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남쪽은 무안군, 북쪽은 영광군 · 장성군, 서쪽은 황해에 면해 있다. 동경 126°22′∼126°40′, 북위 34°58′∼35°14′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392.26㎢이고, 인구는 3만 487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8개 면, 272개 행정리(104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에 있다.
노령산맥의 여맥이 수지상(樹枝狀)으로 뻗어내려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그 사이를 영산강 지류들이 흘러 비교적 평탄한 지세를 이루고 있다. 북부에는 불갑산(佛甲山, 516m) · 모악산(母嶽山, 348m) · 군유산(君遊山, 403m) 등 노령산맥의 봉우리가 영광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중앙부에는 발봉산(鉢峰山, 179m) · 천주봉(天柱峰, 376m) · 고산봉(高山峰, 359m) · 기산봉(箕山峰, 148m) 등 잔구들이 발달해 있다. 기산봉은 함평읍의 진산으로 산정에는 기산산성이 있으며, 산 아래로 함평천이 흐르고 고산봉이 보인다. 남서부에는 감악산(紺嶽山, 258m)이 무안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은 나산천(羅山川)과 고막천(古幕川)이 동부를 남류하여 영산강에 합류하며, 함평천(咸平川)이 중앙을 남류하여 영산강에 합류한다. 영산강은 영암군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류하며, 엄다면과 학교면을 흐르는 중류는 사호(沙湖)라고도 한다. 토양은 대부분 이토층 및 점질토이며, 해안의 일부 토양은 염기성을 띠고 있다.
기후는 해안에 위치하여 온난한 편으로 연평균 기온 14.0℃, 1월 평균기온 1.0℃, 8월 평균기온 26.1℃이다. 연강수량은 1,422㎜(2013년 기준)로 강수 변동이 심한 편이다. 서리는 10월 하순부터 이듬해 4월 하순까지 내린다. 식생은 주로 상록활엽수가 분포한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치는 유물은 나산면 · 월야면 · 학교면 일대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그리고 월야면을 중심으로 전 군에 걸쳐 230여 기에 이르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삼한시대에는 이 지역에 정치조직체가 존재했으리라는 것은 고인돌이나 학교면 · 나산면 · 월야면에 분포되어 있는 옹관묘 · 석실분으로부터 확인되나, 그 소국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굴내현(屈乃縣)과 다지현(多只縣)이 설치되었다. 삼국통일 후 경덕왕 때에 굴내현은 함풍현(咸豊縣)으로, 다지현은 다기현(多岐縣)으로 각각 개칭되어 모두 무안군에 속하였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대동면에 철성산성(鐵城山城)터가 남아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에 주둔하면서 파군교(破軍橋)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중요한 싸움터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초에 함풍현이 영광군의 속현으로 편입되었고, 다기현은 모평현(牟平縣)으로 개칭되어 역시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는 함풍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273년(원종 14)에 고승 고막대사가 도술로써 세웠다는 돌다리가 학교면 고막리에 있다.
1409년(태종 9) 함풍현과 모평현이 합쳐져 함평현(咸平縣)으로 개칭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당시 함평현의 호수는 315호, 인구는 남자가 1,608인이다. 대굴포(지금의 학교면 곡창리)에 전라우수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우수영이 1440년(세종 22)에 해남으로 옮겨갈 때까지 함평은 전라도 수군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정유재란 때에 향교가 소각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때 의병장으로 정운길(鄭雲吉) · 정충량(鄭忠良) · 이극성(李克誠) · 김수연(金壽淵) 등 많은 사람들이 활약하였다.
또한, 정호인(鄭好仁) · 정경득(鄭慶得) · 정희득(鄭希得)은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와서 당시의 사정을 기록한 『정유피란기(丁酉避亂記)』 · 『만사록(萬死錄)』 · 『해상록(海上錄)』 등을 각각 남겨 정유재란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함평현에서 나주부 함평군으로 되었다가, 다음해에 다시 전라남도 함평군으로 고쳐졌다. 당시 호수는 7,048호, 인구는 2만 3391인이었고, 14개 면을 관할하였다. 1906년 5개 면이 더 편입되어 19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가 해제면과 다경면이 무안군에 이속되었고 동현내면과 서현내면이 합쳐져 기성면으로 개명되어 16개 면 482개 리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0개 면으로 통합되어 대개 현재와 같은 윤곽이 갖추어졌고, 1932년에 다시 식지면(食知面)과 평릉면(平陵面)이 합쳐져 나산면으로 개명되어 모두 9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근대 인물로는 한말에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태원(金泰元) · 김률(金聿) 형제와 심수택(沈守澤) 등이 유명하다. 특히 심수택의 의병활동은 그의 저술인 『진지록 盡知錄』에 잘 전해지고 있다.
