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선양(善養).
음서로 출사하였다. 태종 초에 성주목사를 거쳐 1412년(태종 12) 인녕부사윤(仁寧府司尹)을 지내고, 이듬해 형조좌참의가 되어 호패법(戶牌法)의 제정을 건의하였다. 1414년 호조참의·경기도관찰사·개성유후사부유후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어 동전의 사용을 건의하였다. 1416년 가짜 약재 구입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전의감제조로서 여기에 연루되어 귀양갔다가 두 달 만에 풀려났다.
1421년(세종 3) 좌군총제(左軍摠制)가 되어 정조사(正朝使)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환자미(還上米)를 함부로 준 죄로 귀양갔다가, 이듬해 풀려나 나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여러 해 관직에서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1431년 한성부윤을 거쳐 이듬해 중추원부사가 되고, 1436년 동지중추원사, 이듬해 중추원사에 제수되었다. 이무렵 침구(鍼灸)의 전문직을 둘 것을 건의하였다. 1438년 노령으로 은퇴하였다. 의약(醫藥)에 정통하여 항상 전의감의 제조를 맡았다. 시호는 혜의(惠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