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리 고인돌 (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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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유적
북한 황해남도 은률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탁자식 고인돌군[支石墓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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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남도 은률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탁자식 고인돌군[支石墓群].
개설

북한 국보유적 제84호. 이 유적은 구월산 줄기의 한 능선인 봉화산 산마루에 있는 1호 고인돌을 중심으로 능선과 골짜기마다 떼를 지어 많은 고인돌[支石墓]이 자리한다. 장수마을과 갈촌마을의 못 옆 그리고 봉화산 밑의 묘골에 30여 기가 분포하며, 이 중 4기가 조사되었다.

내용

해발 80m에 위치한 1호는 서해 바다가 보이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고인돌은 축조할 곳에 먼저 흙을 돋우어 너비 350㎝, 높이 60㎝ 되는 단(壇)을 만든 다음 건립하였다. 고인돌의 조망을 고려한 이런 예는 강동 문흥리 2호, 장하 백점자, 대석교 석붕욕 고인돌에서도 발견된다. 덮개돌의 평면 생김새는 긴 네모꼴이고 크기는 길이 875㎝, 너비 450㎝, 두께 30㎝이며, 주변 지역의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에 가장 크다. 요동(遼東)지역의 개주 석붕산, 해성 석목성 고인돌과 견줄 수 있다.

돌방을 이룬 굄돌은 동남쪽과 서북쪽에 있고 막음돌은 동북쪽의 것만 있다. 동남쪽 굄돌은 너비 350㎝, 높이 216㎝, 두께 31㎝인데, 위쪽이 아래쪽보다 약간 좁은 사다리꼴 모습이다. 막음돌의 넓이는 230~250㎝, 높이 210㎝, 두께 25㎝이며, 굄돌처럼 아래쪽이 조금 넓다. 굄돌은 오랜 기간 쓰러지지 않고 처음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안정감을 위하여 안쪽으로 조금 기운 상태다. 또한 굄돌은 기초 홈을 60㎝쯤 판 다음 세웠고 막음돌은 굄돌에 기댄 모습인데, 이것은 돌방을 나들이하기 위한 문돌이었던 것 같다.

돌방은 긴 네모꼴이며, 크기는 길이 330㎝, 너비 140㎝, 높이 215㎝이다. 한편 굄돌과 막음돌은 마치 나무처럼 손질을 많이 하여 매끈하며, 덮개돌과 돌방의 중심이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고인돌을 축조할 당시의 과학기술을 알려주는 하나의 자료이다.

2호는 갈촌마을의 못 언저리에 있다. 굄돌은 북쪽과 남쪽에 있고 막음돌은 서쪽 것만 남아 있다. 평면이 둥근 꼴인 덮개돌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크기는 길이 485㎝, 너비 390㎝, 두께 37㎝이다. 양쪽 굄돌의 크기와 모습은 비슷하며, 남쪽 것은 길이 376㎝, 높이 135㎝, 두께 34㎝이고 가장자리는 손질을 많이 한 자취가 관찰된다. 이런 굄돌은 배천 용동리 1호와 연탄 오덕리 10호 고인돌과 비교된다. 막음돌은 굄돌 사이에 끼인 상태이며 크기가 너비 110㎝, 높이 135㎝, 두께 13㎝이다. 돌방은 길이 260㎝, 너비 112㎝, 높이 135㎝쯤 된다.

3호의 주변에는 6기의 탁자식 고인돌이 분포하는데 나머지는 모두 파괴되었고 이것만 남아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이며, 지름이 200㎝쯤 되고 두께는 20㎝인 둥근 꼴이다. 돌방은 30㎝ 아래에서 찾았는데 크기는 길이 140㎝, 너비 90㎝이며, 바닥에는 길이 140㎝, 너비 80㎝, 두께 4㎝ 되는 넓적한 돌이 놓여 있었다.

4호는 3호에서 북쪽으로 40m쯤 떨어진 골짜기의 남쪽에 자리한다. 덮개돌은 파괴되었고 굄돌은 동·서쪽에 세워져 있었지만 서쪽 것은 바깥으로 쓰러진 모습이다. 화강암을 재질로 사용한 동쪽 굄돌은 너비 200㎝, 높이 130㎝, 두께 33㎝ 크기이며 북쪽의 막음돌은 크기가 너비 68㎝, 높이 100㎝, 두께 27㎝이다. 돌방은 길이 180㎝, 너비 68㎝, 높이 100㎝쯤 되며 바닥에는 화강암의 판자돌을 깔아 놓았다.

한편 이 고인돌의 서쪽 굄돌 옆에서는 동쪽으로 또 다른 하나의 돌방이 조사되었다. 크기는 길이 190㎝, 너비 85㎝이며 굄돌보다 얇은 판자돌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연탄 두무리 금교동 5호 고인돌에서도 발견되어 비교된다.

껴묻거리로는 돌방 안에서 갈색 토기조각 10여 점이 발견되었는데, 아가리가 겹쌓인 화분형 토기와 비슷하다. 따라서 이 고인돌은 팽이형토기가 제작된 시기보다 늦게 축조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각지 고인돌무덤 조사 발굴보고』(석광준, 백산자료원, 2003)
『조선의 고인돌무덤 연구』(석광준, 중심, 2002)
『고조선 지역의 고인돌 연구』(하문식, 백산자료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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