1963년 7월 1일에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 학교면의 상옥리 · 금곡리 · 뱃호리 · 월송리가 대동면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87년 1월 1일에 학교면 사가리 일부와 함평읍 성남리 일부가 엄다면에 편입되어 1읍 8면의 행정체계를 갖추었다.
선사시대 유물 · 유적으로 함평읍 자풍리, 나산면 구산리, 월야면 용월리 · 월악리 등 군내 각지에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인돌 수백 기가 산재해 있다. 또 석촉 · 석검 · 반월형석도 등 석기류가 출토되고 있다.
고분으로는 월야면의 예덕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1981년 지정)을 비롯하여 예덕리신덕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1992년 지정), 학교면 월호리, 나산면 초포리 등의 옹관묘와 학교면의 마산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1988년 지정)이 있다. 대동면에 금산리방대형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1994년 지정), 손불면에는 함평죽암리고분(전라남도 기념물, 1994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 토기와 옥류 등의 유물도 발견되고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해보면 광암리 용천사의 석등과 군민회관 앞의 석불입상, 고산사(高山寺) 마애불, 사기봉(沙器峰) 마애불, 함평리 부도, 함평읍 함평리의 보광사 범종 · 해보리석불입상과 군유산의 서상사(瑞祥寺), 대굴산의 대굴사(大堀寺), 감방산의 극락사 등이 있다. 용천사의 석등은 198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보광사 범종은 199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해보리석불입상은 199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대동면 향교리에 함평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엄다면 엄다리에 자산서원이 있다. 사우로는 나산면 이문리에 증산사(甑山祠), 1790년에 건립되어 함평이씨 시조인 이언(李彦)을 제향한 사산사(射山祠), 고려 후기 사람인 정가신(鄭可臣)을 제향한 오산사(鰲山祠) 등이 있다.
정려로는 월야면 월악리에 정유재란 때 전사한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 부녀자들을 제향한 팔열부정각(전라남도 기념물, 1975년 지정)과 정가신의 삼강문, 신천강씨 열녀각 등이 있다.
이 밖에 김유신(金庾信)이 머무르다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한 신라흥무대왕서군교유허비가 있다. 함평읍 기각리의 함평공원내에 함평척화비 · 영파정, 월야면 외치리에 백화정(百花亭, 挹香齋라고도 함) 등이 있다. 함평척화비는 1990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고, 영파정은 1988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나산면 초포리에 함평 이규행가옥(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이 있다. 도요지로는 손불면 양재리의 고려청자요지와 손불면 북성리, 나산면 송암리 · 이문리 · 초포리의 분청사기요지가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엄다면 엄다리의 남도노동요(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977년 지정)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향교리에 느티나무 · 팽나무 · 개서어나무 숲(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함평읍 기각리에 붉가시나무 자생북한지(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가 있다. 이 외에 손불면 양재리의 이팝나무(전라남도 기념물, 1988년 지정)가 있다.
학교면 고막리에 함평 고막천 석교(보물, 2003년 지정)가 있고, 엄다면 엄다리에 곤재우득록목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이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함평향교가 있었다. 대동면 향교리에 있는 함평향교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대화리에 재건되었고 1632년(인조 10)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된 것이다. 이 밖에 1726년(영조 3)에 설립된 해보면의 자양서원(紫陽書院), 나산면의 송암서원, 엄다면에 1624년(광해군 8)에 설립된 엄다면의 자산서원이 있었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함평읍에 함평초등학교가 개교된 이래 1920년대에 군내 각지에 초등학교가 개교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1929년에 함평읍에 함평중학교가 세워졌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1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6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군립도서관이 있어 군민들의 교육 · 문화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고풍의 한시 · 시조 등을 읊으며 우정을 돈독히 하는 모임인 송석음사(松石吟社) · 인화음사(忍和吟社) 등이 있다. 대표적인 문화행사로는 함평문화원 주관의 함평문화제가 매년 10월경에 개최되고 있다.
많은 민속놀이가 있으나 다른 지방과 비교하여 두드러진 특색은 없다. 또 대부분 지금 전승되지 않고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달집짓기놀이 · 두레놀이 · 꿩치기놀이 · 다리밟기놀이 등이 성행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특색이 될 만한 민속놀이로는 정월 보름에 행해지는 불싸움과 석전(石戰)이 있다.
