈이별가〉·〈아리랑타령〉·〈어깨동무〉·〈멱 감는 노래〉·〈몸 말리는 노래〉 등이 있는데, 그중 〈아리랑타령〉은 다음과 같다.

“먼동이 트네 먼동이 트네/미친 임 품에서 깨어났네/문전의 옥답을 다 팔아먹고/거러지 생활이 웬일이야/양양의 길 같은 이내 몸도/내 짝 잃고서 이 꼴이라/십 리 길 멀다고 우는 임아/이날이 지며는 어이하리/외짝의 기럭아 왜 우느냐/네 짝을 잃고서 왜 우느냐/원수로다 원수로다/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또한, 〈어깨동무〉는 “어디꺼정 강∼강/서울꺼정 간∼다/무슨 밥 먹었니/모래 밥 먹었다/무슨 밥 먹었니/수수대간 먹었다.”와 같다. 〈멱 감는 노래〉는 “물배 동동 찰배 동동/동굴소의 짤배 동동/네가 떴니 내가 떴니/너도나도 모두 떴지/물배 동동 물배 동동/찰배 동동.”과 같으며, 〈몸 말리는 노래〉는 “땡∼땡 말라라/곳치곳치 말라라/해야 해야 물 떠먹고/얼른 나와 비쳐라/땡∼땡 말라라/빨리 빨리 말라라.”와 같다. 이 밖에도 〈널뛰기노래〉·〈피리노래〉 등의 민요가 전한다.

민속놀이로는 정월 대보름에 엿을 깨물며 하는 만세교(萬歲橋) 다리밟기와 오월 단오의 그네뛰기와 씨름이 있으며, 특이한 놀이로는 고기잡이배의 출어굿이 있다.

동제는 봄·가을 두 차례 지내며, 제신은 천신과 지신이다. 제단은 마을의 동남 방향인 노송 숲의 평지에 마련한다. 제사 시간은 낮 또는 밤중인데 봄에는 술·과일·닭고기·개고기·돼지고기 등의 음식이 제물로 차려지고 가을에는 새로 나온 곡식으로 만든 음식과 술·과일·생선 등의 제찬이 준비된다. 주관자는 마을 이장이 되며 음식은 제를 지낸 뒤 각자 집에 가져가서 먹는다.

산업ㆍ교통

성천강 유역에 형성된 비옥한 함흥평야를 중심으로 논농사 위주의 농업이 이루어지며, 북부산지와 구릉 지대에서는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부전호(赴戰湖)·장진호(長津湖) 등이 건설되어 성천강은 주요 수자원으로 관개에 이용되며, 이 일대는 쌀의 곡창 지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조·피·팥·감자·채소 등이 있으며, 특산물로는 고추·대마 등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과수원이 조성되어 사과·배·복숭아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며, 특히 콩과 사과는 품질이 우수하여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농가 부업으로는 축우·양돈 등의 축산업도 이루어져 농가 소득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임업으로는 북부 산지의 홍송·낙엽송 등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벌목 사업이 활발하다. 원목은 함흥으로 집적되어 제재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운반되기도 하며, 동천면·덕산면 등을 중심으로 목재·신탄·목탄 등이 생산된다.

광업으로는 덕산면에서 휘철광(輝鐵鑛)·형석광(螢石鑛), 하조양면에서 방연광(方鉛鑛), 동천면에서 적동광(赤銅鑛)·공작석(孔雀石) 등이 채굴된다.

연근해에는 퇴조만을 중심으로 약 34개소의 정치망(定置網) 어장이 있으며, 명태·고등어·대구·청어 등의 어획이 많다. 그 밖에 수산 가공업이 이루어져 건명태어·간유 등이 제조되며, 특히 간유는 약재로 이용된다.

시장은 상설 시장 1개소, 정기 시장 7개소가 열리고 있다. 연포면연포장은 상설 시장이며, 상기천면오로장과 주지면지경장이 5·10일, 하기천면상통장과 상조양면상한장이 1·6일, 기곡면기곡장이 3·8일, 덕산면덕산관장과 퇴조면퇴조장이 4·9일에 열린다.

