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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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동도호부사, 동지중추부사, 장흥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탁보(卓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양천(陽川)
  • 사망 연도1663년(현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산진첨절제사|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동지중추부사|장흥부사
  • 출생 연도1573년(선조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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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인동도호부사, 동지중추부사, 장흥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탁보(卓甫). 1606년(선조 39) 무과에 급제하고 곧 선전관에 임명되었는데 영창대군(永昌大君)이 강화로 쫓겨갈 때 선전관으로 따라갔다.

이어 절충장군(折衝將軍)·가을파진첨절제사(加乙波鎭僉節制使)를 거쳐 조방장(助防將)으로 승임되어 1년 동안 함흥에 있다가 할머니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

1622년(광해군 14) 첨지중추부사, 이듬해 결성병마도위(結城兵馬都尉)를 지내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위장(衛將)으로 인조를 따라 강화에 호종하였다. 그 뒤 부산진첨절제사가 되고 1634년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내승 겸 선전관으로 왕과 함께 남한산성에 피난하였다가 이듬해 호종의 공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이어 낙안·장흥의 부사를 역임하고, 1641년 어머니상을 당하여 전려(田廬)로 돌아갔다.

독서하다가 고인의 격언을 얻으면 벽 위에 써놓고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1652년(효종 3) 자헌대부(資憲大夫), 1662년(현종 3)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랐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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