불싸움으로 전형적인 것은 벽초동 담골에서 행해졌던 것이다. 석양에 아이들이 들판 곳곳에 쥐불을 놓으면 상대방 마을의 아이들이 달려와 불을 끄면서 시비가 일어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진하여 휘파람 · 욕설 · 돌팔매질 · 육박전으로 싸움을 벌인다. 이 어린이들의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발전한다.
나중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어른들은 제법 작전까지 세워 싸운다. 육박전으로 부상자가 생기기도 하며 우세한 쪽의 마을 청년들은 상대편 마을의 닭을 잡아가기도 한다. 이 불싸움은 다음날 첫닭이 울면 끝난다.
함평읍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제로 영수제(潁水祭)가 있다. 해마다 익사자가 발생하는 영수천 가운데의 버드나무 옆의 바위에 제단을 마련하고 익사자들의 혼백을 위로하며 수신에게 다른 사고가 없도록 간구하는 제사이다. 제는 길일을 택하여 석양 무렵에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에 끝나며, 제물은 배에 실어 영수천을 한 바퀴 돌면서 물에 뿌린다.
제물을 배에 실을 때 작은 뗏목에 각자의 행운을 비는 촛불을 켜 물 위에 띄우고 이어 농악을 펼친다. 제의 비용은 성금에 의해 마련하고 농악은 읍내 마을에서 자진 참여한다. 처음에는 절에서 이 제를 관장했으나 뒤에는 무당들이 관장하게 되었다. 그밖의 동제가 마을단위로 행해졌으나 그 절차나 방식 · 시기 등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가 없다.
나산면 초포리에는 「용천사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산에 용소(龍沼)가 있어 입산하는 사람이 늘 해를 입어 산신령에게 제를 지냈지만 피해가 그치지 않았다. 어떤 중이 용소를 숯으로 다 메우고 그 곳에 절을 하나 세우면 된다고 해서 용소를 메운 뒤 목침을 벽돌삼아 절을 세웠다. 그 뒤 재난이 없어졌는데 이때 세운 절이 용천사이다. 또 용천사 앞 샘에다 명주실 꾸러미를 넣으면 칠산 앞바다로 나온다고도 한다.
신광면 계천리 장산들에는 아무 글씨도 쓰여 있지 않은 백비(白碑)가 있는데, 그에 얽힌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부부가 있었는데 늙은 어머니가 병이 들고 노망을 하여 하나밖에 없는 어린 손자를 개로 잘못 보고 잡아달라고 계속 졸랐다.
부부는 의논 끝에 늙은 어머니의 소원대로 어린 아들을 솥에 넣고 불을 지폈는데 나중에 솥뚜껑을 열고 보니 어린애는 없고 큰 동자삼(童子蔘)이 한 뿌리 있었다. 그 때 마침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사립문 밖에서 어머니 · 아버지를 부르면서 들어왔다. 효심에 감동한 하늘의 조화였던 것이다. 그 고을 원이 효행은 갸륵하나 인명을 소홀히 한 죄도 묵과할 수 없다 하여 세운 것이 백비이다.
이 밖에도 시주승을 박대하다 계략에 말려 바위를 깨뜨렸더니 그 뒤로 인재가 나지 않았다는 「나산리전설」, 도승에게서 방책을 배워 항아리 셋을 묻어 마을의 화귀(火鬼)를 물리쳤다는 손불면의 「불맥이굿전설」이 있다.
또한 마을사람들이 푸대접하여 우는 미륵할머니를 현몽대로 제당을 지어 안치했더니 마을에 재앙이 없어졌다고 하는 대동면 덕산리 아차동의 「미륵할머니전설」, 이름이 같은 두 사람 중 마음씨 고운 사람이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여 화를 면하고, 사자의 지시대로 수호신격인 소나무를 잘 보호했다는 엄다면의 「포향정 소나무전설」 등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지방은 들이 넓고 땅이 기름져서 벼농사가 근본이 되어왔기 때문에 농요가 많이 전승되어왔다. 이 고장 농요는 종류도 많고 가락도 뛰어난데, 특히 엄다면 엄다리에서 함평노동요가 전승되고 있다. 이 고장에서는 농요를 들노래라 하며, 농요 고장답게 「모찌기소리」 · 「모심기소리」 · 「김매기소리」 · 「등짐소리」 · 「개장치는 소리」 · 「홀태기소리」 · 「진상소리」 등 종류도 많고 가락도 뛰어나다.