이 가운데 덕산관장은 목재·신탄, 퇴조장은 수산물의 거래로 잘 알려져 있으며, 오로장·지경장은 함흥장과 더불어 3대 우시장으로 유명하다. 주요 거래 품목으로는 농산물·공산품·생활필수품·해산물·신탄 등이 있다.

교통은 함경선이 동남부 해안 지대를 따라 통과하며 흥상·여로·퇴조 등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함흥시에서 산업철도인 함남선이 분기하여 서함흥역에서 북행하여 오로역에서 갈라진다.

하나는 동북으로 신흥군 풍상을 지나 장풍에 이르며, 신흥∼부전호반 간의 송흥선(松興線)에 연결되고, 다른 하나는 북으로 상통리에 이르며 상통∼장진군 사수 간의 장진선(長津線)에 연결된다.

도로는 철도와 거의 병행하며 함흥시를 중심으로 국도와 지방도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 함흥∼신안주 간, 함흥∼황수원 간, 함흥∼자성 간의 2등도로, 함흥∼신상 간, 서호진∼연포 간, 서호진∼홍원 간의 3등도로가 통과하여 교통은 편리하다. 주요 관광지로는 하조양면과 정평군 고산면과의 경계에 백운산성·광포 등이 있다.

읍ㆍ면

기곡면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60㎢, 인구 5,708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흥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동기곡면(東岐谷面)·서기곡면(西岐谷面)을 병합하여 기곡면(岐谷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동부와 북부는 산지와 구릉 지대를 이루며,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천강이 면의 서부를 남류하며, 서남부 일대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다. 사과·배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여 타 지역으로 공급되며, 농가 부업으로 소의 사육도 이루어진다. 북부 산지에는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목재·신탄 등이 생산되며 함흥·흥남 등지로 반출된다.

교통은 함흥∼황수원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통과하며, 주북면·상기천면·신흥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동흥(東興)·상(上)·서원(西原)·중(中)·기양(岐陽)·흥서(興西)·신동(新洞)·장동(長洞)·흥복(興福)·동덕(東德)·증흥(中興)·상직(上直)·삼당(三堂)·풍동(豐東)·신풍(新豐)·신중(新中) 등 16개 이가 있다.

덕산면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96.86㎢, 인구 9,679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부상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상덕산면(上德山面)·하덕산면(下德山面)·서덕산면(西德山面)을 병합하여 덕산면(德山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동쪽에 함관령(450m)·봉화산, 북쪽에 단봉(檀峰, 688m) 등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구릉 지대를 이루어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호련천이 면의 중앙을 남서류하다가 성천강으로 유입되며, 하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사과·배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다. 광업으로는 임동리에서 휘철광, 흥경리에서 형석광 등이 채굴된다.

교통은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동천면·기곡면·함흥시·홍원군 등과 연결되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상대리의 초원고성, 대덕리의 덕산고성 등이 있으며, 이성계(李成桂)가 북방 이민족을 격파한 유서 깊은 함관령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부상(扶桑)·중흥(中興)·신풍(新豐)·초흥(初興)·노봉(老峰)·대동(大洞)·관동(館洞)·흥봉(興峰)·대평(大坪)·삼봉(三峰)·흥경(興慶)·안심(安心)·신덕(新德)·대덕(大德)·상대(上垈)·원흥(元興)·중평(中坪)·원상(元上)·신상(新上)·구상(舊上)·문봉(文峰)·동양(東陽)·상중흥(上中興)·마상(麻上)·모봉(帽峰)·황사(黃舍)·사동(舍洞)·회양(會陽)·용봉(用峰)·풍양(豐陽)·풍상(豐上)·상혜(上惠)·흥동(興洞)·하흥동(下興洞)·송호(松湖) 등 35개 이가 있다.

동천면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0㎢, 인구 1만3009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풍동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북주동면(北州東面)의 일부와 덕천면을 병합하여 동천면(東川面)이 되었으며,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1937년 용흥리·회상리·신흥리가 함흥부로 편입되었다.

