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 홍규(洪奎)의 손자로, 삼사사(三司使) 홍융(洪戎)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만호 황원길(黃元吉)의 딸이다. 공민왕 때의 문하시중 홍언박(洪彦博)과는 이복형제이다.
1374년(공민왕 23) 자제위(子弟衛)에 속한 홍관(洪寬)·홍륜(洪倫)·한안(韓安) 등이 공민왕을 시역(弑逆)한 사건이 일어나자, 홍륜의 일족이었기 때문에 연루되어 원주(遠州)로 귀양갔다. 1391년(공양왕 3)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다시 검교참지문하부사(檢校參知門下府事)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