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월헌집』을 저술한 유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간재 문하에서 혁재(赫齋) 서진영(徐震英),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 현곡(玄谷) 유영선(柳永善) 등과 학문을 강마하다가, 간재가 별세하자 서진영을 따라 변산의 진계정사(眞溪精舍)로 가서 학문을 익히다가, 호서의 망화재(望華齋)로 석농(石農) 오진영(吳震英)을 찾아가 그 학문을 전수받았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화되어 단발령을 내리고 호적을 새로 고치는 등의 압제가 가속화되자, 수사선도(守死善道)의 일념으로 굴하지 않고 서재를 열어 원근의 학도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집이 좁아서 모두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보림은 석담과 화양동으로부터 유래하는 담화종지(潭華宗旨)를 평생의 학문 규범으로 삼았는데, 「지심설(持心說)」과 「사유제왕지책론(士有帝王之責論)」등의 잡저에 그 학문 특색이 잘 드러나 있다. 해방 후에도 윤리를 부식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저서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월헌집(月軒集)』
- 「월헌 이보림의 생애와 학문」(정경주, 『간재학논총』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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