동쪽에 초막산·갈미봉(葛未峰, 787m)·송동령(松洞嶺, 580m), 남쪽에 비룡봉(飛龍峰, 516m)·운주봉(雲柱峰, 618m) 등이 솟아 있으며, 비교적 넓은 분지를 이룬다. 성천강의 지류인 동천강이 흐르며, 하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사과·배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다. 북부 산지에는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목재·신탄 등이 채굴되며 함흥으로 반출된다. 광업으로는 흥동리에서 적동광·공작석 등이 채굴된다.

교통은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에서 분기한 등외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덕산면·퇴조면·함흥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경흥리의 정릉(定陵)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풍동(豐東)·하신풍(下新豐)·덕허(德許)·하동흥(下東興)·상신흥(上新興)·흥경(興京)·쌍봉(雙峰)·풍남(豐南)·원봉(元峰)·삼봉(三峰)·상신풍(上新豐)·가흥(街興)·경흥(京興)·동상(東上)·송흥(松興)·흥봉(興峰)·동덕(東德)·순흥(順興)·동봉(東峰)·상동흥(上東興)·청송(靑松)·흥동(興東)·억동(億洞)·풍양(豐陽)·풍서(豐西)·대동(大洞) 등 26개 이가 있다.

삼평면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 인구 1만587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중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동삼평면(東三平面)·서삼평면(西三平面)을 병합하여 삼평면(三平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1944년 흥남읍이 부로 승격되면서 완풍·송흥 등 11개 동리가 흥남부로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천강이 면의 동부를 남류하다가 동해로 유입된다. 저지대이기 때문에 홍수 피해가 많았으나, 1936년 제방 수리 공사가 완성되어 피해가 감소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교통은 함흥∼신상 간의 3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통과하며, 주서면·연포면·함흥시·흥남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동중(東中)·상태(上太)·송호(松湖)·송대(松垈)·수흥(洙興)·동(東)·부흥(富興)·서성(西成)·인흥(仁興)·신흥(新興)·신경(新慶)·중상(中上)·풍서(豐西)·수풍(數豐)·자상(自上)·원상(元上) 등 16개 이가 있다.

상기천면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12㎢, 인구 9,319명(1940년 현재). 상기천면(上岐川面) 면 소재지는 오로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편입되었다.

북서부는 산지와 구릉 지대를 이루며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성천강이 면의 동부를 남류하다가 오로리에서 흑림강과 합류한다. 이곳 분기점은 삼각형을 이루는 완경사지이며, 동남부 일대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사과·배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여 타 지역으로 공급된다. 공업으로는 제재·벽돌 제조 등이 이루어진다.

교통은 함흥시에서 산업철도인 함남선이 연장되었으며, 오로리에서 분기하여 하나는 신흥군 풍상을 지나 송흥선에, 다른 하나는 하기천면 상통리를 지나 장진선에 연결된다. 부전강·장진강의 수력발전뿐 아니라, 해안과 내륙 고원의 철도 분기점으로 중요한 요지를 이룬다.

도로는 함흥∼자성 간의 2등도로가 면의 남서부를 통과하며 하기천면·주북면·신흥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오로리에 오로촌고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오로(五老)·상(上)·중상(中上)·신경(新慶)·죽(竹)·경흥(慶興)·경복(慶福) 등 7개 이가 있다.

상조양면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85㎢, 인구 6,564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한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동조양면(東朝陽面)을 병합하여 상조양면(上朝陽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북쪽에 견두봉(犬頭峰, 589m)·오악봉(烏岳峰, 385m) 등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구릉 지대를 이루어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여위천이 성천강과 합류하여 면의 동부 경계를 남류하며, 동부 일대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사과·배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여 타 지역으로 공급된다. 서북부 산지에는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목재·신탄 등이 생산되며, 함흥·흥남 등지로 반출된다.

