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인 1902년부터 1910년 사이에 건설된 41개 유인등대 중 하나로서 1909년 12월에 점등을 시작했다. 공사는 당시 등대 건설 소관부서였던 탁지부 등대국에서 맡았지만, 직원이나 기술자가 대부분 일본인이었으므로 이 역시 일본인들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2003년 9월 1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대한해협 쪽으로 돌출한 절벽 끝에 정방형 평면의 단층 벽돌조 부속사와 그 중앙부에 8각형 등탑을 세워서 단일 건물로 구성했다. 등탑은 높이가 해면으로부터 72.1m, 건물 기초로부터는 9.1m이며, 콘크리트로 축조한 8각형 동체 위에 강화유리를 두르고 철제 사모지붕을 덮은 원통형 점등실을 세웠다.
부속사는 건축면적이 105.6㎡이며, 현관을 중심으로 우측은 사무실, 좌측은 침실, 뒤쪽으로는 부엌과 욕실, 다용도실 등을 배치했다. 벽체는 콘크리트 기초 위에 2.0B 치장쌓기로 쌓았는데, 100×226×55㎜와 100×170×55㎜ 크기의 적벽돌을 사용했다. 지붕은 목조 트러스 위에 4모지붕을 올리고 함석을 덮었다.
건물 네 모서리와 외벽면에는 1∼3개씩 버팀기둥을 세웠는데, 그 상부 형상이 고딕건축의 첨탑과 흡사하고, 옥상 난간과 외벽 창호의 상 · 하인방은 르네상스풍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현관 캐노피에는 굽받침을 가진 주두를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의장요소도 보이고, 특히 캐노피 박공 부분에 양각한 오얏꽃 형상도 눈길을 끈다.
근 100년 전의 등대로서 다른 건축물들이 대부분 훼손되어 있는 데 비해 2002년에 새 등대가 들어설 때까지 사용되었을 정도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건설된 만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함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철 · 콘크리트 · 벽돌 · 유리와 같은 근대적 재료가 사용되는 등 서구 근대건축의 도입과정도 엿볼 수 있어서 역사적 · 건축사적으로 그 가치가 적지 않은 국가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