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거세게 저항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우리나라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한국 농민의 토지를 약탈하기 위하여 전국에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당시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일대의 토지는 이곳 주민들이 개간하여 수년 전부터 지세를 납부하고 민유지로 경작해 온 토지인데도 불구하고, 일제는 이 일대의 토지를 국유지로 편입시키고 임의로 조선농업주식회사에 대부하였다.
1914년 8월 26일에는 총독부의 임시 토지조사국원이 파견되어 일대의 토지에 대한 측량을 계획하였다. 이때 전중진은 정곡면에 대한 토지 측량을 하게 되면 모든 토지가 국유지로 편입됨과 동시에 조선농업주식회사(朝鮮農業株式會社)로 이관되어 자연히 국유화될 것을 예견하고, 주민들과 힘을 모아 이에 대비하였다.
마침내 토지조사국원이 국유와 민유의 경계선을 측량하려고 하자 전중진 등은 주민 700명을 모아 측량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조사원이 세운 푯말을 뽑아버리거나 조사원을 난타하여 토지 측량을 못하도록 막았다. 다음날인 27일에도 토지조사원들이 경찰을 앞세우고 다시 나타나 토지 측량을 하려고 하였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역시 실패하였다.
전중진은 이 일로 1914년 8월 29일 남병우(南炳祐)·이진우(李震雨) 등과 함께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15년 1월 28일 소요와 공무집행방해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조선환여승람』(이병연, 한국인문과학연구원, 1993)
- 『담양전씨대동보』(담양전씨대종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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