교통은 지경∼오로리 간의 등외도로가 면의 중동부를 통과하며, 상기천면·하조양면·천서면·천원면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탑동리에 한당고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신한(新閒)·신안(新安)·상한(上閒)·상(上)·중평(中坪)·봉명(鳳鳴)·삼길(三吉)·상보(上保)·탑동(塔洞) 등 9개 이가 있다.

선덕면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81.79㎢, 인구 4,244명(1940년 현재). 선덕면(宣德面) 면 소재지는 선덕양리이다. 본래 정평군 지역으로서 1944년 이 군으로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동부는 해안 지대로 석호와 화도(花島)·간도(間島)·소화도(小花島) 등의 섬이 있다. 광포강(廣浦江)이 면의 북부를 동류하다가 동해로 유입되며, 광포는 관개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연근해에서는 대구·청어·고등어 등이 어획되며, 몽상리에 어장이 형성되어 있다. 특히, 광포에서는 담수어와 각종 어패류가 많이 잡힌다.

교통은 함흥∼신상 간의 3등도로가 이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연포면·주지면·정평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정평군과의 경계에 우리 나라 제1의 호수인 광포가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오현서원(五賢書院)의 해월헌유지(海月軒遺址), 향사인 화도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선덕양(宣德陽)·신경(新京)·창(倉)·용흥(龍興)·구하(舊下)·구남(九南)·흥덕(興德)·서흥(西興)·경흥(京興)·호상(湖上)·서중(西中)·호남(湖南)·인산(仁山)·서호(西湖)·풍호(豐湖)·중(中)·원산(元山)·신풍(新豐)·운흥(雲興)·흥상(興上)·서상(西上)·고상(高上)·명호(明湖)·중상(中上)·경호(鏡湖)·대덕(大德)·동상(東上)·신흥(新興)·몽상(蒙祥)·풍상(豐上)·화도(花島)·중해(中海)·동흥(東興)·동후(東厚)·장문(章文)·신남(新南)·신창(新昌)·신덕(新德) 등 38개 이가 있다.

연포면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3.16㎢, 인구 7,068명(1940년 현재). 연포면(連浦面) 면 소재지는 경흥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남부는 해안 지대를 이룬다. 성천강이 면의 동부를 남류하며, 광포강이 면의 남부를 동류하다가 모두 동해로 유입되며, 수원천(水院川)이 면의 서남부를 흐른다. 하천의 퇴적작용으로 토사가 퇴적되어 주이천(朱伊川)과 성천강 하구에 삼각주가 형성되어 복합삼각주를 이루며, 토양은 비옥하지만 저습 지대로서 범람이 잦다. 따라서 1931년에 홍수에 대비한 수리시설과 제방 공사가 완성되어 그 피해가 감소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연근해에서는 대구·청어·광어·고등어·조개 등이 어획된다. 교통은 함흥∼신상 간, 서호진∼연포 간의 3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통과하며, 삼평면·선덕면·주지면·흥남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제성단이 있다. 태조이성계가 승하할 때 단을 쌓고 준마 태백성(太白星)을 향사하던 곳이며, 이성계의 준마 8두(頭) 가운데 2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경흥(慶興)·상(上)·원상(元上)·중(中)·신흥(新興)·풍상(豐上)·덕흥(德興)·용상(龍常)·중평(中坪)·동흥(東興)·서흥(西興)·중흥(中興)·용성(龍成)·흥성(興成)·구만(九萬) 등 15개 이가 있다.

주북면

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29㎢, 인구 8,704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흥경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상주북면(上州北面)·하주북면(下州北面)을 병합하여 주북면(州北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1937년 용흥리가 함흥부로 편입되었다.

동부는 구릉 지대를 이루어 밭농사가 이루어지며, 그 밖의 지역에는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성천강이 면의 서부를 남류하다가 함흥시로 유입되며, 1931년 성천강 제방 공사가 완성되어 관개시설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홍수 피해도 감소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사과·배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다.

