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주의를 설명할 때, 연결주의와 연줄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둘 모두 영어로는 네트워크(network)이지만, 후자는 지연이나, 혈연, 학연처럼 특수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관계인 반면, 전자는 보편주의적 성격에 의해 맺어지는 개방적 관계이다. 연줄주의는 상대적으로 감정적으로 이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이득을 얻기 위해 특정 대상을 선호하거나 혜택을 주는 관계이다. 연줄주의가 개인과 그 소속집단에게는 가장 적합한 상호작용 관계를 형성하며 교환행위를 취한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사회 전체로 확대해 보면 그 행위는 부정적인 효과를 종종 야기한다. 마피아 조직 내의 의리와 충성심이 결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이런 연유로 과거 연고주의는 비합리주의, 정실주의, 배타적 집단주의로 간주되어 사회발전의 장애요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뢰와 같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연고주의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줄이거나 사회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공동체의 문화적 토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연고주의는 전통적으로 지연, 학연, 혈연에 기초하여 작동해 왔는데 그것은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 모두를 지니고 있다. 애향심, 애교심, 엘리트 의식을 공유한 동문 등은 긍정적 측면의 연고성으로 현대사회에 팽배해진 개인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 형성의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연고를 기반으로 한 강한 공동체는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토호세력으로 변질되어 투표에서 지연에 따라 몰표를 주거나, 학연에 따라 총장이나 교수 임명에 동창회, 동문회가 나서는 등 다원성과 민주성을 해치는 부정적 요소로 비판받고 있다. 한국의 연고주의로 인해 야기되는 병폐는 지역갈등, 패거리정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저발전 등이었고, 한국 현대사는 이러한 병폐와의 싸움의 연속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성격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적 유대와 연대를 가능케 하는 연줄망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줄 중에서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학연이다. 씨족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혈연의 역할도 크지만, 혈연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도 작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연의 효과도 도시화로 인한 수도권 집중현상이 강화되면서 학연을 통제할 경우 지연의 순수효과는 학연보다 작게 나타난다. 그 동안 한국 사회는 연줄에 의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게 내면화시키고 있다. 연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 연줄을 관리하는 데 많은 비용을 사용하곤 한다. 연줄주의의 확산은 특혜와 정실주의를 낳고, 사회의 규범과 도덕성을 파괴한다. 연줄주의가 팽배할 때 구조적 부패가 발생하기 쉽다. 서구 정치에서도 연줄망에 의해 움직이는 후견주의(clientalism)하에서 부패가 만연했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연줄주의는 약화되어야 하고, 반대로 연결망은 강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전자는 고착화 되는 경향이 있지만 후자는 유동적이고 환경변화에 적응력이 높기 때문이다. 현실은 재벌기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직까지 연줄에 더 의존하고 있다. 전문경영인보다는 혈족에 의해서 주요 의사결정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경영권 승계도 연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혈연을 넘어서는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업경영은 환경이 급변하는 경쟁 사회에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연고주의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구분함과 동시에 가능성과 한계를 올바로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고주의는 무조건으로 청산되어야 할 전근대적 유물로 단순히 취급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동시에 지역주의와 부패를 양산하는 연고주의는 근본적인 수준부터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이념형적인 처방은 연줄주의가 연결망주의로 전환하는 것이며, 그 핵심 과제는 특수주의적인 연줄에서만 가능했던 신뢰를 어떻게 보편적인 관계로까지 확대하는 것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