들노래 외에도 「말박는 소리」와 같은 역군(役軍)의 민요도 전승된다. 「상엿소리」 · 「달구지소리」와 같은 상두꾼소리, 「강강술래」 · 「거무노래」 · 「시집살이노래」 · 「방아타령」 · 「둥당이타령」 · 「베틀가」 · 「물레타령」 · 「자장가」와 같은 부녀요도 여러 가지가 전승된다.
들노래로는 「모찌기소리」 · 「모심기소리」 · 「김매기소리」가 주가 된다. 「모찌기소리」는 중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고 선소리꾼이 한 장단을 메기면 농군들이 “에-헤라 먼들” 하고 한 장단을 받는 장절형식으로 되어 있다.
“에-헤라 먼들/ 에-헤라 먼들/ 먼들소리는 어디를 갔나/ 에-헤라 먼들/ 철철마다 돌아를 오네/ 에-헤라 먼들.” 이 소리는 뒷소리가 “에-헤라 먼들”이라는 말로 되어 있기 때문에 「먼들소리」라고 이르기도 한다. 향토의 인정, 인간사 등을 노래말로 얹어 부르는 가창민요로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고, 씩씩하면서도 구성진 느낌을 준다.
「모심기소리」는 「상사소리」라 이르는데, 먼저 느린 한배로 중모리장단으로 된 긴상사소리를 부르고 뒤에 중중모리장단에 조금 빨라진 한배로 자진상사소리를 부른다. 「김매기소리」는 김매기 절차에 따라 무삼삼장 · 외주삼장(마소리) · 들들개소리(풍장소리) · 에농데농(장원질소리) 등 여러 단계가 있다.
「무삼삼장」은 김매기에서 맨 처음 초벌에 부르는 소리로, 소리 규모도 크고 가락도 장엄하여 우수한 민요로 꼽히고 있다. 선소리꾼이 낭송하듯 장쾌하게 앞소리를 메기면 중간에 농군들이 “그렇지요” 하고 받고, 뒤에는 농군들이 “아리시구나 아하 에히 마뒤요” 하고 받는다. 자유리듬에 지소목과 같이 유장하고 꿋꿋한 가락으로 느릿느릿 한 대목씩 부르는 것을 들으면 농군들의 장부다운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세 벌 김맬 때를 만두레라 하는데, 이 때 부르는 노래는 「풍장소리」또는 「들들개소리」로 중모리장단에 경토리와 같이 경쾌한 선율로 되어 있다. 선소리꾼이 한 장단 앞소리를 메기면 농군들이 한 장단에 뒷소리를 “오호 오호아 들들개오”라고 받는다. 김매기가 끝나고 장원질이라 하여 상머슴을 태우고 풍장치고 들어오는데 이 때 「장원질소리」를 합창한다.
중중모리 한 장단을 선소리꾼이 구성진 육자배기목으로 메기면 농군들이 한 장단을 “에농데농 지와자 좋네” 하고 뒷소리로 받는다. 풍년을 노래하는 말로 되어 있는 이 민요는 뒷소리를 “에농데농 지와자 좋네” 한다 하여 「에농데농」이라 이르기도 한다. 이 밖에 「상엿소리」도 성하여 대소리 · 하직소리 · 월강소리 · 월강후소리 · 운구소리 · 다구시소리 등 운구절차에 따라 여러 가지 소리가 불리고 있다.
전형적인 농업지역으로서 2013년 기준으로 총경지면적 1만 3894㏊ 중 논이 9,030㏊, 밭이 4,864㏊이다. 월야평야(月也平野) · 학교평야(鶴橋平野) · 엄다평야(嚴多平野) 등 평지가 발달해 있다.
평야는 비옥하고 관개가 용이하여 농경지로 이용되나 때때로 홍수의 피해를 보기도 한다. 저수지는 함평평야의 젖줄인 대동저수지를 비롯하여 월천제 · 목교저수지 · 나산제 · 동정제 등 150여 개가 있어 군내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예로부터 벼농사가 성하였으며, 특히 손불면에서 생산되는 쌀은 경기도의 이천쌀에 버금갈 만큼 질이 좋아 왕실에 진상했다고 한다. 쌀 이외에 보리 · 감자 · 고구마와 양파 · 고추 · 당근 등의 채소류 및 잎담배 · 왕골 등의 재배도 활발하며, 복숭아 · 감 등 과일 생산도 많다.