교통은 1933년 함흥∼오로리 간 함남선이 확장, 건설되어 면의 중앙을 통과한다. 이와 병행하여 함흥∼자성 간의 2등도로가 통과하며, 함흥∼황수원 간의 2등도로가 면의 북부에서 분기한다. 상기천면·기곡면·함흥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흥경(興慶)·운장(雲藏)·운흥(雲興)·흥봉(興峰)·후언(厚0xA02B)·신덕(新德)·신계(新溪)·운봉(雲峰)·서양(西陽)·기양(岐陽)·중흥(中興)·상운(祥雲)·장흥(長興)·동흥(東興)·신풍(新豐)·부민(富民)·상반(上盤)·반송(盤松)·흥덕(興德)·봉하(鳳賀)·송흥(松興)·쌍송(雙松)·흥상(興祥) 등 23개 이가 있다.

주서면

[주서면 州西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32.34㎢, 인구 2만1167명(1940년 현재). 주서면(州西面) 면 소재지는 삼암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937년 서상리와 풍호리가 함흥부로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성천강이 면의 동부를 남류한다. 여위천이 본래 면의 중앙으로 흘러 들어갔으나 1929년 인공적으로 성천강에 합류시켰다. 1926∼1931년 홍수에 대비한 수리시설과 제방 공사가 완성되어 그 피해가 감소되었으며, 미작의 곡창 지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교통은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가 면의 북부를 통과하며, 함흥∼신상 간의 3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통과한다. 삼평면·주지면·함흥시·흥남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특히 1930년 성천강에 만세교가 새로 건설되어 함흥과의 거리가 단축되었다. 이 다리는 이성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면서 명명한 것으로 목조였으나 소실 또는 유실되어 철근으로 개교하였으며, 매년 정월 보름날 다리 밟기가 행하여진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삼암(三巖)·신중(新中)·풍남(豐南)·용흥(龍興)·신풍(新豐)·흥남(興南)·오(五)·중세(中洒)·원풍(元豐)·칠(七)·삼(三)·복흥(福興)·팔(八)·상구(上九)·하구(下九)·동십일(東十一)·원상(元上)·신흥(新興)·중상(中上) 등 19개 이가 있다.

주지면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43㎢, 인구 1만3095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흥상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동주지면(東朱地面)·서주지면(西朱地面)이 병합하여 주지면(朱地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이천이 면의 서부를 남류하다가 남부의 광포로 유입된다. 하천의 퇴적 작용으로 토사가 퇴적되어 복합삼각주를 이루며, 토양은 비옥하지만 저습 지대로서 범람이 잦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교통은 함경선이 면의 북부를 통과하며 지경역이 설치되어 있다. 이와 병행하여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가 통과하며 주서면·연포면·선덕면·함흥시·정평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그러나 여름철의 집중호우 때에는 도로·교량의 보수 건설 관리가 교통의 적지 않은 제약이 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흥상(興上)·항수(項水)·풍서(豐西)·호동(湖東)·신안(新安)·장흥(長興)·덕성(德成)·신경(新慶)·신중(新中)·송흥(松興)·구만(九萬)·서흥(西興)·신평(新坪)·호남(湖南)·중흥(中興)·포흥(浦興)·신흥(新興)·부전(富田)·풍계(豐溪)·원흥(元興) 등 20개 이가 있다.

천서면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6.97㎢, 인구 9,018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당상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남천서면(南川西面)·북천서면(北川西面)이 병합하여 천서면(川西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북서쪽에 보로산(甫老山, 755m)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구릉 지대를 이루어 밭농사가 행하여지고 있다. 수원천이 면의 동부를 흐르며, 동부 일대에는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다. 교통은 지경∼오로리 간의 등외도로가 면의 동부를 통과하며 상조양면·주지면·천원면 및 함흥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신흥리에 광흥사, 운흥리에 기자묘·중봉고성·보문암(普門庵)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당상(堂上)·흥남(興南)·덕흥(德興)·신남(新南)·신경(新慶)·운흥(雲興)·상운흥(上雲興)·운동(雲洞)·용강(龍江)·용서(龍西)·흥덕(興德)·원충(元忠)·원상(元上)·원흥(元興)·신상(新上)·고양(高陽)·원봉(圓峰)·신덕(新德)·은곡(隱谷)·회목(檜木)·신흥(新興) 등 21개 이가 있다.

