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학자 최좌해가 문인들과 문답한 내용을 수록한 강론집. 문답집.
개설
『용암서재강의퇴록』은 「오서총론」, 『효경』 및 『사서』에 대한 주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출전이 모두 『퇴록』으로 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호 비교 검토가 수행되어야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본서가 『용암서재강의퇴록』의 초고 형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즉 문인들이 각자 정리한 1차 초고를 『퇴록』이라는 제목으로 모으고, 이것을 다시 『용암서재강의퇴록』의 체제로 다시 분류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서지적 사항
제1~4책까지는 오사공란에 정사하였고, 제5책은 오사공란은 아니지만 비교적 정성스럽게 필사하였다. 제6~7책은 통감 등의 이면지를 활용하여 필사하였고, 제8~9책은 정돈되지 않은 난고에 가깝다. 필사의 상태로 보면 제5책까지가 완성도가 높다.
최좌해는 본서 이외에도 『오서제주절의(五書諸註竊意)』, 『예경고(禮經考)』, 『잡록(雜錄)』, 『잡지(雜識)』, 『용암서재강의퇴록』, 『용암서재일강기(龍巖書齋日講記)』 등의 저술을 남겼고, 모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제2책의 내지에는 일제시기에 메모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최좌해는 춘천(春川) 사람으로 호는 용암(龍巖)‚ 내암(乃庵)‚ 또는 상지당(尙志堂)이다. 문인이 ‘연정선생(淵正先生)’이라 사시(私諡)하였다. 저서에는 『경서강의록(經書講義錄)』 94책이 있다. 정절(精切)하고 해박(該博)하고 전인(前人)이 미처 주장하지 못한 것을 주장하여 근세 유학가(儒學家)의 거벽(巨擘)이다.”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내용
제1책은 최좌현(崔佐鉉)이 필사한 것이고‚ 제2~4책은 저자의 아들인 최윤수(崔胤秀)가 필사한 것이다. 이 중 제4책의 마지막에는 문인들이 지은 「제문(祭文)」이 수록되어 있는데, 김굉(金轟)·최좌현(崔佐鉉)·이승연(李承淵)·박도홍(朴道弘)·한기진(韓箕鎭)·황기경(黃基敬)·성기한(成紀漢)·성집대(成集大)·이영희(李英熙)·이서(李瑞)·이전(李琠)·박수중(朴受中)·이정렬(李鼎烈)·황기서(黃基書)·남개(南鎧)·황덕홍(黃德弘)·최엄(崔儼)·윤영휘(尹永輝) 등 19명이 그들이다. 다음에는 이영옥(李英玉)·심류(沈瑬)·최좌현·한기진 등 4명이 지은 최좌해의 「화상찬(畵像贊)」 등이 부록되어 있다.
제5책은 박수중·이영희·최엄·김굉·오극상(吳極常)·이전·김홍(金弘) 등이 필사한 것이고, 말미에는 「사시전말(私諡顚末)」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사시의 발의와 합의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아들 최윤수가 가장(家狀) 등을 갖추어 한민계(韓民溪)에게 보인 사실 등을 정리하였다.
제6책과 7책은 기록자가 없다. 제8책은 이전‚ 제9책은 오극상 등이 기록하였는데, 제9책은 앞의 2장만 오극상의 기록이고, 나머지 부분에는 제1책과 동일한 내용이 다시 필사되어 있다. 주로 제자들과 경전(經傳) 및 기타 서적의 어려운 대목에 대해 문답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수학할 때 겪은 일화나 스승의 행적에 대한 내용과 당시 유입된 『천주실의(天主實義)』 등의 서양 서적 및 서양 학문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퇴록(退錄)』
- 『용암서재강의퇴록(龍巖書齋講義退錄)』(최좌해,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한국경학가사전』(최기석,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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