특히 양파는 1930년에 무안군으로부터 도입한 이래 주생산지가 되어 월야면 · 해보면을 제외한 군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농가부업으로 가축 사육이 성하며, 소 · 닭 · 오리가 많이 사육된다. 토산물로는 멀미약의 주원료인 천연산 박하와 한약재 및 식용으로 쓰이는 연근이 유명하다. 특산물로는 나산면 · 월야면 · 해보면에서는 약 300년 전통의 왕골돗자리가 생산되어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수산업은 전체가구의 0.8%만이 종사하며, 대부분 겸업농가로 미미하다. 해안선이 단조로워 개펄을 이용하는 양식업이나 염전업이 활발하지 못하다. 수산물 생산이 함평만에만 국한되어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강달어 · 엽삭 · 준치 · 낙지 · 고막 · 굴 등이 잡힌다.
엽삭은 함평만에서만 잡히는 물고기인데 전어와 비슷하여 전어의 새끼라고 하지만 전어와는 다르고, 엽삭보다 작은 진피리와도 다르다. 길이는 어린 것이 5㎝, 큰 것이 15㎝, 너비는 3∼5㎝정도이다. 어로는 9∼10월이 성어기며 대부분 젓으로 담가 김장철에 판매되며, 함평장을 비롯하여 신광장 · 무안장에 많이 나온다. 멸치젓보다 맛이 있고 값도 싸서 김장용 또는 일반 반찬으로도 좋다.
지하자원은 고령토 매장량이 많아 조선시대 이래로 도자기 제조가 성하였으며, 곳곳에 도요지가 남아 있다. 근래는 대부분 폐쇄되고 손불면에서 백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옹기류가 생산되고 있다. 학교면 월산리에 현대식 요업공장이 있다. 제조업은 1984년 학교면 죽정리에 대규모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고령토기공업 · 요업 · 감자제분업 · 공구제작 등이 행해지고 있다.
상업 활동의 경우 상설시장은 없으며, 대동면을 제외한 각 읍 · 면에서 5일 정기시장이 선다. 2·7일에 열리는 함평장은 1920년까지만 해도 전라남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장으로 인근 지방의 특산물이 모였으나 지금은 평범한 시골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큰 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시장으로 유명하며 소의 거래가 많다.
3·8일에 열리는 문장리의 해보장은 돗자리장으로 널리 알려져 인근 도시뿐만 아니라 서울 · 부산의 상인들도 모여든다. 사거리장으로 불리는 학교장은 5·10일에 개장한다. 그 밖에도 1·6일에 열리는 손불장, 3·8일에 열리는 엄다장, 4·9일에 열리는 나산장, 5·10일에 열리는 신광장 · 월야장 등이 있으나 근대화에 밀려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
교통은 호남선이 군의 남부를 지나며 함평역이 있다. 광주∼목포 간의 고속화도로가 역시 남부를 지나고 있다. 나주∼영광 간의 국도와 장성∼지도 간의 국도가 군의 중앙을 지나며 함평읍에서 교차한다. 영광∼광주 간의 국도가 북동부를 지나고 서해안고속국도가 통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을 시작한 무안광주고속도로가 군내를 지나고 있어 도로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군의 남서부는 평야지대이며 북동부는 야산지대를 이룬다. 함평읍 서쪽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있고, 읍내에 함평공원이 있다. 돌머리해수욕장은 송림이 울창하고 긴 백사장이 전개되어 있으나 간만의 차가 심해서 썰물 때에는 해수욕장의 기능이 정지되는 단점이 있다.
손불면 석장리에는 약 90년된 해수찜질이 유명하며, 신경통 · 산후통 · 관절염 ·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인근은 물론 서울 · 부산 등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해수찜질은 불로 돌을 달구어 그 돌을 탕에 쏟아 넣고 그 위에 멍석을 깔고 바닷물을 넣은 뒤 사람이 그 멍석 위에 누워 증기를 쐬는 것이다.
또한 썰물 때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3,000여 평의 인공풀장을 조성해 놓았다. 숲속에 방갈로와 민박시설이 있으며, 숲이 우거져 캠프장소로 적당하다. 황해에서 잡아온 농어 · 민어 · 우럭 · 세발낙지 등의 생선횟집도 많다. 그러나 도로포장 및 각종 편의시설이 아직 미비한 상태이다.
