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림 ()

유교
인물
일제강점기 『월헌집』을 저술한 유학자.
이칭
이칭
제경, 월헌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1972년
본관
전주
출생지
김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월헌집』을 저술한 유학자.
개설

경상남도 김해 출신. 본관은 전주. 자는 제경(濟卿), 호는 월헌(月軒). 경종조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여주에서 김해로 피난한 소요재(逍遙齋) 이춘흥(李春興)의 7대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조부 농은(農隱) 이경현(李慶鉉: 1859∼1936)과 부친 봉정(鳳亭) 이승기(李承驥: 1885∼1945)의 훈도 아래 가학을 전수받아 경사(經史)를 섭렵하고, 1920년 봄 서해의 계화도에 은거하고 있던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그 문도가 되었다.

간재 문하에서 혁재(赫齋) 서진영(徐震英),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 현곡(玄谷) 유영선(柳永善) 등과 학문을 강마하다가, 간재가 별세하자 서진영을 따라 변산의 진계정사(眞溪精舍)로 가서 학문을 익히다가, 호서의 망화재(望華齋)로 석농(石農) 오진영(吳震英)을 찾아가 그 학문을 전수받았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화되어 단발령을 내리고 호적을 새로 고치는 등의 압제가 가속화되자, 수사선도(守死善道)의 일념으로 굴하지 않고 서재를 열어 원근의 학도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집이 좁아서 모두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보림은 석담과 화양동으로부터 유래하는 담화종지(潭華宗旨)를 평생의 학문 규범으로 삼았는데, 「지심설(持心說)」과 「사유제왕지책론(士有帝王之責論)」등의 잡저에 그 학문 특색이 잘 드러나 있다. 해방 후에도 윤리를 부식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저서

문집인 『월헌집(月軒集)』 16권이 간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6년 향사림(鄕士林)이 김해시 장유의 덕정(德亭)에 명휘사(明輝祠)를 건립하여 향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월헌집(月軒集)』
「월헌 이보림의 생애와 학문」(정경주, 『간재학논총』4, 2004)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