천원면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35㎢, 인구 6,069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남천원면(南川原面)·북천원면(北川原面)이 병합하여 천원면(川原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천강이 면의 동부를 남류한다. 1929년 북부 하조양면계에서 여위천이 인공적으로 성천강에 합류되었으며, 1931년에는 홍수에 대비한 수리시설과 제방 공사가 완성되어 그 피해가 감소되었다.

또한, 행정 중심지로서의 함흥시와 장진강·부전강 수력발전에 따른 흥남 공업도시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농경지의 기반 시설이 완성되면서 높은 생산성 향상을 기하게 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교통은 함흥∼상조양 간의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상조양면·천서면·함흥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중(中)·흥상(興上)·상중(上中)·홍상(洪上)·신경(新慶)·원흥(元興)·흥대(興大)·중상(中上)·동상(東上)·신흥(新興)·신서(新西)·강도(江島)·동중(東中)·원성(源成)·유정(柳亭) 등 15개 이가 있다.

퇴조면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3.31㎢, 인구 1만4170명(1940년 현재). 퇴조면(退潮面) 면 소재지는 신풍리이다. 본래 홍원군 서퇴조면(西退潮面)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함흥군에 편입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1937년 서호면(西湖面)의 대후(大厚)·풍양(豐陽) 등 7개 이가 이 면에 편입되었으며, 1944년 7개 이가 다시 흥남부로 편입되었다.

동쪽에 추덕산·초막산, 남쪽에 삼덕봉(三德峰, 385m), 서쪽에 천주봉(天柱峰, 562m), 북쪽에 비룡봉(飛龍峰, 516m) 등이 솟아 있으며, 남부는 해안 지대를 이룬다. 퇴조만내에 소규모의 하천 유역이 발달하였으며, 하천 연안과 남부 해안 지대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다. 연근해에서는 명태·고등어 등의 어획이 많으며, 양항인 퇴조만이 발달하였다. 특히 간유와 명란은 질이 우수하여 국내뿐 아니라 국외로 수출되고 있다.

교통은 함경선이 면의 남부를 통과하며, 여호역·퇴조역이 설치되어 있다. 서호진∼홍원 간의 3등도로가 통과하며, 동천면·함흥시·흥남시·홍원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해상 교통은 흥남시의 서호진항에 의존하고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퇴조고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신풍(新豐)·흥상(興上)·서상(西上)·경흥(慶興)·신흥(新興)·장흥(長興)·성동(城洞)·백동(栢洞)·상흥(上興)·상곡(上谷)·사동(寺洞)·흥경(興慶)·적동(笛洞)·풍서(豐西)·현산(峴山)·용흥(龍興)·송흥(松興)·송대(松垈)·여호(呂湖)·원상(元上)·길흥(吉興)·상송(上松)·서중(西中)·신중(新中)·신상(新上) 등 25개 이가 있다.

하기천면

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339.05㎢, 인구 1만55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통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1910년 서기천면(西岐川面)을 병합하여 하기천면(下岐川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서쪽에 마대산·황봉, 남쪽에 천의산, 북쪽에 황초령 등의 험한 산이 솟아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가 중첩되어 있다. 흑림강이 여러 지류를 합류하면서 면의 중앙을 남류하다가 성천강으로 유입되며, 내부는 광활한 하천 분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콩·조·감자·옥수수 등이며, 농가 부업으로 소의 사육도 이루어진다. 산지에는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목재·신탄 등이 생산된다.

또한 장진강의 유역 변경식 1·2·3·4호 발전소가 인근에 설치되어 있으며, 황초령을 관통하여 동해 사면으로 역류시켜 그 낙차를 이용한 약 30만㎾의 전력이 생산되어, 인근 공업 지대와 도시로 공급된다.

