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나주도 관내 장흥부의 임내였던 고이부곡(高伊部曲)이었는데, 1285년(충렬왕 11) 고흥현으로 승격되었다.
1395년(태조 4) 왜구를 피하여 보성군 임내 조양현(兆陽縣)으로 이동하여 그 일대가 고흥의 임내로 편입되었다. 1397년 조양진이 설치되어 현감이 겸임하였다. 그 뒤 장흥부 임내 두원현(荳原縣)·도양현(道陽縣)과 보성군 임내의 풍안현(豊安縣)·도화현(道化縣)·사어향(沙魚鄕)·서천부곡(紓川部曲)·고다산부곡(古多山部曲)을 임내로 편입시켰다.
1441년(세종 23)두원현 땅으로 군의 치소(治所)가 이전되면서 보성군의 남양현(南陽縣)을 합하여 흥양현으로 개칭하였다. 1859년(철종 10) 군으로 승격하였고 1895년(고종 32) 나주부, 이듬해 전라남도에 속하였다.
1897년에 지금의 삼산면지역이 신설되어 돌산군(突山郡)에 이관되고 뒤에 고흥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수군의 중요한 방어지역이었다. 해안지방에는 사도진(蛇渡鎭)·녹도진(鹿島鎭)·여도진(呂島鎭)·발포진(鉢浦鎭) 등에 수군만호가 주둔하였으며 이들 지역에는 성곽이 있었다.
해안지방의 위급을 알리는 봉수로서 여천의 돌산도에서 시작되는 제5거(第五炬)의 전달지역으로 팔전산(八巓山)·마북산(馬北山)·천등산(天登山)·장기산(帳機山)의 봉수가 서로 이어져 장흥의 전일산(全日山)으로 전달되었다.
흥양에서 양강역(陽江驛)을 거쳐 낙안(樂安)·장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유적으로 발포만호성은 이순신(李舜臣)이 근무하던 곳이다. 1667년(현종 8)에 건조하였다는 남휘루(覽煇樓)는 당시의 관아건물로 봉황산(鳳凰山) 기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