함평공원(咸平公園)은 함평읍 기각리에 있으며 기산봉 아래에 있어서 낮고 아담한 동산으로 주변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읍내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바로 아래에 맑은 함평천이 흐르고 넓게 트인 함평평야가 전개되며 강 건너 고산봉과 철성산(鐵城山)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 전역에 향나무 · 단풍나무 · 회양목 · 소나무 · 철쭉 등이 곱게 조경되어 있어 정취를 더해준다. 공원 동남단에 세심정(洗心亭)이 있으며, 뒤쪽에는 관덕정(觀德亭)이 있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 왼편으로 목민관 · 의병 · 반공투사비 등 22기의 비석이 있으며, 높이 12m의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함평나비축제에는 34만 평의 유채꽃과 자운영 위를 노니는 나비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40.23㎢, 인구 9,151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무령리이다. 본래 함평현 지역으로 함평읍내가 되므로 현내면(縣內面, 또는 箕城面)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풍면(永豊面) · 손불면 · 신로면(新老面) 일부가 병합되어 함평면이 되었다. 1963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부에 기산봉, 남서부에 감악산 · 보평산(寶平山)이 있을 뿐 대부분 구릉지이다. 함평천이 동쪽 경계를 흐르며 유역에 좁고 긴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북서부는 함평만에 면하고 있다. 해안선은 단조롭고 곶을 이루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과 보리 · 양파 · 고구마 · 잎담배 · 복숭아 · 인삼 등이 많이 생산되며 석성리에서는 젖소사육이 성하다. 함평장은 5일장으로, 특히 우시장으로 유명하다. 해안에서는 패류양식이 행해지며, 굴 · 보리새우 · 세발낙지 · 숭어 · 농어 등이 잡힌다.
교통은 영광∼나주 간의 국도와 장성∼지도 간의 국도가 교차하고 있으며, 인근 면들과는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함평 나들목을 통해 서해안고속국도와 직접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함평리에 보광사와 범종 · 기산산성 · 관덕정, 자풍리에 고인돌, 기각리에 척화비 · 영파정이 있으며, 천연기념물인 붉가시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3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기각(箕閣) · 함평(咸平) · 내교(內橋) · 수호(水湖) · 성남(城南) · 자풍(自豊) · 만흥(萬興) · 장교(長交) · 옥산(玉山) · 가동(佳洞) · 석성(石城) · 장년(長年) · 진량(津良) · 대덕(大德)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56㎢, 인구 3,12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축리이다. 본래 식지면(食知面)과 평릉면(平陵面)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32년에 두 면이 합해져 나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동쪽과 서쪽에 노령산맥의 여맥이 뻗어 있어 천주봉 · 승두봉(僧頭峰) · 구절봉(九節峰) · 옥녀봉(玉女峰) 등 수많은 봉우리가 솟아 있다. 나주시와의 경계에 국사봉(國士峰, 282m)이 있다. 나산천 · 구산천(九山川) · 해보천(海保川)이 면의 중앙을 흐르며, 이들 하천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 쌀과 보리가 생산되며, 양파 · 당근 · 딸기 · 완초 등도 많이 생산된다. 산지에서는 목재 생산이 많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용두리의 돗자리는 특산물로 유명하다. 그 밖에 방울토마토 · 동충하초 · 메주딸기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함평∼장성 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이문리와 송암리에 조선시대의 자기 가마터가 있으며, 삼축리 상축마을 뒷산에 평릉(平陵)이라는 고분군이 있다. 초포리에 옹관묘 · 이규행가옥 · 사산사, 이문리에 사기요지와 증산사가 있다. 매년 가을에는 장승 · 솟대 · 허수아비 축제가 열린다. 초포리에는 함평이씨, 이문리에는 상산김씨(商山金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삼축(三杻) · 나산(羅山) · 수하(水下) · 신평(新平) · 송암(松巖) · 이문(二門) · 수상(水上) · 용두(龍頭) · 우치(牛峙) · 초포(草浦) · 월봉(月奉) · 원선(元仙) · 구산(九山) · 덕림(德林)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56.53㎢, 인구 3,11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향교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성면과 평릉면 가식 · 복산리 일부, 신광면 장산리 일부, 해보면 회화리 일부가 병합되었고, 1919년에 함평군 대동면이 되었다. 1973년에 학교면의 상옥 · 금곡 · 백호 · 월송리가 병합되었다.
고산봉 · 철성산 · 대봉산(大峰山) 등 곳곳에 산이 많고, 대동천(大洞川)이 산지 사이를 관류하며 군의 서부를 흐른다. 유역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신광면과의 경계에 군내 최대인 대동저수지가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양파 · 마늘 · 딸기가 생산되며, 약용식물 재배도 행해진다. 또한, 소 · 젖소 · 오리 사육이 많아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제조업은 상옥리에 전분공장이 있다. 특산물로는 딸기 · 메론 · 거베라 · 토하젓 · 전통한과가 있다.