교통은 함남선이 상기천면오로역에서 분기하여 상통리에 이르며, 상통∼장진군 사수 간의 장진선에 연결되어 면의 중앙을 통과한다. 이와 병행하여 함흥∼자성 간의 2등도로가 통과하며, 상기천면·주북면·장진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진흥리에 진흥왕황초령순수비·중령보, 중흥리에 함성대군사우 등이 있다. 특히 황초령순수비는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기념비로서, 본래 황초령에 있던 것을 함흥시 함흥역사박물관으로 옮겼다. 중령보는 조선 시대에 별장(別將)이 지방 경비의 임무를 맡고 군대를 수용하던 곳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상통(上通)·송당(松堂)·서상(西上)·동정(東井)·하통(下通)·중흥(中興)·은봉(隱峰)·중평(中坪)·신풍(新豐)·진흥(眞興)·하대(河大)·동흥(東興) 등 12개 이가 있다.

하조양면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1.33㎢, 인구 5,435명(194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인흥리이다. 본래 함흥군 지역으로서 서하조양면(西下朝陽面)을 병합하여 하조양면(下朝陽面)이 되었으며, 1931년 함흥부제 실시에 따라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서쪽에 백운산, 남쪽에 조악봉, 북쪽에 황봉·천의산 등의 험한 산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구릉 지대를 이루며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흑림강이 면의 동부를 남류하다가 성천강으로 유입되며, 동부 일대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감자 등이다. 광업으로는 추동리에서 방연광이 채굴된다.

교통은 지경∼오로리 간의 등외도로가 면의 동부를 통과하며 상기천면·상조양면·주북면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물·유적으로는 흥덕리에 용흥사, 백운산성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인흥(仁興)·흥덕(興德)·봉명(鳳鳴)·봉하(鳳下)·풍흥(豐興)·봉흥(鳳興)·추동(楸洞)·용안(龍安)·쌍봉(雙鳳)·기회(岐會)·삼흥(三興)·안서(安西) 등 12개 이가 있다.

광복 후의 변천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때 주서면·처서면·상조양면·삼평면·연포면·천원면과 주지면 일부의 면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이 단위로 분할, 통폐합하여 군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한편, 주지면 일부는 정평군에, 하조양면·상기천면·하기천면·주복면·기곡면은 오로군(지금의 영광군)에, 동천면·덕산면·퇴조면은 퇴조군(지금의 낙원군)으로 각각 이관하였다.

1954년 10월 21개 이로 분리하여 신설되는 흥산군으로 이관하고, 다른 일부는 함흥시로 이관하였다. 1974년 1월 함주읍·구흥리·유정리를 함흥시로 이관하고, 흥산군이 폐지되면서 함주군으로 다시 편입, 귀속되었으며, 이때 흥산읍을 함주읍으로 하였다. 군의 동쪽은 함흥시, 서쪽은 평안남도 대흥군, 남쪽은 정평군, 북쪽은 영광군과 접하여 있고, 남동쪽의 일부는 동해에 면하여 있다. 동경 127°03′∼127°34′, 북위 39°46′∼40°06′에 위치하며, 면적 약 670㎢, 인구 21만7천여 명이다.

행정구역은 함주읍을 비롯하여 운동(雲洞)·수흥(首興)·항수(項水)·신덕(新德)·송정(松亭)·부흥(富興)·수동(水東)·연지(蓮池)·연포(連浦)·포구(浦久)·포항(浦項)·신경(新慶)·재안(在安)·운봉(雲峰)·동봉(東峰)·노동(蘆洞)·추상(楸上)·흥봉(興峰)·풍송(豊松)·상창(上倉)·동원(東元)·신상(新上)·신하(新下)·구상(九上)·풍성(豊成)·원동(源東)·주서(州西)·동암(東巖)·상중(上中)·지석(支石)·흥서(洪西)·용안(龍安)·고양(高陽)·조양(朝陽)·흥보(興保)·천원(川原)·신성(新成) 등 37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함주읍이다.

