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필사본. 책머리에 목록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내용구성은 권1에 지계(地界)·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성씨(姓氏)·풍속(風俗)·형승(形勝)·산천(山川)·토산(土産)·성곽(城郭)·관방(關防)·봉수(烽燧)·궁실(宮室)·누정(樓亭)·학교(學校)·역원(驛院)·창고(倉庫)·불우(佛宇)·사묘(祠廟)·능묘(陵廟)·고적(古跡)·명환(名宦)·관안(官案)·우거(寓居)·인물(人物)·효열(孝烈)·과공(科貢)·음관(蔭官)·사명(社名), 권2에 공서(公署)·호액(戶額)·전안(田案)·창저(倉儲)·공부(貢賦)·병안(兵案)·이안(吏案)·천안(賤案)·교량(橋梁)·제영(題詠)·잡기(雜記)로 되어 있다.
관방조에 중령보(中嶺堡)가 ‘지금 임금 14년에 관찰사 윤지완(尹趾完)의 계청으로 설치’되었음이 밝혀져 있고, 제영조에 남구만(南九萬)을 ‘지금 영중추부사’라 하였는데, 그가 영중추부사가 된 것은 1696년(숙종 22)이므로 1696년 이후, 그 가 사직, 낙향하였던 1701년 사이에 편찬된 읍지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읍지는 현전하는 함흥의 읍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증보를 위하여 각도에 읍지 상송을 명하였던 1699년의 읍지편찬작업과 관련되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읍지는 당시 편찬된 원본이 아니고 후의 필사본으로 보인다.
함경도 감영이 있어 도의 행정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이라 하여 중시되었던 함흥의 읍지답게 내용이 풍부하고 상세하여, 17세기 말의 함흥과 함경도지역 사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