교통은 함평∼장성 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향교리에 함평향교와 문묘가 있다. 금산리에 고분, 월송리와 상옥리에 철성산성, 용성리에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의 돌성 형적이 남아 있다.
또한, 향교리에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 · 팽나무 · 개서어나무 숲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세계적인 희귀종인 황금박쥐와 오색딱따구리가 서식하고 있다. 덕산리에 광산김씨, 상옥리에 파평윤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향교(鄕校) · 상옥(上玉) · 월송(月松) · 백호(白湖) · 금곡(金谷) · 강운(江雲) · 덕산(德山) · 용성(龍城) · 운교(雲橋) · 금산(金山) · 서호(西湖) · 연암(連巖)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23㎢, 인구 3,75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전리이다. 본래 함평현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광면 일부와 영광군 육창면 일부가 병합되었다.
불교와 관계있는 이름의 산이 많고 절이 많다. 풍수설에 손승배조(孫僧拜祖) 또는 손승배불(孫僧拜佛)이라는 명단이 있어 손불면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군유산 · 발봉산 · 노승산(老僧山) · 두류봉(頭流峰) · 월암산(月巖山) 등이 곳곳에 솟아 있으며, 소하천들이 함평만으로 흘러든다. 해안선은 단조로우며 해안에 넓은 간척지평야가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과 양파 · 잎담배의 생산이 많다. 함평한우 · 토속주 · 엽삭젓으로 유명하다. 수산업도 활발하여 군내 해산물이 대부분 이 곳에서 생산된다. 바지락 · 고막 · 김 등이 대표적인 수산물이다. 월천리 백옥포(白玉浦)는 군내에서 가장 붐비는 포구로 엽삭 · 전어 · 낙지의 집산지이다. 토산물로는 연근이 산출된다. 산남리 일대에서 질이 좋은 고령토가 생산되며, 죽암리에서 옹기가 생산된다.
교통은 인근 면들과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죽암리에 고분, 대전리에 월파정, 북성리와 양재리에는 분청사기 가마터가 있으며, 석창리에는 옹기 가마터가 있다. 산남리에 천안전씨, 석창리에 경주최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대전(大田) · 학산(鶴山) · 양재(良才) · 북성(北成) · 월천(月川) · 동암(冬巖) · 죽장(竹長) · 죽암(竹巖) · 궁산(弓山) · 석창(石倉) · 산남(山南)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07㎢, 인구 2,0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암리이다. 본래 함평현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광군 불갑면 일부와 손불면 장전 · 등촌 · 소명 · 농암리 일부가 병합되었다.
북서부에 군유산 · 노승산 등이 솟아 있으며, 동부와 북부도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졌다. 신광천(新光川)과 동암천(冬巖川)이 면내를 흐르며, 유역에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대동면과의 경계에 군내 최대의 대동저수지가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고추와 잡곡이 생산되며, 약용식물이 재배된다. 또한 임야가 넓어 밤 · 대추 · 야생녹차 · 비자 · 동백 등 야생종실과와 버섯이 많이 생산된다. 특화 작물로는 복분자 · 대봉 · 백련 · 무화과 등이 있다.
교통은 영광∼함평 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삼덕리에 함평모씨, 복흥리에 청송심씨, 유천리에 함평노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월암(月巖) · 계천(桂川) · 송사(松士) · 동정(東井) · 함정(咸井) · 원산(元山) · 삼덕(三德) · 백운(白雲) · 복흥(伏興) · 보여(甫余) · 가덕(加德) · 유천(柳川)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3.31㎢, 인구 2,19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엄다리이다. 본래 무안현 지역으로 엄다산면(嚴多山面)과 신로면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함평군 기성면 수산리 일부와 영풍면 일부가 병합되었고 엄다면으로 개칭되어 함평군에 편입되었다.
면내에 높은 산은 없고 서쪽과 남쪽에 낮은 구릉이 발달하였다. 동쪽에 함평천 · 무안천(務安川)이 남류하며, 유역에 학교평야 · 함평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과 맥류를 비롯하여 배추 · 양파 · 오이 · 잎담배 생산이 많다. 특히, 1930년에 재배하기 시작한 양파가 많이 생산된다. 함평천 하류에는 내수면 양식업이 발달하였다.
