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대구 보성선원 목조 석가여래삼존 좌상 및 복장유물은 대구광역시 보성선원에 있는 조선시대 목조 석가여래삼존 좌상과 복장유물이다. 거청 견암사가 폐사되면서 보성선원에 옮겨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상은 본존불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상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신체 비례, 얼굴 표현 등은 모두 비슷하다. 국가유산 조사 과정에서 삼존상 내부에서 발원문을 포함한 복장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발원문을 통해 청허의 차화승이었던 조각승 현욱이 1647년에 이 삼존상을 제작하였음이 밝혀졌다. 17세기 경상도 지역 조각승 청허 유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정의
대구광역시 보성선원에 있는 조선시대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복장유물.
개설
내용
삼존상의 내부에서는 원문(願文)을 비롯한 후령통 일괄(후령통, 오보병, 팔엽대홍련, 오방경, 오곡, 인삼, 황초폭자 등),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불조삼경(佛祖三經)』 등의 경책류, 다라니 등이 납입되었다. 발원문은 모든 중생이 함께 정법을 듣고 정각을 이루기를 발원한다는 목적을 밝히고 제작시기, 시주자 명단, 증사(證師) · 지전(持殿) · 화원(畵員) 등 각기 소임을 맡은 승려를 기록하였다. 화원은 우두머리 조각승인 현욱을 비롯한 나흠(懶欽), 현감(玄鑑)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불상(佛像), 주불(主佛), 좌보처(左補處), 우보처(右補處), 면금(面金), 황금(黃金), 오금(烏金), 포(布), 공양(供養), 복장(腹藏) 등 각 시주 물목마다 시주한 사람의 이름이 따로 적혀 있어 시주자의 경제력에 따라 시주 내용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석가여래상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 보는 자세에 항마촉지인의 손모습을 하였다. 넓적하게 각진 얼굴에 넓은 이마, 좌우가 긴 눈, 짧은 코, 가늘고 얇은 입과 짧은 턱을 표현하여 이목구비가 아래로 몰린 듯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근엄한 모습이지만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착의법은 변형편단우견식으로 대의를 걸치고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밋밋한 가슴 아래에 연판형으로 주름 잡은 승각기를 표현하였는데 옷주름은 단순한 편이다.
좌우에 앉아 있는 보살상 역시 본존불상과 신체비례, 얼굴 표현 등은 비슷한데 머리에 봉황, 구름, 꽃, 화염보주 등이 장식된 크고 화려한 보관을 썼다. 정수리에는 상투 같은 높은 보계가 있으며 머리카락의 일부는 어깨 위에 드리워져 있다. 보살상들의 손은 위치만 서로 반대인데 양 손을 모두 무릎 가까이에 두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습이다. 착의법은 편삼 위에 대의를 걸친 변형통견식으로, 본존불상과 차별성은 있으나 옷주름 표현은 유사하다.
현황
[의의와 평가]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각진 얼굴과 근엄하면서도 앳된 표정, 단순한 옷주름이 특징으로 현재로서는 현욱에 의해 주도된 유일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특히 강직한 조형성과 독창적인 얼굴 표정에서 현욱만의 특징이 확인되며, 17세기 경상도지역 조각승 청허의 유파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복장유물이 원형 그대로 발견되어 복장의례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문화재청·(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4)
- 「조선후기 경상도지역 조각승과 불상」(이희정, 동아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 「대구 보성선원 봉안 견암사 현욱파 석가삼존불상의 도상 특징과 복장 연구」(문명대, 『강좌미술사』35,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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