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만퇴(晩退)
  • 시호정익(貞翼)
  • 종지(宗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산(豊山,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 사망 연도1725년(영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경상도관찰사|대사간|형조참판|한성부판윤|좌참찬
  • 출생 연도1645년(인조 2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해순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기사계첩 중 홍만조 초상 미디어 정보

기사계첩 중 홍만조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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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종지(宗之), 호는 만퇴(晩退).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 홍탁(洪𩆸)이고, 아버지는 현감 홍주천(洪柱天)이며, 어머니는 증 영의정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 성균관유생이 되고,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을 거쳐 지평·정언을 지냈다. 그 뒤 1688년 부수찬, 이듬해 부응교를 거쳐 1690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음해 돌아와 승지·전라도관찰사·도승지가 되었다.

1693년 강화유수가 되고, 1696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시 전라도·강원도·함경도·경상도 및 경기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대사간·형조참판·한성부판윤·좌참찬·형조판서를 거쳐, 1718년 우참찬을 지낸 뒤 이듬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721년(경종 1) 판의금부사·좌참찬을 역임하고, 이듬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성호문집(星湖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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