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대전강령 ()

유교
문헌
1867년, 문인이자 학자 황필수가 오륜의 의미를 진작하고자 편찬한 유학서.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67년
간행 시기
1874년
저자
황필수(黃泌秀)
편저자
황필수(黃泌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달도대전강령』은 1867년 문인이자 학자 황필수가 오륜의 의미를 진작하고자 편찬한 유학서이다. 고종 때 유의이자 도서 편찬자인 황필수가 유가 경전의 내용들 가운데서 오륜과 관련된 내용을 뽑아 부·자·형·제·부·부·군·신·우·어하·사상·수신 등 12개의 대항목으로 분류하여 편집한 책이다.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천하의 모든 인륜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오륜이 확립되면 다른 유학의 교훈도 바로잡히고 사회 전체의 풍조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여 편찬한 것이다.

키워드
정의
1867년, 문인이자 학자 황필수가 오륜의 의미를 진작하고자 편찬한 유학서.
저자 및 편자

황필수(黃泌秀: 1842~1914)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호는 신촌(愼村)이다. 아버지는 황도연(黃度淵)이다. 황필수는 유의(儒醫)라기보다는 유학자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26세 때인 1867년(고종 4)에 『달도집주대전(達道集註大全)』을 편찬했는데, 같은 해에 그의 대표 저서인 『척사설(斥邪說)』을 편찬하는 등 본격적으로 도서 편찬자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달도집주대전』은 편찬 6년 뒤인 1873년 9월부터 간행을 준비하여 이듬해에 출간하였다. 황필수가 20대 중반에 두 책을 편찬한 의도를 살펴보면, 『척사설』의 경우는 유학을 옹호하고자 함이요, 『달도집주대전』은 오륜을 중심으로 유학의 근본적인 교훈을 널리 펼치기 위함이었다.

서지사항

『달도대전강령(達道大全綱領)』은 1867년에 완성되었으며‚ 1868년에 황필수의 족제(族弟)였던 황지수(黃芝秀)가 집주하고 김기연(金耆淵)이 교정하여 1874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두 가지 판본이 있는데, 하나는 3권 3책으로 구성된 판본이고, 다른 하나는 3권 2책으로 구성된 판본이다.

3권 3책 판본의 구성은 1책에 청나라의 국사관협수(國史館協修) 서부(徐鄜)의 서문과 황비수(黃泌秀)의 원서(原序)‚ 강령(綱領)‚ 그리고 권1의 「내편(內篇)」 6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고, 2책에는 권2의 「외편(外篇)-상(上)」 3개 항목이‚ 3책에는 권3의 「외편(外篇)-하(下)」 3개 항목이 실려 있다. 3권 2책의 판본은 1책에 목록(目錄)과 강령(綱領)‚ 권1의 「내편(內篇)」이‚ 2책에 권2·3의 「외편(外篇)」이 수록되어 있다.

3권 2책으로 되어 있는 판본에는 3권 3책으로 되어 있는 판본에 실려 있는 서부와 황비수의 서문 2편이 빠져 있지만 본문은 동일한 목판본이다. 수록분에 따라 편철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서책을 인쇄하는 과정에서 일부를 빼거나 추가하여 제책하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로 판단된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황필수는 서문에서 ‘달(達)’을 ‘지선(止善)’으로‚ ‘도(道)’를 ‘솔성(率性)’으로 정의한 다음, 『중용(中庸)』에서 오륜(五倫)을 ‘천하의 달도(達道)’로 규정한 내용을 언급하고 부자 · 형제 · 부부는 가정 내의 인간관계이므로 그에 관한 것은 내편(內篇)으로 하고, 그 나머지 부분은 외편(外篇)으로 하였다.

구성과 내용

나아가 본서에서 공자의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뜻에 따라 부도(父道) · 자도(子道) · 형도(兄道) · 제도(弟道) · 부도(夫道) · 부도(婦道) · 군도(君道) 그리고 신도(臣道)를 함께 논할 것이라고 밝혔다. 『달도대전강령』에서 황필수는 『주역(周易)』 · 『서경(書經)』 · 『논어(論語)』 · 『맹자(孟子)』 · 『대학(大學)』 · 『중용』 등의 경전에 등장하는 달도(達道)의 의미‚ 오륜의 실천 등에 관한 내용들을 12개 조목 39개 세부 조항으로 분류하여 나열하였다.

의의 및 평가

『달도대전강령』의 체재를 살펴보면 황필수가 전통적으로 전해 오는 오륜의 순서와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편차를 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전문 도서 편찬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집주를 최대한 평이하게 해설한 것이나 두주에서 구결을 달아 쉽게 읽을 수 있게 한 것은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그의 계몽의식과 일정한 연관이 있다. 내용에서 고사를 많이 사용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은 50대 이후에 다양한 유학서의 출판 작업에 관여하는 한편 학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신구학절충(新舊學折衷)론을 펼쳤던 황필수가 20대에 척사의 관점에서 동도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학문적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유교대사전』(유교대사전편찬위원회, 성균관, 2007)

논문

김순희, 「황필수의 『달도대전』고찰」(『서지학연구』 68, 한국서지학회, 2016)
노대환, 「신촌 황필수(1842~1914)의 사상적 행보」(『한국학연구』 37,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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