교통은 광주∼목포 간의 고속화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엄다리에 자산서원이 있다. 엄다리에 파평윤씨, 영흥리에 인동장씨(仁同張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엄다(嚴多) · 송로(松路) · 신계(新溪) · 삼정(三亭) · 영흥(永興) · 학야(鶴野) · 성천(星泉) · 화양(花陽) 등 8개 리가 있다.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44㎢, 인구 3,9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야리이다. 본래 대야면(大也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동면(葛洞面)과 월악면(月岳面), 해보면 죽산리(竹山里) 일부가 병합되었고 월악면과 대야면의 명칭 가운데 한 자씩 합쳐져 월야면이 되었다.
면의 동쪽 장성군과의 경계에 월악산(月岳山, 165m), 남쪽 나산면과의 경계에 어수산(魚首山, 200m)이 솟아 있으며, 월야천(月也川)이 중앙을 흐른다. 하천 유역에는 비옥한 월야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 · 보리가 생산되며, 군내에서 과수원 면적이 가장 넓어 배 · 복숭아 등 과일 생산이 많다. 이 밖에 인삼 · 완초 재배가 성하며, 용월리 · 양정리를 중심으로 돗자리가 생산된다. 목축업이 발달하여 소 · 젖소를 많이 사육하며, 특히 양계업이 성하다. 월야리에는 양송이공장이 있다.
교통은 함평∼장성 간의 국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지나며, 영광∼광주 간의 국도가 남부를 동서로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월야리에 팔열부정각이 있으며, 외치리에 백화정, 예덕리에 고분군이 있다. 또한 월악산 봉우리에는 월악산성의 형적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월야(月也) · 양정(陽亭) · 영월(令月) · 외치(外峙) · 용월(龍月) · 월악(月岳) · 계림(桂林) · 예덕(禮德) · 정산(亭山) · 용암(龍巖) · 용정(龍亭) · 월계(月溪)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42㎢, 인구 4,3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학교리이다. 본래 무안현 지역으로 좌촌면(佐村面)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 진례면(進禮面)과 금동면(金洞面), 함평군 기성면 일부가 병합되어 학교면으로 개칭되었다. 그 뒤 1973년에 상옥 · 금곡 · 월송 · 백호리 등이 대동면에 이속되었다.
면의 중앙부에 옥마산(玉馬山, 120m) · 동금산(東錦山, 170m) · 옥수봉(玉袖峰, 192m) 등 낮은 산이 있다. 동쪽에 고막천, 서쪽에 함평천, 남쪽에 영산강이 흐른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과 양파 · 마늘 · 당근 · 딸기 · 배추 등이 많이 생산된다. 금송리 · 월호리 · 석정리에서는 예로부터 양질의 가마니가 생산되고 있다. 또한, 1984년에는 죽정리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었다. 특산품으로는 진례쌀 · 방울토마토 · 동충하초 · 갈대빗자루 등이 있다.
교통은 호남선이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함평역이 있다. 광주∼목포 간 고속화도로와 영광∼나주 간의 국도가 면내에서 교차하고 있어 교통의 요지를 이루며 함평의 관문이 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고막리에 2003년에 보물로 지정된 고막천석교가 대표적이며 마산리에 고분군이 있다. 복천리와 마산리에는 함평노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학교(鶴橋) · 고막(古幕) · 석정(石亭) · 금송(錦松) · 월호(月湖) · 곡창(谷倉) · 복천(伏泉) · 사가(四街) · 월산(月山) · 죽정(竹亭) · 마산(馬山)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47㎢, 인구 3,23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덕리이다. 본래 함평현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릉면과 월악면 · 대야면 일부가 병합되었다.
북쪽에 불갑산 · 모악산 · 옥녀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에 수양산(首陽山)이 있어 동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불갑산과 모악산에서 발원하는 해보천과 산내천(山內川)이 중앙을 남류하며, 월야천이 동부 경계를 남류한다. 해보천 · 산내천 유역에는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월야천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과 보리 · 완초가 많이 생산되며, 젖소 사육도 성하다. 대창리 · 문장리를 중심으로 돗자리 생산이 많으며, 문장리에서 열리는 해보장은 돗자리장으로 유명하여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든다. 또한 목재생산이 많아 제재공장이 있다.
교통은 장성∼함평 간 국도와 영광∼광주 간의 국도가 교차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광암리에 용천사가 있는데, 경내의 석등 · 해시계 및 다원(茶園)이 유명하다. 8∼9월 무렵에는 부근 산과 계곡이 꽃무릇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문장리에 함평이씨, 상곡리와 대창리에 파평윤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금덕(琴德) · 대창(大倉) · 용산(龍山) · 문장(文場) · 상곡(上谷) · 해보(海保) · 금계(金溪) · 산내(山內) · 광암(光巖) · 대각(大角) 등 10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