지형은 북서부에서 남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고 있다. 낭림산맥이 뻗어 내린 북서부와 서부에는 백산(1,834m)·노란봉(1,734m)·제일봉(1,742m)·향로봉(1,594m)·검산령(1,130m) 등이 솟아 있고, 군의 중부를 남북으로 뻗은 백운산맥에는 천의산(1,284m)·백운산(1,077m)·만년산(850m) 등이 솟아 있다.

북동쪽에는 성천강이 함흥시와의 경계를 동해 방향으로 흐르면서 넓은 함주평야를 이루었다. 남부에는 석호로서는 동해안에서 제일 큰 광포가 있으며, 여기에 주의천·원수천 등의 소하천이 유입한다. 동남부의 해안선은 짧고 단조로우나 해안에는 모래부리와 모래언덕이 발달되어 있다. 주요 기반암은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며, 토양의 대부분은 갈색산림토·충적토 및 노토양으로 되어 있다.

기후는 연평균 기온 9.5℃, 1월 평균 기온 -15℃, 8월 평균 기온은 23℃ 이며, 첫서리는 10월 중순경, 마감서리는 4월 하순경에 내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960㎜이다. 산림은 군 넓이의 약 66%로서 주로 소나무림이며, 참나무·잣나무·전나무·이깔나무·부지나무·가문비나무·피나무·사스래나무 등이 혼성림을 이루고 있다. 그 밖에 감나무·호두나무·밤나무 등의 유실수와 머루·다래·돌배 등의 산과일나무가 생장하고 있다. 산에는 사향노루·산양·꿩 등이 서식한다.

이 군은 동해안의 중요 농업 지대의 하나로서 교외 농업이 발달하였다. 비옥한 함주평야가 있고, 성천강을 기본 수원으로 하는 함주지구 관개 체계가 완비되어 함주군 외에 함흥시·정평군·영광군까지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농경지는 군 넓이의 약 25.3%이며, 그중 논이 72%, 밭 17%, 과수밭 7.5%, 나머지는 뽕밭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위주로 옥수수·콩·깨·채소 등이며, 함주채소농장과 함흥농사시험장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채소류는 함흥시 등의 대도시에 공급되고 있다. 과일은 사과·배·복숭아 등이며, 특히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축산업도 발달하여 국영닭공장·국영젖소목장 등 대단위 목장에서 소·양·돼지·닭·토끼 등을 사육하고 있으며, 담배와 멧닭은 이 지방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수산업에 있어서는 근해에서 명태·임연수어·가자미 등이 잡히고 있다.

군내에는 금·석탄이 매장되어 있으며, 함주탄광에서 유연탄을 채굴하고 있다. 공업은 함주요업공장과 트랙터 수리 공장을 비롯하여 건재·일용품·식료품·화학·지물·가구·농기구·담배 등을 제조하는 소규모 지방 공장들이 건설되어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청기와·토관·벽돌 등은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망으로는 평라선(평양∼나진) 철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철길을 따라(원산∼나진) 도로가 있다.

유적으로는 광포의 북쪽 연안에 천리장성터가 있으며 고려 시대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이 쌓았다는 9성의 하나인 함주성터가 있다. 지석리에 함주고인돌이 있고, 운동리에는 이제마(李濟馬)의 묘가 있다.

명승지로는 광포(북한 천연기념물 제268호)가 있으며, 관광지 낚시터로 유명하다. 백운산에는 고구려와 고려 시대에 축조한 산성터가 남아 있으며, 산주폭포·만장폭포·용흥사 등이 있어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함주고등중학교와 각급학교가 있으며, 유치원·영화관·도서관·문화회관이 있다. →낙원군, 영광군, 함흥시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世宗實錄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輿地圖書」
「朝鮮民間傳說集」(崔常壽, 乙酉文化社, 1947)
「咸山誌」(咸山誌編纂委員會, 1974)
「地方行政區域發展史」(內務部, 1979)
「北韓文化財 實態와 現況」(文化財管理局, 1985)
「咸鏡南道誌」(咸鏡南道誌編纂委員會, 1988)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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