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때 이희안(李希顔)이 여기에 정자를 세우고 수학하던 곳이다. 이희안은 학식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로서 조식(曺植)·신계성(申季誠) 등과 교의가 두터웠으며, 이언적(李彦迪)의 추천으로 고령현감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후진을 가르쳤다.
유림들이 그의 사당으로 청계서원(淸溪書院)을 세웠으나 서원철폐 이후 1922년황강정을 중건하여 이희안의 위패를 이곳으로 봉안하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정자 아래에 관수정(觀水亭)·관풍대(觀風臺)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 순국한 이윤서(李胤緖)를 모신 정충각(旌忠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